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남남으로 살겠다는 북한…국가전략을 다시 묻다

2026. 7. 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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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 관련 문구가 랩핑 되어 있다. 연합뉴스

1993년 1차 북핵 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남과 북은 비핵화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노태우 정부가 1992년 한·미 연합군사훈련 잠정 중단을 결정하자, 북한이 핵시설 사찰을 수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사찰에 대한 이견은 컸고, 한국은 군사훈련 재개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은 “간첩”, “깡패” 등의 막말과 고성을 주고받았다. 역대 남북회담 중 가장 격렬했다는 당시의 협상 분위기는 통일부가 지난 6월 30일 공개한 3836쪽 분량의 남북회담 문서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2026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기 이전 단계에서 뭔가 가능한 조치를 했어야 했다”라며 답답해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핵 물질 추가 개발을 중단시키는 협상을 할 때”라며 중단·축소·비핵화라는 단계적 접근을 제시했다. 반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G7 정상들이 북한 비핵화에 뜻을 모은 것에 대해 “규탄·배격한다”며 “비핵화는 불퇴의 선”이라고 밝혔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 “현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희망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 없이 협상은 없다’고 했던 강경파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평양과 군비 축소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파들은 아예 북핵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석좌연구원은 “단계적 북핵 협상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먼저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정상회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넓게 보면,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희망적 사고는 냉전이 끝나면서 강화됐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적 자유’를 받아들이면 민주주의 국가로 바뀔 것이라 믿었다. 이 믿음으로 2001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켰다. 1991년 소련의 붕괴를 “민주주의와 자유의 승리”로 인식한 미국은 중국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민주국가로 전환은커녕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했다.

북한과 만남을 늘려가면 군사적 대립 완화 등을 통해 통일이 가능해진다는 기대는 지금도 유효할까. 북한은 2023년 12월 남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했다. 지난 3월 이를 헌법에 못 박았으며 최근에도 철조망을 세워 군사분계선(MDL)을 국경선으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남북 간 경계가 점점 커지고, 점선이 실선이 되고, 실선이 장벽이 되는”(지난 6월 8일 이재명 대통령) 상황에서 통일과 관련한 국가전략이 옳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실패한 대북정책

한국통일 정책의 기본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으로, 이 선언의 골격은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현재까지 이어진다. 군사적으로 높은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경제·사회적인 만남을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와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이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나왔고, 노무현·문재인·이재명 정부가 김대중 정부를 계승했다.

물론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 국면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정책은 있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교류를 중단한 5·24 조치,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폐쇄 등이다. 그러나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북한경제를 성장시켜주겠다’는 등의 정책 틀은 노태우 정부 이래 이어져 온 기조와 같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새로 가동한 핵물질 생산공장에서 원심분리기 사이를 걷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38년간의 통일정책은 성공했을까. 객관적으로 볼 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북한 비핵화는 실패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해 북한 핵탄두 50기에서 올해 60기로 늘었다고 추정했다. 1990년대 정점을 찍었던 북한 붕괴론도 사그라들었다. 올해 인공위성으로 찍은 북한의 밤 풍경은 2021년에 비해 3배 밝아졌다. 북한 경제·전력 사정이 나아졌다는 의미다.

남북교류 성적도 저조하다. 농림·수산물, 광물 등의 남북교역은 2010년 이후 중단됐다. 반입(수입)과 반출(수출)이 가장 높았던 때는 2007년 4억6141만달러(약 7140억원)로, 그해 전체 무역량(7286억달러)의 0.06% 수준이었다. 개성공단은 2015년 5억4988만달러(약 8377억원)의 물품을 생산했지만, 이듬해 문을 닫았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했던 현대아산은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영업손실만 2216억원을 입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는지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 노리는 족속들”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이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한 이유가 한국에 대한 북한 주민의 우호적 인식이 늘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두 국가, 북한의 영속적 정책인가

완벽한 타인으로 살겠다는 북한의 뜻은 일시적·국면적 전략일까, 장기적·구조적 전략일까.

남북은 국제법상 2개, 국내법상 1개 국가다. 국가만 가입할 수 있는 국제연합(UN)에 1991년 9월 동시에 2개 의석으로 가입해서다. 대신 그해 12월 서로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남북기본합의서)라고 합의했다.

북한은 국내법적으로도 2개 국가라고 지난 3월 명토박았다. 헌법에 ‘조국통일 실현’이라는 국가목표를 지우고, 영토를 새로 규정했다. 핵무력 지휘권을 신설했고, 대외정책에서 ‘국익수호를 불변의 원칙’으로 삼겠다고 했다. 한국과 분리된 주권국가로, 영구 핵보유국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이는 북한이 통일보다는 영구 핵 보유가 국가의 생존과 발전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2018~2019년 미국과 협상 실패 과정에서 비핵화를 원하는 한국을 훼방꾼으로 인식했다. 또 한국이 미국 뜻을 거슬러 경제 지원을 해줄 능력이 없다고 봤다.

흡수통일 당할 것에 대한 우려도 커보인다. 2024년 기준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43조7000억원으로 남한(2556조9000억원)의 59분의 1 수준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느냐”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수호자였던 미국의 힘이 약화하고 있다. 이 틈을 이용해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밀착했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북한은 미·중 경쟁의 틈새를 이용해 자신의 전략적 지위를 높이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 중·러와 밀착하되 남한과 분리하면서 핵을 영구 보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앞에 놓인 3가지 길

북한의 ‘통일 포기·영구 핵 보유’라는 전략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 앞에 놓인 길은 크게 3가지로 추려진다.

