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구의 블랙박스] 침묵하던 보통 사람들, 지방선거 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6·3 선거 이후 여론 반전 감지… 고립감 떨쳐내고 숨통이 트였다

“제가 뭘 그리 잘못했나?”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 5월 4일 경북 영주에 가서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 한 말이다. 6·3 지방선거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대통령이 답답한 마음에 똑같은 얘기를 되뇔 수도 있겠다 싶었다. 1년간 열심히 해왔는데 도대체 왜 선거 직후 갑자기 지지율이 떨어진 것일까.
그렇게 지지율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곧바로 ‘침묵의 나선 이론’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떤 국면에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때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본다. 특히 자신의 의견이 명백히 소수파에 속하고, 나아가 곧이곧대로 말했다가 다수파에 해코지당할 가능성까지 보이면 아예 침묵하게 된다. 그 결과 다수파의 의견은 실제보다 훨씬 존재감이 커 보인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이 1960년대 서독의 여론 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1974년 내놓은 이론이다. 침묵의 나선 이론은 현대 사회에서 여론의 추이를 읽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면서 다양한 영감을 준다. 실제로 지난 1년간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에도 적절해 보인다.
2024년 12월 3일 전직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계엄 사태가 있고 나서 6개월 만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 이후 대한민국 시민 상당수가 느끼는 속내의 추이는 이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낭패감. 도대체 전직 대통령은 무슨 정신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큰일을 저질렀을까. 2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줬던 사람(약 1640만명)이라면 사람 볼 줄 몰랐던 자신도 탓했겠다.
그러고 나서 새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는, 이른바 ‘내란’ 청산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상당수 시민이 느꼈을 속내는 다양한 색깔의 두려움이다. 새 정부나 다수당에 동조하지 않으면 계엄 찬성이나 내란 동조 세력으로 오해받지는 않을까. 법원을 공격하고, 한남동에서 태극기나 성조기를 몸에 감싼 이들과 똑같이 보이지는 않을까.
마침 여기저기서 ‘극우’ 딱지를 붙이는 유행이 시작된 일도 보통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했을 것이다. 새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극우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살기에 팍팍한 20대와 30대는 그보다 형편이 평균적으로 나은 윗세대로부터 새 정부와 여당 지지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극우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지사 시절 계곡의 불법 영업 시설을 쓸어버리듯이 ‘열심히’ 일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도 침묵을 부추겼다. 세간의 비아냥거림대로 드라마를 밝히고, 이상한 역사책을 탐독하고, 술을 즐겼던 전직들과 비교하면 누가 봐도 ‘행정가’로서 유능해 보이는 대통령이니까. 괜히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합리적 비판마저 자제하게 됐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이 촉발한 유례없는 반도체 산업 호황과 그에 따라 치솟는 주가도 대통령과 새 정부 비판을 가로막았다. 경제 관료 출신 청와대 정책실장이 실토한 “오늘의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은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뚜렷한 경제 지표인데도 그랬다. 전월세를 포함한 부동산 시장의 불안한 상황까지 염두에 두면 서민 경제는 오히려 위기다.
이 모든 일이, 열성 지지자만큼의 확신이 없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보통 사람들을 1년간 침묵하게 했다. 그간 대통령을 웃음 짓게 한 높은 지지율과 서민의 삶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내부 권력 투쟁에만 골몰하다 급기야 자기 당이 배출한 대통령까지 공격하는 집권 여당의 오만한 모습은 그 침묵의 결과다.
침묵의 나선 이론은 반전이 있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어떤 의견이 지배적이고, 어떤 의견이 세력을 얻고 있는지 감지하는 ‘사회적 안테나’가 있다. 만약 현재의 소수 의견이 미래에 세력을 얻을 것으로 예측되면 사람들은 고립 공포를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공개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계기가 6·3 지방선거 결과였다. 선거 결과만 산술적으로 집계하면 여당의 압승이다. 하지만 향후 여론의 방향타가 될 만한 서울과 전국 선거구로 관심을 모았던 경기도 평택이나 부산 북구에서 또렷하게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반대와 견제의 흐름이 나타났다. 1년간 침묵을 강요당하던 이들이 그 선거 결과를 보면서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공동체의 침묵하던 다수가 일단 말문을 열기 시작하면 여론이 결코 지난 1년처럼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역동성을 감지했는지 여권 내 기득권 세력의 ‘대통령 길들이기’도 시작됐다. 그간 이들이 대통령을 꼭두각시 정도로 취급해 온 속내마저 드러내면서 말이다. 누구보다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美의회, 김명일 목사 석방에 “종교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 계속 지지”
- [단독] 기준 없는 외국인 건보, 체납 58% 급증
- [더 한장] 드리블에 중거리 슛까지…‘축구하는 로봇’
- 트럼프 1기 참모, 빅터 차에 반박… “北과 대화? 더 많은 도발을 부를 뿐”
- 한창 물올랐다, 신안에서 오늘 잡은 특A급 병어 손질 마쳐서 산지 직송
- 이세돌 “당신은 왜 시키는 일만 하면서 AI에 대체될까 두려워 하나”
- 오직 비거리와 관용성에 집중, 10만~30만원대 고반발 드라이버 특가전
- 이제 여름 회의 제왕은 단연 밴댕이, 한 접시 딱 2만원 조선몰 단독 공동구매
- 트럼프가 FIFA 직접 전화했더니, 美 에이스 퇴장 징계 뒤집혔다
- [단독] 호암 이병철 회장의 첫 ‘공수래공수거’ 글씨 경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