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구슬과 오목한 그릇

구슬은 왜 스스로 멈추지 않는가
한 학생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
"선생님, 이거 진짜예요?"
단체 대화방에서 본 문자라고 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아이가 멈칫했다. 그 짧은 정지는 생각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일지도 몰랐다.
가짜 뉴스는 구르는 구슬과 같다. 그것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단체 대화방이나 SNS에는 종종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이거 진짜래." 출처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말은 확인되기 전에 먼저 공유된다. 구슬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구슬은 더 빠르게, 더 멀리 퍼진다. 출처를 잃은 말들은 서로를 밀어내며 증식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보다 먼저 받아들인다.
이는 단순한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에 따라 해석하곤 한다. 불안은 실체 없는 위협을 키우고, 분노는 공격할 대상을 찾아내며, 막연한 기대는 가짜 희망을 부풀린다. 이처럼 감정의 빈틈을 파고드는 말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진실로 둔갑하기 마련이다. 가짜 뉴스는 이렇듯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더 빠르게 굴러간다. 여기에 정보 과잉과 자극적인 플랫폼 구조가 결합되면서 그 흐름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다.
'결론'이 아닌 '판단'을 향한 질문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흐름은 사실 자체의 힘만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정보를 분별하는 개인의 사유, 이를 길러내는 교육,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맞물려 작동할 때 그 속도는 늦춰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을 멈추게 하는가. 구르는 구슬은 오목한 그릇이 있어야 멈춘다. 받아내고, 붙잡고, 더 이상 굴러가지 못하게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교육은 바로 이 문해력이 깊은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문해력을 뜻하는 리터러시(literacy)는 단순 정보처리 능력을 넘어 세계가 구성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사고력이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정보를 의심하고 추적해 비로소 판단력과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시 앞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선생님, 이거 진짜예요?"
이 질문에 곧바로 답을 주는 순간 아이들은 '판단'이 아니라 '결론'만 가져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한 번 더 대화를 시작한다.
"이 얘기가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는지, 또 믿을 만한 건지 같이 찾아볼까?"
"이 주장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찾아보자."
"이 글을 쓴 사람은 왜 이런 단어를 썼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고 저러는 것일까?"
아이들은 모니터를 뚫을 듯 들여다보며 저마다의 반응을 쏟아낸다. 누군가는 "어? 뉴스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는데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누군가는 "제목만 자극적이고 안에는 아무 근거도 없어요"라며 헛웃음을 친다. 또 누군가는 "이상한데요?"라고 의심하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라며 멈춰 선다. 그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구르던 구슬의 속도는 조금씩 느려진다.
서둘러 답을 말하기보다 질문을 남겨두는 수업,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출처를 추적해보는 활동, 정답을 찾기보다 서로 다른 해석을 비교하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주체로 성장한다.
가짜를 분별하는 공동체의 그릇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개인과 교실의 노력에만 맡길 수는 없다.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디지털 생태계를 그대로 둔 채 개인에게만 조심성을 요구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똑바로 서 있으라고 다그치는 격이다.
현재의 알고리즘은 공익적 가치보다 사용자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데 집중한다. 자극적인 정보를 반복해서 보여주며 우리를 확증편향에 빠뜨린다. 이것이 알고리즘의 치명적인 맹점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나서야 한다. 알고리즘의 결함을 꿰뚫고 가짜정보를 걸러낼 '공동체의 그릇'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오래된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효종 1년 5월 11일)에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큰 사회적 혼란을 겪은 직후, 진사 신석형을 비롯한 유생들이 조정에 올린 글이 전해진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은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도로로 도망쳤다." 또한 "밤을 틈타 강을 건넌 자가 몇 천 몇 백 명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극심한 혼란 속에서 올린 상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구르는 구슬은 오목한 그릇을 만나지 못하면 멈추지 않고, 떠도는 말은 지혜로운 자가 없으면 그치지 않는다."(流丸不得甌臾則不定. 流言不得知者則不止./유환부득구유즉부정. 유언부득지자즉부지.)
유생들은 그저 소문을 막기에만 급급했던 조정의 대처를 매섭게 질타했다. 이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백성들의 불안을 키우도록 방치한 시스템의 공백을 날카롭게 꼬집은 것이다. 결국 무분별하게 굴러가는 소문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이를 안정적으로 받아낼 오목한 '사회적 그릇'이다.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가 생태계 전체로 확산하기 전에 이를 걸러내고 차단할 안전한 소통 구조, 그리고 투명한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떠도는 말을 멈추는 지혜
시스템을 건강하게 작동시키고, 소문을 분별해 낼 '지혜로운 사회 구성원'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교육은 바로 그 분별력과 판단력 있는 사람을 정성스레 길러내는 일이다.
잠시 후 아까 그 학생이 다시 말했다.
"선생님, 이거 가짜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스스로 멈춰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슬은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가짜 뉴스가 더 멀리 굴러가지 않도록 의심하고, 확인하고, 해석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문해력이다. 그리고 교실은 한 번 더 질문하고 판단하는 공간이다.
결국 교육은 구슬을 더 멀리 보내는 일이 아니라 그것이 무분별하게 굴러가지 않도록 받아내는 '잘 만들어진 그릇'이다. 그 '잘 만들어진 그릇'이 또한 마중물도 잘 담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묻게 된다. 우리 배움의 자리는 그 구슬을 더 멀리 밀어내는 곳인가, 아니면 그것을 안전하게 멈추게 하는 그릇인가.

제주 서귀포 출생으로 제주대에서 '지역 기반 세계시민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등 교사, 장학사, 중학교 교감 등을 거쳐 현재 서귀포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5년 167개국이 참여한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에서 '제주에서 세계시민을 만나다'라는 강연으로 4.3을 세계에 알린 바 있다.
저서로는 《4·3이 나에게 건넨 말》이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제주역사》, 《새로운 교육과정에 담은 세계시민교육》, 《문화 다양성의 이해》, 《온 세상이 사회교과서》등의 공저가 있다. 현재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제주지부장, 전국교장교감포럼 제주 대표,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운영위원을 맡아 전국 중등학교 및 교육 현장 교류를 통해 회복적 학교문화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