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개된 1948년 미군 기밀문서에 적힌 문구 “독도는 한국의 일부”

백승찬 기자 2026. 7. 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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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독도 미공개 기록 발굴해 공개
희귀한 한국의 독도 영유권 직접 증명 1차 자료
독도를 한국의 일부로 확인하는 미군 기밀문서.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해방 이후 미군이 독도를 한국 일부로 확인하는 문서가 공개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7일 미국 정부가 보관해온 독도 관련 미공개 기록 222쪽을 새롭게 발견해 공개했다. 1948년 6월8일 주일 미 공군이 독도 일대를 오폭해 인명 피해를 준 독도폭격사건이 일어났고,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9월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오폭이 일어난 경과를 설명했다.

보고서에는 당시 독도가 “한국의 일부”임이 “명확히 확립”돼 있다고 기록됐다. (원문 “Although definitely established in September 1947 that Liancourt Rocks was a part of Korea, it is apparent that this never became general knowledge and was understood to be an insular part of Japan.” 원문의 ‘리앙쿠르 암’은 독도를 지칭한다.)

보고서에는 당시 폭격 훈련을 하기 위해 ‘폭격 연습장’을 사용하려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미리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봤기에, 한국 관할 당국에 사전 통보 의무를 명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 기록이 “미군 당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고 평했다. 이 기록은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 제677호(1946년)와 1947~1949년 미국 측 대일강화조약 초안에서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했던 흐름과도 이어진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기증식’에서 자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를 분석한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은 “1947~1948년 미 당국이 독도를 명백한 한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공식 문서”라며 “독도를 마치 일본의 영토인 것처럼 주장한 1949년 시볼드의 제안, 1951년 러스크 서한 등이 일시적으로 변질하고 왜곡된 결과에 불과하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사료”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광복 직후 한국에서 생산된 독도 관련 주요 문서들도 공개됐다. 1946년 울릉도사가 독도는 울릉도 소속임을 밝혀 경상북도 지사에게 보고한 ‘울릉도 소속 독도 영유 확인의 건’ 등이다. 이 보고서 내용은 알려져 있었으나, 낱장 형태의 문서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들 국내 생산 문서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돼 있었다는 점에서 사료적 신빙성이 높으며, 광복 직후 한국과 미국의 독도 관련 인식을 확인하는 자료 기반이 넓어졌다고 본다. 이 자료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전갑생 연구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해 재단에 기증한 것이다. 지금까지 1945~1948년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직접 증명하는 1차 사료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 주요 자료는 앞으로 독도체험관 기획전시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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