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쓰레기 줍기 트레킹 1000회 “아직 집게 놓을 생각 없습니다” 박판수 부산 금정구 클린지킴이
금정산·윤산은 주 2회 이상 올라
쓰레기 업사이클링 활용도 강조

등산 배낭에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집게다. 지난달 10일 오전 부산 금정산 계명봉으로 향하는 산길에서도 박판수(75) 씨의 손에는 어김없이 집게가 들려 있었다. 등산로 주변에 버려진 종이컵과 비닐, 생수병을 주워 담는 모습은 지난 12년 동안 변함없는 그의 산행 방식이다. 이날은 그가 국내외 산을 누비며 이어온 ‘쓰레기 줍기 트레킹’ 1000회를 맞는 날이었다.
박 씨의 쓰레기 줍기 산행은 2014년 퇴직 후 시작됐다. 건강을 위해 친구들과 산행을 다녔는데, 어느 순간 산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날 이후 집게와 배추 망을 들고 산에 올랐다. 금정산을 비롯한 부산 지역 산은 물론 설악산과 지리산 등 전국의 산,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에서도 쓰레기를 주웠다. 지금까지 이어진 1000회의 트레킹 가운데 약 90%는 부산 지역에서 이뤄졌다.
현재 금정구 클린지킴이로 활동 중인 그는 금정산과 윤산을 번갈아 오르며 금정구에서만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쓰레기를 줍는다. 금정구 산에서는 구청이 지원하는 쓰레기봉투를, 다른 지역에서는 배추 망을 사용한다. 산행을 마칠 때면 종이컵과 비닐, 생수병, 담배꽁초 등으로 봉투가 가득 찬다.
산행 기록도 빠짐없이 남겼다. 등산 코스와 소요 시간 등을 일기장에 꼼꼼하게 적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2019년 산림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박 씨는 1000회라는 숫자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기록을 세우려고 시작한 게 아닙니다. 자연을 좋아하니까 자연에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보자는 마음이었어요. 후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자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12년 동안 산을 오르며 금정산의 변화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특히 등산객들의 환경 의식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능선 구간의 쓰레기는 정말 많이 줄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쓰레기를 줍고 있으면 오히려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 사람들의 눈길이 덜 닿는 계곡과 임도 주변은 여전히 숙제다. 생활쓰레기와 폐자재 등이 버려진 것을 자주 본다고 했다.
박 씨는 최근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이 이뤄진 만큼 시민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금정산은 부산시민의 허파입니다. 탄소를 흡수하고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는 산이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국립공원 지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행정기관만의 일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공간입니다.”
요즘 그의 관심은 쓰레기를 줍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쓰레기를 어떻게 자원으로 되돌릴 것인가’에 있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담배꽁초를 재활용하는 사례를 접한 뒤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예전에는 쓰레기를 줍는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면 이제는 업사이클링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산에서 많이 나오는 폐플라스틱이나 담배꽁초도 기술을 활용하면 새로운 자원이 될 수 있잖아요. 쓰레기가 다시 자원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날 박 씨의 1000번째 트레킹에는 그가 수강하고 있는 금정구청 신중년더채움학습관 ‘사포지향과 함께하는 힐링트레킹’(강사 한문수) 수강생 17명이 함께했다. 계명봉 정상에서 작은 축하 행사를 열고, 그와 함께 쓰레기를 주우며 시민 참여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앞으로도 집게를 놓지 않을 생각이다. “보람을 바라며 하는 일은 아닙니다. 자연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덜 끼치는 것 같아서 좋을 뿐이에요. 1000번이든 2000번이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산에 오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