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공짜는 없다 … 살아온 대로 떠나"
26년간 수천 명 마지막 배웅
故이건희 회장 30억 후원
마지막 모습은 삶이 쌓인 결과
주식창 열어둔 채 떠난 사람도
대부분 자기답게 못 산 걸 후회
임종 난민 증가 큰 사회문제
수도권 호스피스 병원 시급

"생의 마지막까지 주식 창을 열어놓고 매수 버튼을 누르다 가신 분도 계셨어요."
지난 26년간 수천 명의 죽음을 배웅한 능행 스님(자재병원 이사장·66)의 말이다. 스님은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만, 마지막 모습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죽음에도 공짜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에세이 '생의 모닥불'(김영사)을 펴내고 강연을 위해 상경한 스님을 매일경제 사옥에서 만났다. 스님은 2013년 울산시 울주군에 불교 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자재병원을 건립했으며 이사장을 맡고 있다.
병원 건립에는 두 명의 큰 후원자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다. "건축비의 절반인 25억~30억원을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님이 '이건희 회장' 이름으로 기부해주셨어요. 홍 관장님은 공사 현장도 직접 방문하셨죠."
스님은 "당시 너무 놀랐고 감사했다"며 "병원 하나를 위해 마음을 써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병원을 잘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원을 세우면 끝일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호스피스 병원은 환자 부담이 5%고 의료 수가가 낮아 돌봄 인력을 충당하기 어렵다. 병상 51개인 자재병원은 매월 후원금으로 빠듯하게 운영된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숨을 못 쉴 정도였는데, 이제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어요. 물론 현실은 바뀐 게 없지만, 사람도 죽고 사는데 선한 일이니 잘되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죠."
자재병원에선 매일 2~3명씩, 많을 땐 7명이 세상을 떠난다.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에서 분투하는 현대인들에게, 스님은 어떤 위로와 조언을 건넬까.
"고통의 원인을 일단 찾게 해요. '이것 때문에 괴롭구나' 알게 되면 고통이 확 줄어듭니다. 모를 때는 공포가 배가되죠. 직시하는 게 첫걸음입니다."
이어 '분리' 단계를 거친다.
"감정과 일과 사람이 섞이면 고통 덩어리가 커져요. 감정은 감정대로, 일은 일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분류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유가 생기고 통제할 수 있어요."
스님 역시 처음에는 최고경영자(CEO)와 수행자라는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
"CEO는 CEO에 맞게 일해야 하고, 수행자는 수행에 집중해야 해요. 섞이면 헷갈리니까 분류를 잘 해야지요."
인공지능(AI) 시대는 '고독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세상이 초스피드가 될수록 우리는 나를 버리고 가족도 버려요. 혼자 죽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AI는 점점 인간이 되고, 인간은 로봇처럼 살아가려고 해요."
스님은 호스피스를 '잘 죽도록 돕는 배려'가 아니라 '인간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의료'라고 정의한다.
"환자는 자주권을 잃습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가족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죠. 실존적 가치를 상실하는 게 가장 큰 비극이자 두려움입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왜 이렇게 살았을까, 누구를 위해 살았을까 후회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사람들은 돈을 더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자기답게 살지 못한 것, 가족과 충분히 함께하지 못한 것, 일과 책임에 쫓겨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죠."
죽음의 순간까지 적절한 의료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임종 난민' 증가는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스님은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 호스피스 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더 많은 사람이 존엄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하기 위해선 수도권 병원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호스피스 대모라는 '극한의 역할'을 감내하느라 눈에 띄게 수척해진 스님에게 '후회는 없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절대 후회는 없지만 너무 힘들기는 해요. 그래도 그 많은 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지키며 떠날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가요."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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