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광주는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과도한 정파적 처벌은 광주 고립시키는 일
광주일고 학생과 교직원들의 선처 호소대로
승리가 전부가 아님을 일깨우는 선에서 멈춰야

배재고 야구부는 1911년 창단된 고교 야구 명문이다. 그런 유서 깊은 야구부의 응원 구호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였다니 실망스럽다. 감독과 코치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은 5·18을 잘 모른다는 변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정신 나간 ‘탱크데이’ 이벤트로 광주시민들에게 ‘탱크’나 ‘책상에 탁’이 얼마나 잔인한 문구인지 온 국민이 단체 학습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상대가 광주일고여서 ‘스타벅스 가야지’ 한 것 아닌가.
그런데 피해자인 광주일고 학생들까지 위협받는 건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가혹하고 정파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진상 파악도 하기 전에 배재고 야구부 전체에 출전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경찰은 모욕죄 여부를 수사 중이다. 여권에선 지역 비하와 혐오 표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야구부 해체’ 얘기까지 나왔는데 그런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면 박정희 대통령 혐오와 부산 비하 발언 전력이 드러났을 때 최교진 교육부 장관 지명을 철회했어야 했다. 올해 5·18 전야제에서 해직 교사가 “이준석이로 드는 액은 매불쇼가 막아내고…”라 노래해 비판이 제기되자 좌파 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성명을 냈다. 조롱도 내가 하면 표현의 자유이고, 남이 하면 혐오가 된다는 내로남불식 과잉 대응에 아무 잘못 없는 광주일고 학생들이 역풍의 돌을 맞고 있다.
이제는 ‘김부장’과 ‘거제소녀’ 차례다. 드라마 ‘김부장’의 웹툰 원작가는 최근 일베 연루설에 휘말렸다. 예전에 그린 웹툰에 ‘5분 23초’가 나오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이 5월 23일이라는 게 일베의 증거라고 한다. 경남 거제 출신의 여성 아이돌 멤버는 “무섭노”라고 말했다가 일베로 찍혔다. 일베 커뮤니티에서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뜻으로 말끝마다 ‘노’를 붙여 쓴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트집이라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청년들도 의문문에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혐오 표현임을 알고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들었다. 여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조롱과 혐오 표현도 불법 정보로 처벌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제안 이유에는 ‘일베’ ‘노무현’ ‘5·18’을 적시해 일베금지법임을 숨기지 않았다. 여성 아이돌의 ‘무섭노’는 일베식 조롱이고, 조국 수호 집회의 가수가 부른 ‘와그라노’는 사투린가. 어떤 ‘노’는 되고, 어떤 ‘노’는 안 되는 걸 누가 정확히 판단한다는 건가.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 또는 고무하면 처벌하는 국가보안법도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폐지하자던 이들이 ‘우리 편’에 대해선 입조심하라는 중세식 협박을 하고 있다.
좌파 진영의 위선은 젊은이들이 여당에 등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다. 광주 청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올 4월 무등일보 등의 의뢰로 이뤄진 여론조사에서는 광주·전남 지역 주민의 민주당 지지율이 79%로 나왔는데 18∼29세에선 56%에 그쳤다. 5·18을 직접 겪지 않은 이들은 ‘광주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5·18 묘역 이상을 기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왜 광주에는 복합쇼핑몰이 없고, 마켓컬리 새벽배송도 안 되느냐”고 하면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광주 정신과 상충한다’며 말문을 닫게 한다는 것이다. 광주 청년의 새로운 요구도 수용하지 못하는 배타적 5·18 정신이 어떻게 보편적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 있겠나.
광주일고 교장은 배재고 야구부원들에게 “다음에 광주일고 학생들 만나면 멋진 승부를 펼쳐주는 게 용서를 구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라고 했다. 광주일고 학생들은 배재고 선수들의 선처를 호소했다. 배재고 사태는 잘못한 만큼만 벌 받고,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음을 깨친 학생들이 다시 멋진 승부를 펼치는 것으로 마무리됐으면 한다. “5·18은 성역”이라며 어린 선수들의 잘못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건 광주를 ‘그들만의 광주’로 고립시키는 일이다. 최근 인터넷 언론에 실린 칼럼 ‘야구선수 아들 둔 광주 아버지가 배재고 근조 화환 보며 한 말’의 일부를 공유한다. “광주는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무릎 꿇리는 것으로 기억되는 오월이라면, 그것은 이미 오월이 아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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