다큐가 넷플릭스 4위?…K다큐의 진화와 과제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한경비즈니스외고 2026. 7. 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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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다큐멘터리 '최후의인류' / ESS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상위권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각축전을 벌인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대한민국 톱10 시리즈’에 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드라마도 예능도 아닌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이 국내 시리즈 4위까지 올라 화제가 됐다.

지난 6월 4일 첫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최후의 인류’이다. 다큐멘터리가 상위권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시청자들이 평소 어려워하는 과학을 소재로 삼았다. 배경은 기후위기로 인해 붕괴 직전인 2038년 지구이다. 최후의 7인이 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며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탐구한다. 다큐멘터리에 서바이벌 예능 형식을 결합하여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깜짝 흥행에 성공했다.

K다큐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해외 작품들에 비해 저평가되어 왔다. 꾸준히 제작되어 왔음에도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최근 소재, 형식, 캐스팅 등 다방면에서 변화가 이뤄지며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최후의 인류’와 같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상업 콘텐츠들과 견줄 만큼 좋은 성과를 내는 작품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분야에 비해 산업 규모가 작고 지원이 부족한 만큼 K다큐의 장기적 성장을 돕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소재부터 형식까지 변화하는 K다큐

K다큐는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해 왔다.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굴곡진 한국의 역사와 사회를 담고 기록해 왔다. 이를 통해 사회 곳곳에 경종을 울려왔으며 집단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방대한 아카이브로 기능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확장해 나가며 갈수록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K다큐의 출발점은 1980년대 활동했던 소규모 창작 집단이다. 이들은 인권, 노동,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해 다룬 독립 다큐를 제작했다. 하지만 사회비판적 색채가 강해 대중화가 쉽지 않았고 산업화를 위한 기틀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라 할 수 있다. 1990~2000년대에 지상파 3사를 중심으로 한 방송 다큐멘터리 시대가 열리면서 분위기가 크게 반전됐다. 특히 자연, 역사, 시사를 중심으로 다큐멘터리가 활발히 제작됐다. 그중에서도 2000년대 후반 ‘차마고도’(2007), ‘누들로드’(2008)와 같은 대작을 선보인 KBS의 다큐 시리즈 ‘인사이트 아시아’는 큰 호평을 받았다. ‘북극의 눈물’(2008)부터 ‘아마존의 눈물’(2009), ‘아프리카의 눈물’(2010), ‘남극의 눈물’(2011)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방영됐던 MBC의 ‘지구의 눈물’ 시리즈도 전 세계의 광활한 자연을 생생하게 담고 기후 위기 등 환경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사이트 아시아’, ‘지구의 눈물’ 모두 국내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다큐로서의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SBS의 ‘SBS스페셜’, EBS의 ‘다큐프라임’도 각각 2005년, 2008년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K다큐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EBS국제다큐영화제(2004),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09) 등 다큐멘터리에 특화된 영화제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다.

2010년대 전후로는 방송용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잇달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워낭소리’(2009),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등이 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작품성과 상업성을 함께 인정받았다.

2020년대는 K다큐의 새로운 확장기에 해당한다. OTT의 등장으로 제작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OTT로 인해 국내 시청자들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 자체가 높아졌다. 넷플릭스를 통해 다수의 글로벌 다큐멘터리가 공급되며 국내에서도 다큐를 주요 콘텐츠 장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OTT를 중심으로 K다큐도 활발히 제작됐다. ‘나는 신이다’, ‘사이버 지옥’부터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등이 대표적이다. 종교, 범죄, K팝에 이르기까지 소재가 다채롭고 풍성해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유입됐다. 웨이브의 ‘국가수사본부’, 티빙의 ‘푸드 클로니클’ 등 토종 OTT에서도 다큐가 나와 호평을 받았다.

최근엔 넷플릭스를 통해 EBS의 콘텐츠가 대량 공급되며 K다큐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최후의 인류’를 포함해 ‘다큐프라임: 돈의 얼굴’, ‘다큐프라임: 주식의 시대’ ,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카인즈’ 등 EBS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넷플릭스는 기존의 범죄, 사건·사고, 유명인 등에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집중됐던 것에서 벗어나 과학,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EBS 입장에서도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외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수익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최후의 인류’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작품엔 뇌과학자 장동선, 화학자 장홍제 등 전문가들을 포함해 배우 유승호, 가수 겸 배우 비비, 코미디언 이은지 등 다양한 영역의 인물들이 출연한다. 이들은 산호가 사라지면 바다가 무너지기 때문에 산호를 수심 7m 바다에 이식해야 하는 등 여러 미션을 차례로 수행한다. 형식의 변주를 통해 과학 다큐의 높은 진입장벽을 과감하게 무너뜨렸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전 지구적 위기를 다루고 보편적인 담론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K다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장 위해 지원 규모 자체 커져야

이 같은 성과에도 K다큐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방송 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되면서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극장 개봉조차 힘든 상황에 처했다. 개봉을 해도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곤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OTT를 통해 더 큰 기회의 문이 열렸긴 하지만 범죄나 스포츠, K팝, 음식과 같은 대중적 콘텐츠의 일환으로 소비되는 경향도 강하게 생기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처럼 심도 있게 사회적 현상과 문제를 다루거나 실험적인 내용의 다큐를 만드는 게 힘들어졌다. 민간 투자를 거의 받지 못해 다수의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은 여전히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제작비 충당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K-DOCS’ 등 지원책이 일부 있긴 하다. K-DOCS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내 다큐멘터리 활성화를 위해 민관 합동으로 2022년부터 진행해 온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사업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지원 규모 자체가 커져야 한다. 다큐멘터리 특화 기금을 마련하고 지원 기구를 만드는 등 대대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큐멘터리가 없는 나라는 사진첩이 없는 가족과 같다.” 칠레의 다큐멘터리 감독 파트리시오 구스만은 이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한 집단, 나아가 국가와 글로벌 전체의 정체성과 집단 기억을 형성하고 기록하는 아카이브에 해당한다. 이뿐 아니라 주요 이슈를 공론화하여 핵심 의제로 발전시키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그 역할을 글로벌 사회와 시장에서 K다큐가 주도하게 된다면 K콘텐츠의 영향력과 무게감은 더욱 공고해지지 않을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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