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우의 정치眼] 베네수엘라, 지진 이후의 정치

지난 6월 24일 베네수엘라 서북부와 중부에서 두 차례의 강진이 발생했다. 확인된 사망자만 3600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장은 생존자 구조 단계를 지나 이제 장기적인 구호·복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향후 복구 과정은 이 나라가 오랫동안 겪어온 정치적 혼란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26년간 차베스와 마두로로 이어진 사회주의 체제 아래 있었다. 차베스는 한때 석유 자금을 바탕으로 무상 교육과 의료정책을 펼쳐 추앙받았지만, 동시에 석유 의존 경제를 고착시키고 방만한 재정 운영을 남긴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뒤이은 마두로 대통령은 경제 붕괴를 악화시키고 야권을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해 왔으나 올해 1월 마약 밀매 등의 혐의로 미군에 의해 체포되면서 국제적 파장을 낳았다.
이 혼란 속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차도는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며 자신의 노벨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마두로 정부 부통령인 로드리게스가 맡게 되었다. 그는 헌법상 정해진 권한대행 기한을 넘기고도 법적 절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임시 권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권력 승계의 정당성마저 불안정한 시기에 대형 재난을 맞은 것이다.
재난은 한 사회의 정치와 제도가 평소 얼마나 제대로 작동해 왔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안전 기준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건축물, 제때 움직이지 못한 구조 대응, 이미 한계에 다다른 의료 체계는 이번 베네수엘라 지진이 단순한 자연재해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떤 정부도 이 정도 규모의 재난에 홀로 대응할 수는 없다. 국제사회의 구호와 원조, 그리고 정부와 국내 시민사회의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이 바로 정부의 협력적 거버넌스, 즉 정부가 여러 주체의 힘을 모으고 조정하는 능력이다. 재난 대응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들이 가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조정함으로써 피해 주민에게 필요한 지원이 실제로 전달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유엔과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이 지원에 나섰고, 한국 정부도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을 결정했으며 기업, 종교계, 의료진 등이 구호 기금을 지원하거나 현장 지원에 동참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들이 현장에서 원활히 활동하고 외부 자원이 필요한 곳에 제때 도달하도록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베네수엘라 정부와 국내 시민사회와의 협력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피해 지역의 주민 조직, 의료인 단체, 종교기관 등은 중앙정부보다 빠르게 주민의 필요를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다. 장기간 권위주의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민사회를 통제의 대상으로만 대한다면 복구는 지체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재난 이후의 회복은 결국 정치가 만든다. 베네수엘라 지진은 현 정부의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대형 재난은 높은 불확실성 때문에 사전 대응에 한계가 있고 그만큼 국민은 재난이 닥친 뒤 정부의 판단과 대응을 민감하게 지켜본다. 이번 사태는 지원과 구호물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생존자들이 폐허 위에서 절망에 머물지 않도록 지금 절실한 것은, 국민의 삶을 지켜내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