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만8000명인데 올 예산만 1조원···경북 의성, 의원 절반이 연루된 ‘수의계약의 성지’[의원님은 수주왕]
“관련 없다”던 사업장에는 의원 명의 우편물
의원들 견제 않고 “나도 해야지” 군은 감독 실패

지난달 19일 찾은 경북 의성군의 한 사업장. 건물 앞마당에는 빈 생수병과 녹슨 기계가 나뒹굴고 있었다. 굳게 닫힌 사무실 안에 사람은 없었고 사방은 적막했다. 겉보기에는 방치된 폐건물 같았다. 한동안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는지 우체통에는 신문과 세금 고지서 등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이곳은 오호열 의성군의원이 대표이사였던 A건설사와 이사로 재직했던 B조경업체의 소재지다. A사와 B사는 의성군에서 2022년 6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마을만들기와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 모두 49건, 8억8000만원대 수의계약을 따냈다. 건물에는 A건설사의 간판만 있고, B조경업체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 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 두 업체의 임원직을 사임했다. 본인도 “이젠 관련이 없다”며 지인에게 넘겼다고 했다. 그러나 오 의원은 두 업체의 소재지가 있는 이 부지를 2025년 4월까지 계속 소유하고 있었다. 업체 사무실 우체통에서도 ‘오호열’로 수신인이 지정된 등기우편과 자동이체통지서 등이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집배원은 “어제(18일) 등기우편물을 넣어놨다”고 말했다.

5일 경향신문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계약정보를 전수조사한 결과, 경북 의성군은 수의계약 문제가 확인된 지방의원이 7명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많았다. 광역·기초의원 15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해당된다. 오 의원을 비롯해 의성군의원 5명이 본인과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를 통해 의성군이 발주한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의성군을 지역구로 하는 경북도의원 2명의 관련 업체도 의성군에서 수의계약을 수주했다.
의성군은 인구 4만8000명 안팎의 기초자치단체이지만 예산은 적지 않다. 올해 예산은 추경을 포함해 1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 위기 대응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지방소멸대응기금 지원도 받는다. 2022년에 210억원, 2024년에도 144억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된 수의계약 실태를 보면, 이 재원들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군과 수의계약 의혹이 있는 지방의원들의 업체를 직접 돌아봤다. 오 의원의 사례처럼 간판이 없거나 문이 닫혀 있는 등 회사의 실체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본인 소유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실질적으로 계속 운영하고 있는 흔적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녹슨 기계, 굳게 닫힌 문… 그곳은 수의계약 업체였다

C조경업체는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황무용 전 의성군의원이 설립했고 현재도 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 업체는 황 전 의원의 지난 임기 동안만 의성군으로부터 총 57건, 8억1000만원대의 수의계약을 따냈다. 이 업체는 현재 황 전 의원 동생의 배우자(제부)가 대표로 있다. 주소지를 찾아가 건물을 확인해보니, ‘○○가스’라는 회사명이 크게 걸려 있었다. 언뜻 다른 회사 건물로 착각할 뻔했지만, 아래쪽에 ‘○○조경’이라는 간판도 작게 붙어 있었다. 이 가스회사 역시 대표가 황 전 의원의 제부다.
C사의 주소지였지만 조경업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사무실 오른쪽엔 ‘화기엄금’이라는 푯말과 함께 가스통들이 놓여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황 전 의원의 제부는 “조경업에 필요한 자재는 옮기기 전 주소지에 있다”며 “조경 면허도 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소지는 이곳에서 약 12㎞ 떨어진 곳이다. 그는 수의계약에 대해선 “공무원들이 (이 업체가) 누구 것이라는 건 아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지 않았겠나, (계약에 영향을 줬을지에 대해)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고 했다.
황 전 의원의 동생이 맡고 있는 또 다른 산림업체는 의성군에서 같은 기간 42건, 17억2000만원대 수의계약을 따냈다. 이 중 가장 많은 15건은 풀베기 사업이었다. 황 전 의원은 “나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전 의원은 지난 2월 군의회에서 ‘풀베기’ 사업을 콕 집어 “수의계약을 줘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의성군이 풀베기 사업을 1억원 규모로 크게 발주하면서 경쟁입찰에 붙여 한 업체에 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폐단”이라고 말했다. 또 금액을 쪼개 여러 업체에 수의계약을 줘야 “뭘 제대로 한 것같이 멋이 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전 의원은 앞서 2024년 6월 행정사무감사에서 나무 전정 사업을 한 업체에 대해 자격 문제를 지적하면서, 동료인 오호열 의원이 설립했던 “B조경업체도 있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C업체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다른 업체로 교체하자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군 산업경제팀장은 “더 적합하게 해서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김민주 전 의성군의원이 설립했다가 당선 직후 친척에게 넘겼다는 D건설사는 여전히 사무실 건물을 김 전 의원이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김 전 의원의 지난 임기 동안 의성군과 수의계약 1건(520만원)을 맺었다. 주소지로 찾아가보니 컨테이너 사무실의 불은 꺼져 있고, 문이 굳게 닫힌 채 인기척도 없었다. 건물 앞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김 전 의원은 “수의계약은 알고 있었지만 대표를 그만뒀기 때문에 영향력을 끼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김광호 전 의성군의원이 대표로 있다가 아들에게 넘겨준 농자재 할인마트는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여전히 마트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 마트는 2023년 12월 의성군에 1700만원대 제설제를 수의계약으로 납품했다. 김 전 의원은 “아들에게 다 인계했다”고 말했다. 마트에서 만난 그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도움받은 건 없다”고 했다.
의성군을 뒤덮은 ‘수의계약 카르텔’

