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기 쉬운 ‘시원한 맛’ [권대영의 한식 인문학]

70년대에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는 데 할아버지가 탕에 들어가면서 ‘아 시원하다’ 말하니까 손자가 할아버지 따라 탕에 얼른 들어가다 ‘앗 뜨거워’,‘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했다는 말이 있다. K-푸드를 좋아하는 외국사람들이 가장 이해가 쉽게 안되는 것이 한국인이 뜨거운 국이나 탕을 먹으면서 ‘시원하다’하는 말이다.
국어학자의 말에 의하면 ‘시원하다’는 말은 15세기 이전부터 온도 감각에 관한 말이 아닌 상쾌하고 기분이 좋은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 쓰여 왔다고 한다. 여기에 음식 맛을 표현하는 말과 결합하여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라고 한다. 또 「우리말 큰사전(1992)」을 보면 ‘시원하다’라는 단어로 ‘알맞게 선선하다’, ‘답답한 마음이 풀리어 흐뭇하고 가뿐하다’, ‘아프거나 답답한 느낌이 없어져 마음이 후련하다’, ‘말이나 하는 짓이 유쾌한 느낌을 주고 명랑하다’, ‘서글서글하고 활발하다’, ‘음식의 국물이 맛이 텁텁하지 않고 산뜻하다’ 등으로 풀이가 되어있다. 뜨겁고 차갑다는 온도적 개념과의 관련성은 적다. 정리해보면 ‘시원하다’는 공간적, 액체적, 기체적, 기(氣)적, 심사적, 행동학적 개념 등으로 쓰인다. 좁은 데서 넓은 데로 나갈 때 공간이나 시야가 훤하면 트이면 시원하다, 국물이나 음료 맛이 산뜻하고 깔끔하고 맛이 있으면 시원하다, 아침에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시원하다(상쾌), 몸의 느낌이 깨끗하고 기가 도는 느낌을 받을 때 시원하다, 답답했던 마음이 뚫려 후련하거나 나쁜 사람을 제3자가 응징당할 때 시원하다(통쾌), 어느 사람의 언행이 명쾌하거나 행동이 유쾌할 때 시원하다고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어문학적으로 어디를 보아도 ‘시원하다’는 온도감각 ‘차갑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해장국이 시원하다’는 말은 해장국이 차가운 상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뜨거운 해장국을 먹었더니 속이 후련해졌다는 의미로, 맛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같은 예로 젖산 발효되어 산이 많은 싱건지(동치미)나 김칫국을 우리는 보통 ‘시원한 김칫국’으로 표현하고, 깔끔하며 짭짤하게 간이 잘 맞는 북엇국을 ‘시원한 북엇국’이라고도 한다. 이들 모두 차가운 음식이 아니므로 이때 시원하다는 말은 온도 감각어가 아닌 소화와 관련된 상쾌한 느낌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음식 중에서도 특히 물, 국 등과 같은 ‘액체류’와 결합하여 ‘시원하다’는 표현이 주로 ‘(갈증을 해소하여) 만족스럽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온도 개념으로 음식의 온도가 낮다는 말을 할 때는 ‘식었다’, ‘차갑다’라는 표현을 썼다.
즉 ‘시원하다’의 어원적 의미는 온도의 의미로 ‘뜨겁다’의 반대인 ‘차갑거나 알맞게 선선하다’가 아니라 ‘답답한 마음이 풀리어 흐뭇하고 후련하다’라는 것이다. 또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셔 몸에 활력을 느끼고 기분이 좋을 때도 ‘시원하다’는 표현을 하고,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 순간적으로 기(氣)가 살아나고 몸이 개운하고 좋아지는 느낌이 들 때도 ‘시원하다’고 말한다. 또한 소설, 영화나 연극 등을 보고 일종의 카타르시스 감정을 느낄 때도 ‘시원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 발달사를 모르는 세대나 사람들은 ‘시원하다’를 단순히 ‘차갑다’는 뜻으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뜨거운 국을 먹으며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의아해 하는 것이다. 특히 언어 이해력이 부족한 외국인들이 이 같은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다. 급기야 한국사람들도 왜 뜨거운 국을 먹으며 시원하다고 왜 이야기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시원하다는 뜻이 오히려 ‘뜨겁다’의 반대말로 ‘온도가 낮다’는 의미로 인식되어 더욱 잘못되어 가버렸다. 심지어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어문학자들 중에서도 ‘시원하다’에 대한 미각적인 의미를 과학적으로 모르는 채, ‘시원하다’를 ‘차갑다’와 ‘뜨겁다’의 반대 개념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로 반의어적 다의어(multi-meaning language) 관점에서 해석하려고까지 한다. 물론 이것도 오래 전부터 내려온 우리말을 ‘차갑다’로만 잘못 해석하여 풀려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음식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음식에서 ‘시원하다’의 반대어는 ‘따뜻하다’나 ‘뜨겁다’가 아니라 오히려 ‘텁텁하다’나 ‘느끼하다’에 더 가깝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해방 이후 영어에 없는 우리말을 굳이 영어로 잘못 번역할 때 생기는 오류 현상이다. 시원한 맛의 본래 뜻에는 온도 감각과 관련되는 ‘차갑다’는 뜻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cool’로 온도 개념으로 번역하면서, 우리말 ‘시원하다’의 뜻이 온도 개념인 ‘차갑다’로 이해되어 널리 잘못 퍼진 것이다. 더군다나 ‘맵다’를 온도 개념인 ‘hot’으로 번역하니 ‘시원하다’의 번역어인 ‘cool’은 의심없이 온도 개념으로 쉽게 뜻이 변질되거나 훼손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말 음식의 이름을 영어나 한자로 번역할 때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결국 우리말 왜곡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맛을 나타내는 ‘시원하다’를 번역할 때는 ‘cool’아 아닌 우리말 그대로 ‘siwonhada(시원하다)’가 차라리 바른 표현이다.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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