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내 전산망 동의로 도입한 임금피크제 무효”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 단순한 '전자 동의'만으로는 노동자 과반수 동의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동자들이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서 의견을 교환해 집단으로 의사를 형성하는 절차가 보장돼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차 확인했다.
구체적 설명 없이 인트라넷 공지, 78% 동의
1·2심 "근로자 자유로운 의사 따라 실시"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롯데쇼핑 노동자 A씨 등 7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판결 중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감액분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롯데쇼핑은 2014년 정년을 만 57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그러면서 58세부터 임금이 25~40% 줄어드는 내용의 취업규칙 개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임금피크제 도입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한데, 롯데쇼핑에는 과반수노조가 없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선행돼야 했다.
회사는 취업규칙 개정안을 사내 전산망인 '인트라넷'에 공지해 7일간 동의 여부를 투표하도록 했다. 또 팀장을 상대로 설명회를 거쳤다. 그 결과 전체 직원 4천906명 중 78%에 해당하는 3천857명의 동의로 2016년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A씨 등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이 삭감됐고 도입 절차도 위법하다며 2022년 12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인트라넷 동의가 근로기준법상 요건을 충족한다며 사용자쪽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포함된 취업규칙은 근로자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의견 집약과 취합 과정을 거쳐 개정됐다"며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가 있었다고 봤다. 또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합리적 이유가 없이 연령으로 차별하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2심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 "단순한 과반수 동의, 효력 없어" 파기환송
온라인 시스템 활용시 실질적 절차 엄격 해석 전망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근로기준법(94조1항)이 요구하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는 단순히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근로자들이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동의 여부를 밝히기에 앞서 사업장 전체 단위 또는 기구별·부서별 단위로 회합해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찬반 의사를 모으는 등 절차를 진행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인트라넷 공지사항에도 임금피크제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공지사항과 동의서 등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임금피크제 내용 및 동의 절차의 취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근로자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집단적 의사를 형성할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됐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법조계는 전자투표나 온라인 동의 시스템을 활용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집단적 의사 형성 절차를 보장하지 않으면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A씨 등을 대리한 강문대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민변 회장)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이뤄지는 취업규칙 변경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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