①1개 국가(따뜻한 평화론)

첫 번째 대응 노선은 기존 통일전략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한국을 분리된 적국으로 보더라도,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 노선을 지지하는 이들은 북한의 전략 변경이 일시적·국면적 성격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다.

이들은 현재 상황이 어렵다고 ‘통일지향 특수관계’를 포기하면, 영원히 통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1960년대 후반 동독은 서독을 향해 2개 국가를 주장했지만, 서독은 ‘2개 국가는 존재하더라도, 서로는 특별한 형태의 관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을 예로 든다. 다만 당시 서독과 교류를 허용했던 동독과 달리, 현재 북한은 일체의 문을 걸어 잠갔다.

헌법 제3조(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와 헌법 제4조(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추진)가 이 주장의 버팀목이다. 김기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월 국회에서 “헌법상 북한은 진압돼야 할 반란 단체”라며 “북한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 수복해야 하는 대상, 이것이 정확한 헌법 해석”이라고 말했다.

북한 주민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3만4537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은 이 주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손선홍 독일정치문화연구소장은 “1989년~1990년 다수의 동독 주민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서독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동독의 2개 국가 주장을 서독이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통일을 포기할 경우 북한 붕괴 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북한 영토와 인구, 자원을 놓치게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신라가 676년 삼국을 통일한 이후 1300년 넘게 하나의 국가가 유지돼왔다는 국민 의식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노선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북한 붕괴론에 기대어 있다는 비판도 있다.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지난 5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여권을 들고 있다. 남과 북은 방문증명서만으로 오갈 수 있지만, 북한 선수들은 여권을 제시했다. 한수빈 기자

②담장 쌓고, 2개 국가(차가운 평화론)

두 번째 대응 노선은 통일을 사실상 포기(먼 미래의 목표로 설정)하고,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노선을 지지하는 이들은 북한의 전략 변경이 장기적·구조적인 성격에 가깝다고 본다.

이들은 북한 체제가 변화돼 남한과 통일될 가능성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한국이 유리한 위치에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 헌법 제3·4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문화될 것이라고 본다.

이들은 미·중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통일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는 데 근거를 둔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내주지 않으려는 중국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충돌은 통일의 가능성을 크게 낮추기 때문이다. 1953년 분단은 한반도를 자신의 세력권에 두려고 했던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충돌 결과였다.

이들은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해졌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향후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능력을 제한할 수는 있겠지만, 핵무기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유사시 신속하게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이 통일을 포기하고, 핵 잠재력을 갖추는 것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일 것이라고 본다. 북한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면,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불법적으로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 평화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며, 통일을 고려하는 한 한국의 자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한국과 북한이 담장을 쌓고 안정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를 먼저 이뤄야(차가운 평화), 그 이후에 교류와 협력의 관계(따뜻한 평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역으로 이 노선은 북한 영토와 인구, 자원을 미리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지키면서 핵 잠재력을 보유할 수 있는 길이 또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③1개 같은 2개 국가(평화적 두 국가론)

세 번째 대응 노선은 북한을 향해서는 ‘국가 대 국가로 만나겠다’고 하고, 한국 국민에게는 ‘북한은 외국이 아니다’고 하는 전략이다. 정부는 이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로 부른다. 평화적 두 국가는 ‘화해·협력 단계→남북연합 단계→통일국가 완성 단계’라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중 남북연합 단계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국제법적으로 2국가이면서 국내법적으로 1국가인 남북기본합의서를 역이용하는 셈이다.

이는 1개 국가론과 2개 국가론의 절충안적 성격이 짙다.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한 북한과 만날 수 없다고 본다. 이 맥락에서 북한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북한을 국내법상 외국으로 규정하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남과 북이 외국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자는 의미는 아니다. ‘통일을 잊지는 않되 당분간 통일을 말하지 않’는 형태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꾀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노선은 북한 비핵화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협상을 통해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이 핵 잠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노선은 1개 국가론 또는 2개 국가론과 동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철도와 도로를 다시 잇고, 개성공단에 불을 밝히는”(정동영 통일부 장관) 평화적 두 국가의 목표는 1개 국가론과 동일하다. 반대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 공존을 꾀하자는 논리는 2개 국가 노선과 동일하다. 평화적 두 국가가 남북연합 단계와 같다는 정부의 주장이 억지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남북연합 단계에 앞서 필요한 화해·협력 단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3가지 대응 노선 중 현재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보긴 어렵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5년 통일의식조사’를 보면, 통일이 필요하다(41.1%)·불필요하다(30.4%)·보통이다(28.5%) 의견 중 두드러진 우세는 없었다.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보는 이가 절반가량(54.5%)이었고, 보통이다(31.1%)와 국가가 아니다(14.3%)로 보는 이가 나머지 절반이었다.

아직 평화적 두 국가 노선이 입지를 굳힌 건 아니다. ‘북한을 추종해 통일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커질 경우를 우려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1개 같은 2개 국가(평화적 두 국가)를 2개 국가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해석한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1개 국가 전략을 유지하느냐, 2개 국가로 전환하느냐로 좁혀질 수도 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일정책은 항상 세대나 정치 성향 등에 따라 큰 인식 차이를 보였다. 3가지 대응 노선 중 어떤 방향이 옳다고 현재 단정하긴 어렵다”며 “그럼에도 통일정책에 대한 사회적 공통분모를 늘리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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