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공정할 자신 없으면 차라리 사다리를 타라

최경운 사회부장 2026. 7. 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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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에게 격차는 제로섬 결과
내몫 앗아간 불공정에 분노
기득권 세력, 공정 외면하면
청년들의 거센 저항 맞을 것
주요 대학교 총학생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진행한 10일 전북대학교 총학생회도 대학 건지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총학생회는 "1980년 5월 이 캠퍼스에서 농학과 2학년 고 이세종 열사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던졌다"며 "민주주의를 지켜온 선배들의 이름으로, 앞으로 민주주의를 지켜갈 청년의 이름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최근 지인 2명과 만난 자리에서 ‘잠실 참정권 집회’가 화제에 올랐다. 모임 참석자는 모두 50대. 2030세대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내 한 표가 침해됐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에 다들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현직 고위 공무원인 A·B는 “MZ세대를 잘못 자극했다가는 기성세대가 낭패를 볼 수 있다”며 경험담을 소개했다.

A는 부하 직원 근무 평정에서 동점자가 나왔을 때, 평가자인 자기가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공직 사회에선 통상 이렇게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이렇게 했다가는 “왜 내가 뒷순위로 밀렸느냐”는 항의가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자 B는 “해법이 있다. 그럴 땐 차라리 사다리 타기를 하는 게 낫다”고 했다. 불공정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면 차라리 운에 맡기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게 MZ세대란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6·3 지방선거는 MZ세대가 불공정에 분노하면 기득권에 어떤 타격을 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고편 같았다. 지방선거 출구조사를 보면, 여권이 ‘내란 세력’이라고 수없이 딱지를 붙인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를 20대 남성의 75.3%가 당일 투표에서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성향이란 평을 들었던 30대 여성도 당일 투표에서 53.6%가 야당 후보를 선택해 여당 후보(42.8%)를 앞섰다. 사전 투표를 포함하면 야당 후보에 투표한 비율이 다소 줄어들긴 하지만 결과는 야당 후보의 승리였다.

젊은 세대의 분노가 기득권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는 건 세계적인 흐름이다. 2024년 미국·영국·프랑스·일본·한국 등 주요국 대선·총선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세계적 ‘수퍼 선거의 해’로 불린 그해 선거 트렌드는 ‘집권 세력의 고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당수 민주국가에서 정권이 교체되거나 집권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사회 시스템에 점점 더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처음 투표권을 행사한 젊은 세대가 기득권층에 대해 가장 강력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자산·소득 격차에 분노하고 있음은 최근 서울대·조선일보 공동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젊은 세대는 격차를 제로섬 게임의 결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의 손해는 누군가가 부당하게 이익을 가져갔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요즘 군대에선 근무 시간이 기준 시간을 10분이라도 넘기면 병사들이 추가 특박을 요구한다고 한다. 자기의 정당한 몫을 부당하게 빼앗겼다고 느끼면 참지 못하는 게 MZ 세대다.

고도 성장을 구가하며 모든 게 좋았던 시절엔 젊은이들의 의식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저성장이 고착화해 나눌 게 부족해진 사회가 됐다. 더구나 경기 침체, 사회적 불공정의 충격은 계층별로 골고루 분산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격차가 점점 커지고 이를 제로섬의 결과로 인식하는 젊은이들이 기득권의 불공정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 혁명 논쟁을 다룬 ‘마라, 사드’라는 희곡에서 사드는 급진적 혁명 지도자 마라를 향해 말한다. “구두가 조이는 친구, 한 구절도 쓸 수 없어 절망에 빠진 시인, 고기가 안 물린다고 불평하는 낚시꾼이 혁명에 따라나섰는데 혁명 후에도 여전히 구두는 조이고 시상(詩想)은 떠오르지 않고 물고기도 잡히지 않는다.” ‘빛의 혁명’을 내걸고 집권한 대통령이 자기 재판을 없애는 공소 취소를 감행한다면 청년들은 “바뀐 게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한국 유권자 중 2030은 28% 정도다. 이들의 격한 분노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공소 취소를 포기하거나 차라리 사다리 타기로 결정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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