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가출 미성년자 ‘그루밍 범죄’ 노출
왜곡된 신뢰 만든 ‘나쁜 어른들’… 경제·정서 취약 청소년 노렸다
‘심리적 지배형 성범죄’ 판결 분석
착취물 제작·성매매 등 확대 패턴
작년 1226명 피해… 2년 새 29%↑
“동의상태 확인 패러다임 바뀌어야”
가출한 청소년을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저지른 성인 남성(7월3일자 5면 보도)이 최근 경찰에 붙잡히면서 경제·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의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른바 ‘그루밍 범죄’가 재조명되고 있다. 매년 증가세인 관련 피해 규모에 더해 성매매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우려가 커진다.
5일 미성년자 대상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은 ‘심리적 지배형 성범죄’ 관련 주요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가출 상태나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한 취약함을 파고들어 정서적 의존 관계를 형성했다. 이후 채무 협박으로 심리적으로 종속하고 이를 성매매·조건만남·성착취물 제작 등으로 확대하는 패턴을 보였다.
심리적 지배를 이용한 성범죄는 낯선 유형이 아니다. 최근 수원에서도 유사한 사건으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수원팔달경찰서는 미성년자의제강간 등의 혐의로 A씨를 검거해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달 25일 가출한 상태였던 중학생 B양의 집 앞을 찾아가 데리고 나온 뒤 지난 1일까지 수원 팔달구 일대 모텔과 룸카페 등을 전전하며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B양의 가족이 112에 실종 신고를 한 이후 경찰이 인상착의를 단서로 추적해 A씨와 함께 있던 B양을 찾아내면서 검거로 이어졌는데, 경찰은 A씨가 B양의 가정불화를 언급하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고 이를 통해 심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겉으로 동의한 것처럼 보여도 법원은 가해자의 기망이나 왜곡된 신뢰관계에서 비롯됐다면 ‘진짜 동의’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2023년 대구지법은 가출한 15세 피해자에게 채무를 지워 성매매를 강요·알선한 가해자에게 징역 5년을, 창원지법은 10대 초중반 피해자 최소 7명에게 접근해 외로움 등 정서적 취약함을 파고들어 신뢰관계를 형성한 뒤 나체사진을 요구·유포하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한 ‘온라인 그루밍’ 가해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고 이를 토대로 성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이른바 ‘온라인 그루밍’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상담 현장에서는 성인이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신뢰를 쌓은 뒤 심리적으로 길들여 착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과정을 그루밍이라고 설명한다. 뚜렷한 위협 없이도 상대를 순응시킨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협했는가’를 따지는 협박·강요죄의 잣대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2023년 수원역 ‘디스코팡팡’ 사건에서도 일부 직원들이 미성년 이용객의 팬심을 이용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성착취물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주범이 징역 7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실제 이런 유형의 피해 규모는 매년 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연차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국 17개 지원센터가 지원한 피해 아동·청소년 등 피해자는 1천226명으로, 2023년 952명에서 2년 새 29% 가까이 늘었다. 피해 경로는 채팅앱·SNS 등 온라인 매체가 82.7%였고, 피해 유형으로는 조건만남이 942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루밍도 206건에 달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유사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큰 이득을 취한 게 아니다’는 식으로 방어하는 경우가 많다. 폭행·협박 여부가 아니라 충분히 자기 의사로 동의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를 살피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며 “가해자가 어떤 경로로 접근했는지, 가출 상태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심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조사 과정에서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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