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문학 100년, 울산문학관 건립을 위한 ‘울산문학 아카이브’]평생을 “문화인의 선구자 노릇”…문학세계 재조명 필요
(3)다양한 장르의 전천후 문인 눈솔 정인섭
언양출신 영문학자·아동문학가
방정환과 도쿄서 색동회 창립
어린이 운동·문예 활동에 앞장
비교문학 연구 개척자 역할
한국문학 해외 소개·번역 출간
시·수필·평론 장르 넘나들어
한글운동·학술단체 창립 주도
친일 행적 등 후속 연구는 과제


그는 '후회 없는 인생'이라는 글에서 '만 49년 6개월 동안의 대학 생활'에 대해 "나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오히려 학문 연구와 강의에 열중했다"라고 회고했으며, 그의 자서전 머리말에서는 "약소민족으로서 태어난 탓으로 문화인의 선구자 노릇을 한답시고 이것저것 학술단체와 그 사업에 노력했으나 끝내는 초라한 선비의 한 사람으로서 지내온 셈"이라고 썼다. 자신의 삶을 "문화인의 선구자 노릇"이라고 것은 색동회(1923), 외국문학연구회(1927), 한글학회(1930), 극예술연구회(1931), 조선민속학회(1932), 조선영문학회(1932), 조선음성학회(1935), 국제펜클럽 한국본부(1950), 한글기계화 연구소(1962), 한국셰익스피어협회(1963),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1966), 한글전용 추진위원회(1966) 등 여러 기관과 단체를 창립하거나 회장을 맡아 수행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이러한 정인섭의 생을 영문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삶과 '문화 활동의 선구자 역할'로 요약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동문학가, 영문학자, 언어-한글학자,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번역가 등등 어느 하나로 설명 불가능한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둘째, 문학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로서의 활동이다. 근대문학사에서 '해외문학파'라 알려진 외국문학연구회(1927) 조직과 그 활동의 범주에서 행해진 정인섭의 비교문학의 이론적 개진과 세계문학을 위한 번역문학론을 피력한 글들, 이에 더해 1930년대 극예술연구회(1931) 및 실험무대를 조직해 활동하는 동시에 꾸준히 조선문단의 이슈에 대해 쓴 문단시평들, 1936년 코펜하겐 세계언어학자대회를 다녀와서 그 여로와 유럽 여러 나라의 방문을 이른바 '유럽 기행문'으로 발표한 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와 그 이후의 문학평론 관련 글들을 함께 엮어 출간한 2권의 문학평론집이 <한국문단논고>(1959)와 <세계문학산고>(1960)이다. 특히 <세계문학산고>는 '해외문학운동'에 30년 이상 활동한 내용을 외국문학에 대한 논문과 기행을 추린 책'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 13개국과 이집트 등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작가 스스로 <자서>에서 '개인의 느낌과 취미와 전문(專門)에 관한 기행문'이며 이는 '보통의 문학평론집과 달라서 안내와 수필을 겸한 책'이라고 말했다. 해외 기행문으로 쓰여진 수필들에는 작가의 자작시가 삽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눈여겨 볼 사항이다.
셋째, 정인섭은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동요와 동시에 비해 정인섭이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한 시인이라는 점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6권의 수필집을 간행한 수필가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1968년 간행한 첫 시집 <산 넘고 물 건너>는 자신이 평생 썼던 149편의 시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해외 기행의 여로를 바탕으로 쓰여진 50여 편의 시는 앞서 소개한 <세계문학산고>를 비롯해 해외 기행수필이나 다른 수필 속에 자작시로 포함했던 것을 따로 떼어 내어 시집에 수록했다는 것이다. 현제명이 작곡해 널리 불려지고 한국 가곡의 개척기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는 평가를 받는 '산들바람'도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1975년 간행한 '제2 창작시집' <별같이 구름같이>에는 총 97편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편들에 산재한 특징은 국내 지역과 명산 등을 기행하고 쓴 시들이 많다는 점이다. 첫 번째 시집이 해외 (문학)기행의 산물이라면 두 번째 시집은 국내 지역 여행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시집은 시인의 '한글'의 특성에 대한 인식을 편집상에 반영했는데 '일체로 구독점을 생략하고 가로쓰기'를 시도한 작품집이다.
정인섭은 6권에 달하는 수필집을 간행했다. <버릴 수 없는 꽃다발>(1968)을 시작으로 5년 동안 KBS에서 방송한 내용 가운데 절반을 정리해 간행한 <일요방담(日曜放談)>(1974) 그리고 고희(古稀)를 맞아 간행한 <모두 사랑했노라>(1976), '일요방담'의 나머지 방송 내용을 정리한 것과 인생 행로의 수기를 담은 <생각은 파도처럼>(1979), 자신의 일대기를 여러 책으로 썼지만 '버릴 수 없는 남은 이삭'들을 감춰둘 수 없어 쓴 <이제는 하고 싶은 이야기>(1980)를 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 저서이자 수필집이 된 <이렇게 살다가>(1982)가 있다. 여기에 더해 <못다한 인생:나의 인생관>(1978)이라는 저서가 있는데 이 책은 훗날 저자가 작성한 저서 목록에 '자서전'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정인섭의 수필은 자신의 일대기에 대한 '기록'과 회상의 감상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자작시를 포함하고 있다는 특징도 보인다.

그런데 정인섭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는 최근에야 시도되고 있다. 동시와 동극을 비롯한 아동문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해외문학' 활동을 바탕으로 한 번역문학론에 대한 연구, 해외 기행문에 대한 연구가 시도된 정도이다. 그의 시문학과 수필문학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아울러 일제 말기 그의 적극적 친일 행위를 '친일문학'의 범주에서 해명하는 연구, 민속학·한글연구·번역 등이 그의 문학세계에 끼친 영향 등 더 많은 질문들을 품은 정인섭의 다양한 분야의 활동과 문학은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주요 국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할 가능성을 품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 가치가 크다. 이것이 '정인섭 읽기'가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