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2400만원 들인 산길 따라가봤더니···쇠사슬로 가로막힌 전직 공무원 농장이 떡하니[의원님은 수주왕]
예산으로 길 포장, 올라가보니 전직 공무원 농장
맘대로 도예산… 지인 농장 길 포장 ‘특조금’ 동원

지난달 30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옥곡면의 한 마을. 산 쪽으로 올라가는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1㎞쯤 차로 이동하다 멈춰 섰다. 누군가 쇠사슬로 길을 막아둔 것이다. 광양시는 2년 전 예산 2400여만원을 써 마을과는 동떨어진 이곳 농장의 작업로를 포장했다. 그러나 막힌 도로는 다른 차량의 이동을 불허했다. 뱀의 사체가 나뒹굴고 있고 고라니가 부스럭대며 숲속을 뛰어다니는 산중에 차량은커녕 인적도 드물었다.
조금 뒤 나타난 철제 대문은 이곳이 사유지임을 알리고 있었다. 도보로 400m를 더 오르자 다래나무와 밤나무가 가지런히 식재돼 있고, 포장된 길에 둘러싸인 농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농장 주인은 국장급으로 퇴직한 광양시 전직 공무원이었다. 그는 이 길을 “산불이 났을 때 이용할 수 있고, 등산객도 쓴다”고 했다. 정작 산불이 나면 길을 가로막는 쇠사슬이 화재 진압 차량을 가로막을 것이다. 한 마을 주민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그 길을 지나갈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 사업에는 광양시를 지역구로 둔 민선 8기 도의원 두 명이 관련돼 있다. 강정일 전남도의원은 도에서 예산을 따왔다. 포장 공사는 임형석 전남도의원이 당시까지 지분을 보유하던 건설업체가 수의계약으로 가져갔다. 사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산을 쓰기 위해, 공사를 위해 사업을 만든 것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강 의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농장주의 민원을 듣고 사업 대상지를 선정했음을 인정했다. 강 의원은 “사유지를 (선정) 안 하려고 하지만 웬만한 산길은 (포장이) 다 됐다”며 “민원을 받아서 하는 것이지 부정의 소지는 없다”고 했다.

임 의원 관련 업체는 비슷한 산길 공사를 여러 건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임 의원은 “지난해 1월 지분을 매각했다”며 “운영에서 손 뗀 지 오래돼, 회사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강 의원과 임 의원은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다시 당선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에서 안전건설위원장, 기획재정위원장에 각각 취임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특혜성’ 포장이 의심되는 광양시 산길 6곳을 둘러봤다. 이 중 4곳은 다른 주민들은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사유지였고, 모두 임 의원 관련 업체가 공사를 맡았다.
물 받아놓듯 확보해두고 펑펑 쓰는 예산
지방의원 관련 업체가 소속 지방자치단체에서 따낸 수의계약 사업은 불공정 시비를 넘어 사업 자체의 타당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광양시 산길 공사 사례에서 보듯 예산을 쌈짓돈으로 쓰기 위해 편성한 불필요한 사업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광역의원이 가져오는 예산은 기초단체·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개별 광역의원의 입김만으로 사업 대상지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만큼 주민들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든다.

지난 1일 광양시 옥룡면의 한 마을에서 산 쪽으로 난 길을 오르자, 길 왼편으로 약 3만㎡에 달하는 너른 매실밭이 나타났다. 이 밭은 마을에서 약 2㎞ 떨어져 있는데, 오는 동안 민가는 없었다. 광양시는 2022년 11월 1885만원을 들여 이 외딴 매실밭을 가로지르는 ‘ㄱ’자 모양의 포장로를 만들어줬다. 초입에 출입을 제지하는 그물망이 드리워진 이 길은 다른 길과 연결되지 않고 농장 한복판에서 끝났다. 매실밭 주인만이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세금으로 포장한 것이다.
매실밭 주인은 강정일 의원의 선배이자 임형석 의원의 사회단체 선배였다. 그는 “광역의원이 후배라고 도와준 건 아니다”라며 “원래 아랫마을 길과 연결하려고 민원을 내서 시작한 건데, 다른 땅주인이 반대하면서 길을 놓다 만 것”이라고 했다. 길을 막은 것은 멧돼지 때문이라고 했다.

산길 포장 사업에는 주로 도의원들이 도에서 따온 예산이 쓰였다. 이런 예산을 관가에서는 ‘풀(수영장) 예산’이라고 한다. 수영장에 물 받아놓듯이 광역단체 예산을 확보해두고 있다가 지역구 민원이 있으면 퍼다 쓴다는 얘기다. 시 예산은 시청이 짜고 시의회가 감시하는데, 이런 예산은 도의원이 사업 대상지를 결정하니 예산 원칙에도 맞지 않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광역의원 예산은 인허가를 우회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광양시는 2024년 봉강면 한 마을의 산길을 포장하는 데 도비를 썼다. 마을에서 500m가량 떨어진 가파른 산기슭에 나무 재배용 온상이 있는데, 이 온상으로 가는 길을 포장했다. 땅 주인은 “임도(산길) 포장은 허가가 까다롭더라”며 “지인들이 도사업비로 하면 허가 나는 거랑 똑같다고 해서, 지인들한테 부탁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은 “그 길은 가본 일 없다. 동네 사람들이 갈 일도 없다”고 했다.

2024년 다압면의 한 매실밭에 60m짜리 포장로를 만드는 데는 특별조정교부금(특조금)도 사용됐다. 특조금은 기초단체가 재난 등으로 갑자기 돈 쓸 일이 생길 때 광역단체가 지원하는 예산인데, 이 산길 포장에 쓰인 것이다. 이 길 역시 매우 가파르고 험준한 곳에 있어서 매실밭 주인이 매실을 딸 때만 쓰이고, 다른 사람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옥곡면, 봉강면, 다압면의 산길 포장 사업은 2024년 광양시의회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됐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한 시의원은 “한두 명이 혜택받는 사업은 특혜”라며 사업 타당성을 재차 확인했다. 시 관계자는 “대개가 (여러 사람이 다니는) 통과 노선”이라고 했다. 현장 확인 결과 이 해명은 거짓을 섞어 상황을 모면하는 한편 특혜성 예산 편성을 방조한 것에 가까웠다. 지난 3일 광양시 관계자는 통화에서 “강우 시 노면 세굴(침식)이나 토사 유실 방지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포장했다”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6060014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6060012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7060600131

어떻게 찾았나

정보공개센터가 운영하는 ‘오픈와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민선 8기 지방의원의 경력, 민간업무 활동내역을 수집했다. 뉴스타파의 공직자 재산정보에서 의원들이 보유한 토지, 건물, 증권 내역을 찾았다. 이를 통해 의원 본인과 배우자·직계가족이 관련된 업체명을 추렸다. 이 업체명을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하는 계약업체와 대조했다. 535만여건의 계약정보는 인공지능(AI) 도구 클로드코드로 추출했다. 회사와 의원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500건에 가까운 법인,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서 확인했다.
공개된 자료를 기반으로 한 조사인 만큼, 이번에 발견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경향신문은 수집한 계약 현황을 누구나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개한다. 아래 링크나 URL,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접속 가능하다.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6/contracts/
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6/contracts/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박채움 기자 cucu@kyunghyang.com, 이수민 기자 water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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