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권 반도체 ‘속도전’에…안전성 검증 안 된 ‘SMR 띄우기’

정부 신규 대형 원전 공식화 불구
건설에 최소 7~8년, 임기 내 불가
공기 짧고 비용 낮은 SMR 부상
상용화 등 놓고 정책 지원 요구
정부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을 위한 신규 대형 원전 건설 방침을 사실상 못 박았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력난 우려를 고려한 조치다. 이재명 정부가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을 촉진하면서, 우려되는 SMR의 안전성 문제 등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5일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3대 메가프로젝트 청사진 발표로 SMR 개발이 빨라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6.4GW(기가와트) 수준의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SMR 건설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운영에 필요한 전력 마련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먼저 태양광과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전력 공급이 끊기면 막대한 피해를 보는 반도체 생산설비 특성 때문에 날씨 등의 영향으로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담보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에만 기댈 수는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에 정부가 꺼내 든 카드는 대형 원전 건설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3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도체는 24시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양만으로는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며 “원전을 추가로 지어야 할지를 빨리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전남 영광에 2기, 울산 울주에 2기 등 총 4기의 대형 원전을 더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고 부연했다. 유력 부지까지 언급하며 사실상 대형 원전 건설 계획을 공식화한 셈이다.
산업계에선 부지가 확정된 상태에서도 대형 원전 건설에 최소 7~8년이 걸린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강조하는 속도전을 충족하기엔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역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충돌한다는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서남권 반도체 산단 조성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SMR 개발이 관건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SMR은 300㎿(메가와트) 이하 규모의 모듈 형태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해 만드는 원자로를 의미한다. 전체 건설 공기는 3~4년 정도다. 대규모 냉각수가 필요 없어 해안이 아닌 내륙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문제는 국내 SMR은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최근 부산 기장군을 국내 최초 SMR 건설부지로 선정했다. 한국형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실증 기회를 이제야 잡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27개 SMR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상업 운전하고 있는 모델은 러시아와 중국이 보유한 2기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SMR 개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지원책은 SMR 국가전략기술 지정이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3일 SMR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세금 부담을 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선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SMR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고 연구·개발비 등에 대해 최대 55%까지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도 SMR의 개발·실증 및 보급과 연구·개발(R&D) 등을 지원하는 ‘원자력산업 발전 지원 특별법’을 내놨다.
주요국 정부도 SMR 개발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은 2024년 제정한 원자력발전촉진법을 바탕으로 SMR 인허가 비용 지원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친환경 정책을 중시하는 유럽연합(EU)은 2022년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조건부 ‘전환기 활동’으로 포함했다.
그러나 SMR의 한계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SMR 시장은 정책·기술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수요와 공급 전망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SMR 운전에 필요한 고순도저농축우라늄 생산설비를 러시아 등 극소수 국가만 보유하고 있어 물량과 가격 모두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대형 원전과 마찬가지로 방사성폐기물 처리 등 안전 문제도 존재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찬성론자들은 SMR이 대형 원전보다 규모가 작아 위험도도 낮고, 따라서 격납건물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며 “하지만 가장 기술이 발전했다는 미국에서도 구체적인 심사 과정에서 격납건물을 건설하라는 요구가 나온다”고 말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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