왜 의성군은 의원들의 ‘수의계약 성지’가 됐을까. 의원들 간 상호 견제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한 지방의원은 “좁은 시골에서는 누가 어떤 회사를 운영하는지, 자기 동생 이름으로 해놨어도 의원들끼리는 안다”고 말했다. 한 전직 의성군의원은 “‘저 의원도 하는데 나도 해야지’ 이런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의원 수의계약 사례도 많아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헌준 전 의성군 강소농회 사무국장은 “국비로 나오는 여러 대응 기금을 토목업자 출신 군의원들이 해먹거나 특정 회사에 몰아주는 식”이라며 “지역 내 카르텔 속에서 군 예산이 불투명하게 집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역의원들도 지역구 이권에 가세했다. 최태림 경북도의원 부인과 아들이 대표로 있었던 E광고업체는 경북도에서 3건(4400만원대), 의성군에서 4건(3800만원대)의 수의계약을 따냈다. 이충원 전 도의원도 임기 동안 본인이 지분을 가진 법인이 의성군과 2000만원대 수의계약 1건을 체결했다. 최 의원과 이 전 의원은 “수의계약에 관여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
의성군의 관리감독도 실패했다. 이미 의성군에는 수의계약으로 물의를 빚어 2023년 6월 의원직을 상실한 김동준 의원 사례가 있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 의원은 의원직에서 물러난 뒤 또 다른 업체를 차려 의성군과 수의계약을 맺었다. 지난 6·3 지방선거에 출마해 다시 당선된 김 의원은 “이젠 수의계약은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림 의원의 E업체 역시 과거 군의회에서 군 행사 계약이 몰린 것에 문제가 제기됐는데도 수의계약은 여전했다. 최 의원은 “아들이 아버지가 정치한다고 아무것도 못하니까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명의를 바꾸거나 폐업 후 다시 들어오는 경우, 의원과의 관련성을 찾기 힘들다”며 “수의계약 총량제 등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형제나 지인 명의로 수의계약을 따내는 탈법 행위를 처벌하려면 법의 허점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관련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6060011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6060012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60600131

어떻게 찾았나

정보공개센터가 운영하는 ‘오픈와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민선 8기 지방의원의 경력, 민간업무 활동내역을 수집했다. 뉴스타파의 공직자 재산정보에서 의원들이 보유한 토지, 건물, 증권 내역을 찾았다. 이를 통해 의원 본인과 배우자·직계가족이 관련된 업체명을 추렸다. 이 업체명을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하는 계약업체와 대조했다. 535만여건의 계약정보는 인공지능(AI) 도구 클로드코드로 추출했다. 회사와 의원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500건에 가까운 법인,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서 확인했다.
공개된 자료를 기반으로 한 조사인 만큼, 이번에 발견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경향신문은 수집한 계약 현황을 누구나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개한다. 아래 링크나 URL,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접속 가능하다.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6/contracts/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6/contracts/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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