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발품으로 찾는 역사의 빈칸… “향토사 연구는 나를 찾는 작업”
유호명 한북문화탐구 대표
언론인서 향토사 연구자로 변신
‘의정부’ 지명 유래 새롭게 밝혀
‘걸음마’ 운영… 지역사 길잡이 역할

최근 양주시 광사동에서 한글 ‘넉바회’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조선시대 묘비가 발견(6월17일자 9면 보도)돼 한글학계와 사학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한글 묘비로 알려진 ‘서울 노원구 이윤탁 한글영비(1536년·보물지정)’보다 적게는 16년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화제의 묘비는 ‘한산군(漢山君) 조온지 구비(舊碑)’로, 이를 세상에 알린 이가 향토사 연구가 유호명 한북문화탐구 대표다. 그가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이 역사적 파편을 찾아내는 데는 긴 시간의 문헌조사와 현장답사 등 각고의 노력을 들여야 했다. 스스로 “그저 역사를 좋아하는 평범한 시민”이라고 낮추지만, 경기 북부지역 사학계에선 이미 그 학문적 깊이와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유 대표는 옛 양주군 진접면 태생으로 다섯 살 되던 해 의정부로 이사와 정착했다. 그는 언론사에서 28년간 근무한 뒤 퇴직했고 현재 양주의 한 대학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역사 연구는 언론사 퇴직 후 저술활동을 이어가던 중 지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그간 수필집과 지역사 관련 책을 꾸준히 내왔고, 최근엔 지역문화 연구단체 ‘한북문화탐구’를 결성해 경기 북부의 지역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새벽에 서울로 출근해 밤늦게 의정부로 귀가하는 생활을 수십 년에 걸쳐 했다. 어느 날 문득 어린 시절 기억과 현재 공간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내가 살던 마을, 뛰놀던 거리, 어른들이 부르던 지명이 보이지 않고 들을 수도 없게 됐다. 결국 고향을 이해하는 게 나 자신을 찾는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유 대표가 말하는 지역사 연구의 동기는 ‘나를 찾는 일’이었던 셈이다. 사학 전공자도 아니고 관련 경력도 없던 그가 지역사에 매료된 계기가 철학적이고 독특하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역사 연구의 기본 소양이 갖춰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한문 독해력과 몸에 밴 현장 조사 습관은 그의 지역사 연구의 큰 자산이다.
그는 “지역사로 한정하면, 논문보다 현장에 더 답이 많다. 자치단체 연구용역 결과가 빛을 잃는 것도 현장 조사 미흡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은 디지털 사료에 쉽게 접근하는 환경이 갖춰져 관심만 가지면 누구나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며 달라진 연구환경에 놀라워하면서도 현장 조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의 지역사 연구는 비석을 더듬어 읽고, 고지도와 지세를 견주며, 주민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그동안 역사적 가치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한산군 조온지의 구비 역시 ‘발로 뛰는’ 그의 열정적 연구 방식이 낳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유 대표는 문인화가로 알려진 조속과 조운지에 관한 사료를 모으던 중 풍양조씨 종중과 자주 연락했고, 군부대 안에 묘비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게 총 다섯 차례에 걸쳐 현장 조사가 이뤄졌고 끈질긴 분석 끝에 묘비의 역사적 가치를 확신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비석의 최초 발견자’가 아니라고 누차 강조했다. “종중에서 이미 알고 있던 비석이다. 다만 그 가치를 역사의 영역으로 이끌어 연구과제로 제시한 것뿐”이라 했다.
사실 그가 주목하는 가치는 비단 ‘가장 오래된 한글 비석’이라는 상징성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지역사 연구자 입장에서 오히려 다른 가치가 더 크다. 이 비문은 최초의 양주목 관아 위치가 현재의 양주시 어디였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고읍’이라는 지명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새롭게 해석할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비석에 등장하는 ‘양주 동면 고견주 주내 넉바회’라는 표현을 근거로 기존 양주 지역사 서술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주시 ‘고주내’라는 지명 속 ‘주(州)’가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추정해 온 ‘옛양주(古楊州)’가 아니라 ‘옛견주(古見州)’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석에는 ‘고견주 주내’란 문구가 나온다. 이는 1397년(태조 6년) 양주도호부 관아를 ‘현재의 고읍동으로 옮겼다’는 기존 학설과 정면 배치된다.
그는 부치(府治)가 처음부터 고읍동이 아닌 지금의 양주 관아 일원에 위치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경기 북부 큰 고을인 양주의 오랜 논쟁 중 하나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처럼 유 대표의 치밀한 연구는 사실처럼 여겨져 오던 기존 통설을 뒤집어 놓곤 한다. ‘의정부’ 지명의 최초 등장 시기와 중랑천의 옛이름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정구(1564~1635)의 ‘임진피병록’에서 ‘의정부장(議政府場)’이라는 표현을 발견해 ‘의정부’ 지명 유래 시기를 기존 주장보다 무려 200여 년이나 앞당겼다. 또 중랑천의 옛이름 두험천(豆驗川)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상당수 발굴하는 등 경기 북부 여러 자치단체 발간 지역사 기록의 오류를 수정, 보완하고 있다.

