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넘도록 전분당 담합?…공정위, 사상 최대 과징금 7천476억 ‘철퇴’
원가 오를 땐 빨리, 내릴 땐 느리게 판매가 반영… 가격 재결정 명령

과자와 빵, 음료, 빙과, 맥주 등에 들어가는 전분·전분당 가격을 7년 넘도록 담합한 제조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지난 5월 밀가루 담합 사건에 이어 식품 원재료 시장에 대한 대규모 제재가 가해지면서 가격 담합 관련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공정위는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4개사가 7년 5개월간 식품업체와 제지사, 철강사 등 사업자 간 거래(B2B)에 적용되는 전분·전분당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해 총 7천47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과징금은 지난 5월 밀가루 제조업 7개사에 부과한 6천71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공정위 담합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업체별 과징금은 대상이 2천341억4천100만원으로 가장 많고, 삼양사 2천103억4천만원, 사조CPK 2천1억3천200만원, CJ제일제당 1천29억6천500만원 순이다.
전분·전분당은 물엿과 액상과당, 포도당 등의 원료로 음료와 제과·제빵, 제면, 빙과, 맥주, 소스 등 식품 전반에 쓰인다. 제지와 철강 등 제조업에서도 원재료로 사용돼 가격 변동의 파급력이 큰 품목이다. 국내 B2B 시장에서 이들 4개사의 점유율은 전분 95.7%, 전분당 86.4%에 이른다.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모두 13차례 가격을 짬짜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옥수수 가격이 오를 때는 원가 상승분을 거래처에 신속히 반영하기 위해 판매가격 인상을 8차례 밀약하고, 이를 B2B 거래처에 일괄 적용했다. 전분·전분당은 원재료인 옥수수가 제조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
반대로 옥수수 가격이 내릴 때는 가격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기를 늦추기로 5차례 합의했다.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대형 거래처에는 일부 가격을 낮추면서도 소규모 거래처와 대리점에는 기존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극대화했다.
가격 조정 과정에서는 인상·인하 폭과 시기뿐 아니라 환율과 원재료 가격 등 가격 조정 명분, 거래처 공문 발송 시기까지 사전에 맞춘 것으로 조사됐다. 또 품목별 목표가격을 정한 뒤 업체별로 이를 웃도는 가격을 순차적으로 통보해 거래처가 목표가격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한 것으로 공정위는 판단했다.
특히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재료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담합은 지속됐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2021년부터 가공용 옥수수에 0% 할당관세를 적용했지만, 업체들은 가격 경쟁 대신 공동으로 판매가격을 조정했다. 국제 옥수수 가격이 전쟁 여파로 급등하자 이들 업체는 담합을 시작한 2018년 5월과 비교해 판매가격을 최대 73%까지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매출도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가 산정한 관련 매출은 약 6조2천억원이다. 검찰이 기소 과정에서 적용한 관련 매출은 10조1천520억원으로, 국내 식료품 담합 사건 가운데 가장 크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렸다. 4개사는 담합 이전의 경쟁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가격을 다시 정해야 하며 앞으로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이 내려진 것은 밀가루와 인쇄용지 담합 사건 등에 이어 네 번째다. 공정위는 담합이 장기간 지속된 점과 국내 전분·전분당 시장이 과점 체제가 유지돼 담합 재발 우려가 큰 점 등을 참작했다.
형사 절차도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전 삼양사를 제외한 3개 법인과 임직원, 전분당협회장 등 25명에 대한 첫 공판 절차를 진행했다. 공정위는 앞서 검찰의 요청에 따라 담합에 연루된 4개사 법인과 임직원을 고발한 상태다.
정부는 이 같은 담합 행위에 대한 엄정한 대응 기조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담합 이득을 훨씬 넘어서는 무거운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며 “시장 지배력을 악용한 담합 행위는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라고 비판한 바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제재를 통해)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식료품 등의 높은 가격을 안정시키고, 담합을 통한 독과점 사업자들의 부당한 가격 인상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담합 행위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 담합이 적발될 경우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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