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확장하는 여성 작가들의 ‘K-디아스포라’ 문학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7. 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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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의 소설이 주목받으며 국내에도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있다. 해외 입양 문제,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다룬 소설부터 심청전 등 전통 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 SF 등 소재와 장르도 다양해지며 확장된 ‘K디아스포라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SF 소설 ‘루미너스’ 쓴 박지선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투영, 인간·로봇의 모호한 경계 다뤄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박지선. 황금가지 제공

한국계 미국인 작가 박지선의 <루미너스>(황금가지)는 통일 이후 근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SF 소설이다. 소설 속 세상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 시대다. 로봇 범죄 전담반 소속 형사 ‘준’은 한남동 고급 아파트에서 유괴된 구형 반려로봇 소녀 ‘엘리’를 추적하다 자신의 사라진 아버지와 형제에 얽힌 비밀를 마주하게 된다. 비밀의 열쇠를 쥔 로봇 ‘요요’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따라 진행된다.

미국 캔자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작가를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사옥에서 만났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는 통일 한국을 배경으로 북한 주민 등 다양한 출신의 사람을 등장인물로 삼은 것에 대해 “미래 한국을 생각하면 북한은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떠올리게 된다”며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를 보며 자식이 죽은 것보다 더 고통스럽겠다고 생각했다. 북한과 (남한의) 관계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잃어버린 곳이라는 점에서)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지냈다. 그래서일까 그가 쓰는 소설 배경의 대부분이 한국이다. 차기작도 제주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아직 미국에 대해서 쓰는 건 관심이 없다”며 “한국에 대해서도 내부인와 외부인의 시선으로 왔다갔다 한다”고 말했다.

소설은 통일 한국이라는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한남동 상류층 주택가와 버려진 로봇들이 쌓인 고철 처리장으로 대비되는 빈부 격차, 광화문에서 펼쳐지는 북한 출신과 난민에 대한 혐오 시위 등을 보면 지금 사회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차별과 경계 짓기가 여전한 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배제된 자들의 정체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확장된 코리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계보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도 정체성이 덜 복잡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런 지점이 이 소설에서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지 출간된 소설은 가디언 ‘주목할 올해의 SF’로 꼽혔고, 올해 로커스상 신인 장편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다음 달 발표되는 영국의 대표 SF 문학상 아서 클라크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드라마 <파친코> 제작사인 미디어 레스에서 영상화도 진행 중이다.

디아스포라는 ‘흩뿌리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본래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한 이들이나 이주 그 자체를 지칭한다. 전쟁과 이민 등이 초래한 한국 사회의 역사적 상처와 문화적 배경이 코리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토대가 된다.

리 랑그바드의 ‘나의 통역사’, 한국 찾은 해외 입양인 이야기
한국계 덴마크 작가 리 랑그바드가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종로의 거실에서 열린 소설 ‘나의 통역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쟁 이후 늘어난 해외 입양 문제도 디아스포라 문학의 주 소재다. 지난달 소설 <나의 통역사>(푸른숲)가 국내 출간되며 한국을 찾은 리 랑그바드의 경우도 그렇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리 랑그바드는 전작 <그 여자는 화가 난다>(난다)를 통해 해외 입양 문제와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나의 통역사> 역시 원가족을 만나러 한국을 찾은 입양인의 이야기다. 지난 5월 출간된 한국계 덴마크인 소설가인 에바 틴드의 <민 킴>(산지니)도 입양된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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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품들도 있다. 지난달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차 한국을 찾은 한국계 미국인 권오경의 <빛의 전시>(문학과지성사)는 두 아시아계 여성 예술가를 통해 욕망과 금기, 여성성과 섹슈얼리티, 가족과 인종차별 등의 고민을 녹여냈다. 작가의 전작 <인센디어리스>도 <파친코>를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연출로 드라마화가 확정됐다.

윤지현의 소설 ‘그리고 강은…’, 한국 배경 ‘장화 홍련’ 재해석
윤지현 작가가 16일 서울 마포구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열린 장편소설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인 앤절라 미영 허의 <우리, 메아리처럼>(열린책들)과 윤지현의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휴머니스트)처럼 한국의 전통 설화를 차용하기도 한다. 소설은 각각 에밀레종과 심청, 장화홍련 설화를 현대적으로 변주해 이민자의 정체성을 탐구해 주목받았다.

휴머니스트 이성근 편집자는 “그간 (코리아 디아스포라 문학에서) 쓰였던 소재와 방식이 넓어지고 있다”며 “한국 문화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면서 한국계 작가들이 영미 문단에서 많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국내에서도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 고희진 기자 gojin@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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