최근 유 대표에게는 경기 북부 ‘역사문화 브랜드’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그는 “오늘날 ‘녹양(綠楊)’을 의정부 북쪽 법정동 이름 정도로 매우 협소하게 소비하지만, 조선시대 녹양은 현재 의정부시에서 서울 우이천까지를 아우른 거대한 역사문화권 이름이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이를 토대로 의정부시를 대표하는 축제인 회룡문화제의 콘텐츠를 발전적이면서도 다채롭게 확대할 개념으로 ‘녹양’을 제시했다. 그는 “‘회룡’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녹양’은 그 이야기를 담는 거대한 무대이고 회룡이 동네라면 녹양은 커다란 역사문화권”이라며 “‘녹양’이 의정부시뿐 아니라 서울 도봉구까지를 하나로 묶는 광역 문화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주의 ‘유양(維楊)’ 역시 과거 거대 양주권 전체를 높여 부르던 역사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향후 경기 북부 지자체 통합·광역화 과정에서 중요한 브랜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양주시 관아 일원의 작은 동네 이름 ‘유양’이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옛 양주목 전역에 대한 경칭이었고 영탄사 ‘유(維)’가 붙은 ‘유양’을 ‘아~ 양주’, ‘존귀한 양주고을’, ‘거룩한 양주’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의 활동은 문헌 연구에만 매이지 않는다. 그는 의정부문화원에서 ‘걸음마(걸으면서 음미하는 마을 이야기)’ 프로그램을 2022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지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 흥미와 깊이를 더해주는 길잡이가 돼주고 있다. 그런데 올해부터 프로그램이 유료로 전환되면서 참여자를 30명 미만으로 제한하자 유 대표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운동, 서예, 연주 등은 개인 취미지만 자기 동네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것은 공적 교육의 영역이라 생각한다”며 “시민들이 자기 도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지방자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돈을 내야 한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유 대표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지자체가 이를 투자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 예산을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역사는 과거를 공부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고 자기 동네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지역사 연구를 통해 경기북부 주민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돋우고 싶다”고 말했다.

■ 유호명 한북문화탐구 대표는?
▲ 옛 양주군 진접면(1960년 출생)
▲ 동국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 중앙일보 경영지원실 수석부장(1987~2014)
▲ 경동대학교 대외협력실장(2017~)
▲ 의정부문화원 지역사 프로그램 ‘걸음마’ 운영(2022~)
▲ 한북문화탐구 대표(2024~)
▲ 저서 ‘의정부를 담다’, ‘그래서 우리는 의정부에 올라간다’(공저), ‘찧고 까불어야 지지고 볶네’ 등

양주/최재훈 기자 cj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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