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에서 한국어 ‘떼창’에 전율”···뮤지컬 본고장 유리천장 깨고 지휘봉 잡은 수진 킴 램지
1세대 아시아 여성 창작자로 주목
점점 커지는 K컬처 존재감 체감
세계 무대 꿈꾸는 젊은이들 응원
“언어·환경적 장애물은 늘상 존재
포기·타협 명분으로 삼지 말아야”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 최전선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지휘봉을 잡은 한국인 여성이 있다. 2022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뮤지컬 <케이팝>(KPOP)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수진 킴 램지(본명 김수진·42) 감독이다. 그는 브로드웨이 제작 뮤지컬의 첫 한국인 음악감독이자, 1세대 아시아계 여성 창작자 중 한 명으로 주목 받고 있다.
올해 토니상 3관왕을 차지하며 가장 뜨거운 화제작으로 떠오른 <캣츠: 더 젤리클 볼>(CATS: The Jellicle Ball)에선 부음악감독이자 서브 지휘자를 맡았다. 수진 킴의 부상은 K컬처의 존재감이 브로드웨이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뮤지컬 배우 아이비가 오는 8월 <시카고>의 ‘록시 하트’ 역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다. 수진 킴 감독을 서면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한 수진 킴 감독은 2008년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유학한 후 2011년 뉴욕대(NYU) 대학원 뮤지컬 창작과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영화를 보며 키워온 뮤지컬 작곡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이었다.
낯선 미국 땅, 그것도 ‘뮤지컬 너드’들이 모인 뉴욕에서 뮤지컬 음악가로 살아남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브로드웨이 창작 분야, 특히 작곡가와 음악감독은 백인 남성 중심의 영역이었다. 여성 창작자는 소수였고, 아시아계 여성 작곡가는 더욱 낯선 존재였다.
“영어도 완벽하지 않았고, 한국식 억양이 있는 작은 체구의 아시아계 여성이다 보니 저를 동등한 창작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는 부족한 영어 대신 자신 있는 피아노 실력으로 편견을 뛰어넘었다. 쉬는 시간까지 반납하며 리허설에 참여했고, 동기들의 작품 발표 반주를 도맡으며 신뢰를 쌓아갔다.
기회는 기적처럼 찾아왔다. NYU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2013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을 뒤흔들며 현지 프로듀서가 케이팝 소재의 뮤지컬을 기획한 것이다. 그가 개발 단계부터 참여한 뮤지컬 <케이팝>은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을 소재로 케이팝 산업의 이면을 무대 위에 옮긴 작품이다.
<케이팝>은 2017년 오프-브로드웨이(500석 미만 극장)에서 성공 후 2022년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음악감독으로서 브로드웨이 공식 데뷔작이자, 백인과 흑인, 라틴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아시아계 창작자들의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수진 킴 감독은 “브로드웨이가 한국인 창작자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역사적인 작품이었다”고 돌아봤다.

<케이팝> 이후 그의 활동 무대는 더욱 넓어졌다. 2023년에는 카네기홀 오리지널 콘서트에 참여했고, 2024년에는 미국 동부 투어 작품 <더 라스트 매치>의 총괄 음악감독과 <캣츠: 더 젤리클 볼>의 협력 음악감독을 맡았다. 올해는 미국 주요 극장 신작 뮤지컬 <아이 앤드 유>, <애플 보이스> 등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브로드웨이 안팎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는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달라졌다고 말했다. 뉴욕의 대표적인 콘서트 시리즈인 ‘브로드웨이 싱즈’에서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콘서트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매일 놀라고 있다고 했다. 6회로 기획됐던 공연이 매진을 거듭하며 8회가 추가됐고 최근 6회가 다시 연장됐을 정도다.
“관객들이 한국어 가사를 다 따라 부르더라고요. 정말 온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장면이었죠.”

수진 킴 감독은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화려한 대작 못지않게 이야기의 힘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고 짚었다. 그동안 규모와 스펙터클이 브로드웨이를 대표했다면, 이제는 일상적인 소재와 소수의 등장인물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전하는 작품들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미션 없이 90~100분 안팎으로 진행되는 공연도 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그는 “1막 구성의 작은 작품이지만 어떤 대작보다 깊이 있고 완성도가 뛰어나다”며 “브로드웨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고전 뮤지컬의 과감한 재해석 역시 새로운 트렌드다. 수진 킴 감독이 2024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부터 협력 음악감독 겸 협력 지휘자로 참여한 <캣츠: 더 젤리클 볼>은 클래식 뮤지컬의 대명사인 <캣츠>를 현대적인 클럽 문화와 보깅 퍼포먼스로 재해석해 신선한 충격을 안긴 작품이다. 올해 토니상에서 연출상과 안무상, 의상디자인상을 수상하며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작품으로 떠올랐다
브로드웨이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뮤지컬 작곡가인 남편과 어린 딸과의 평범한 일상을 가장 큰 행복으로 꼽는다는 그는 세계 무대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언어와 문화, 환경적인 장애물을 포기나 타협을 위한 ‘명분’이 되게 두지 마세요. 세계 어느 무대에 나가도 뒤지지 않는 한국인만의 끈기와 실력을 믿고 한 걸음씩 밀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꿈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와 있을 거예요.”
https://www.khan.co.kr/article/202606231550001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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