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건국 250주년 자축… 트럼프 "공산주의는 암과 같아" [르포]
트럼프 ‘반공’ 연설 뒤 85만 불꽃
이면엔 당파 분열·인종주의 퇴행

미국이 건국 250주년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내내 이어진 폭염과 뇌우를 딛고 다음 날로 넘어가기 직전 폭죽을 쏴 올리는 데 성공하며 생일을 자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장수와 건재를 자랑했지만, 여전한 당파 분열 조장으로 국민의 통합 염원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나왔다.
“미국인이란 게 자랑스럽다”
건국 250주년 축제를 함께 즐기려 이날 수도 워싱턴으로 미국인들이 몰려들었지만, 날씨가 이들을 괴롭혔다. 40도를 웃도는 폭염의 여파로 이날 낮 시간대에 예정됐던 퍼레이드가 취소됐고, 탈진과 탈수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오자 행사장인 도심 잔디 공원 곳곳에 배치된 주(州)방위군 대원들이 물병을 나눠 줬다.

야간 행사 ‘미국에 바치는 헌사(Salute to America)’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 행렬은 길이가 수백 m는 돼 보였다. 성조기 색상의 옷이나 장식을 착용한 이들은 매 시간 정각에 펼쳐지는 전투기 에어쇼에 감탄하며 무더위를 견뎠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온 마리아 톰슨(66)은 본보에 “40도의 기온에도 기꺼이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며 미국의 정신을 느낀다. 미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후 7시쯤부터는 돌풍도 불기 시작했다. 예보된 뇌우의 전조였다. 주최 측은 목을 빼고 행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주변 박물관과 연방정부 건물로 대피시켰다.

닫혔던 행사장 출입구는 밤 10시쯤 다시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다. 그는 예정보다 한 시간 넘게 늦은 밤 11시쯤이 돼서야 연단에 올랐다. 연설에서 그는 폭풍이 올지 모르니 행사를 연기하자는 참모들에게 “다음 주는 안 된다”며 “오늘이 바로 독립 선언 250주년이기 때문”이라 말했다고 소개했다.
밤 11시 59분 터진 첫 축포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조각돼 있는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을 찾아, 미국인의 정체성이 공격당하고 있으며 공산주의가 미국에 침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적인 방식의 사회주의 구현을 추구하는 ‘민주사회주의자(DSA)’ 세력의 최근 약진을 의식한 발언임이 분명했다.

이날 연설도 같은 주제였다. 집권 후반기 의회 지형을 결정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그는 야당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을 상대로 거센 이념 공세를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산주의는 “암과 같다”며 “빨리 잘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산주의 체제는 미국 체제의 정반대이며, 우리의 전사들은 전 세계 전장에서 공산주의와 싸웠다"며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을 거명하며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늘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절정은 불꽃놀이였다. 매년 7월 4일 내셔널몰에 모여 밤 9시쯤 시작되는 폭죽 쇼에 환호한 뒤 미국인들은 벅찬 마음으로 흩어졌다. 올해는 첫 축포가 밤 11시 59분에 터졌다. 주최 측은 85만 발을 동원해 기네스 세계 기록을 깨겠다고 미리 공지했었다. 끊임없이 포성이 울린 40분간 하늘에서는 번개도 함께 번쩍였다.
백인 선민의식 조장의 결과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의 선민의식을 자극했다. 연설에서 “250년간 미국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희망이었고 약속이었고 빛이었고 영광이었다”며 “세계 어디에도 우리와 같은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25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공화국은 여전히 우뚝 서 있으며 강건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내셔널몰 인근 메트로(지하철) 스미스소니언역 앞에서 본보와 만난 데이비드(63·미시간주 거주)는 “건국한 지 25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 자체가 큰 성취”라며 “미국이 더 강하고 위대한 나라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국이 어떤 나라가 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미국인들은 ‘하나 된 미국’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시시피주 옥스퍼드에서 16시간 차를 몰아 워싱턴에 왔다는 딜런 심스(34)는 “유나이티드(United·통합된)라는 단어는 이 나라 이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지만 미국인에게서 멀어진 가치라고 느낀다. 우리가 더 단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본보에 말했다.

그러나 ‘편 가르기’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비결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가 인정하는 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건국 250주년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2016년 의회가 초당적으로 꾸린 ‘아메리카 250’과 별도 단체인 ‘프리덤 250’을 만들어 행사를 장악했다. 모든 미국인을 위한 행사를 만들겠다는 프리덤 250 측 얘기와 달리, 이 단체가 보수 이념을 행사의 중심에 두고 축제에 당파색을 입혔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국민 통합의 기회로 삼아 온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당파적인 입장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퇴행적 인종주의 부활 역시 트럼프 집권기 미국의 특징이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의 삼각모(트리코르느)를 쓰고 메트로를 탄 한 흑인 여성 자원봉사자는 본보에 “이 모자는 독립전쟁 당시 미국 군인들이 썼던 것이다. 내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도 국가의 자유와 노예 해방을 위해 혁명 전쟁에서 싸웠다”고 말했다. 흑인 또한 미국 250주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날 백인 민족주의 단체 ‘애국전선’ 소속 남성 수십 명이 남부군 깃발을 들고 복면을 쓴 채 워싱턴 거리를 행진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조지워싱턴대 전문가를 인용해 “다문화주의와 다양성을 거부하고 미국 내 백인 민족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단체”라고 애국전선을 소개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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