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르신도 ‘학교’에 간다…대구 기억돌봄학교, 초고령사회 돌봄 해법 찾다

박아영 기자 2026. 7. 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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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경증치매 대상 18곳 운영 사업
샬롬기억돌봄학교 직접 가보니
인지재활·텃밭·운동으로 어르신 일상 회복
농촌형 지역 돌봄 모델 가능성 주목
대구 서구 샬롬기억돌봄학교 전경.

대구 서구 샬롬기억돌봄학교에 들어서자 먼저 ‘등교’한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복도와 교실 벽면에는 어르신들의 사진과 기록이 빼곡했다. 지나간 추억을 담은 사진부터 친구들과 함께한 활동 기록, 앞으로 남기고 싶은 기억까지.

이곳은 경증치매 어르신들이 하루하루를 쌓으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는 작은 학교다.

대구시가 2013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기억돌봄학교’는 경도인지장애자 등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돌봄공간이다. 현재 대구지역 18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대구 서구 샬롬기억돌봄학교 복도와 교실 벽면에 어르신들의 사진, 활동 기록 등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기억돌봄학교는 단순히 어르신을 보호하는 공간이 아니다. 인지재활 프로그램과 주간보호 서비스 등을 통해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기 전 인지기능을 유지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학교형 돌봄’ 모델이다.

샬롬기억돌봄학교도 전산인지·회상·한글교실 등 인지활동뿐 아니라 실버체육과 파크골프, 원예치료 등 어르신들이 직접 몸을 움직이고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오후 수업은 텃밭활동으로 시작됐다. 어르신들은 직접 흙을 만지며 작물에 물을 주고 수확했다. 한 어르신이 “물을 그렇게 많이 주면 안 된다”며 수십년 전 농사 경험을 들려주자, 다른 어르신은 “지난번처럼 오늘 먹을 만큼만 따가면 되지 않겠냐”고 최근 기억을 꺼냈다.

정진아 샬롬기억돌봄학교 원장(맨 왼쪽)이 어르신들과 텃밭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텃밭은 자연스럽게 기억을 불러내는 공간이 됐다. 흙을 만지고 작물을 돌보는 동안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오래전 농사 경험부터 최근 함께한 활동까지 기억과 추억을 오가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어진 파크골프 시간에는 분위기가 한층 활기를 띠었다. 한 어르신이 공을 칠 때마다 주변에서는 “잘한다”는 응원과 박수가 쏟아졌다. 잘 치고 못 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웃고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교실에는 활기가 넘쳤다.

샬롬기억돌봄학교 어르신들이 파크골프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후 진행된 파크골프 시간에는 분위기가 한층 활기를 띠었다. 공을 치는 어르신을 향해서는 “잘한다”며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결과보다 함께 웃고 활발히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농업·농촌’을 주제로 한 수업과 글쓰기 활동이었다. 어르신들은 발전하는 농업에 대해 배우고, 농업·농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내려갔다. 직접 농사지었던 경험과 논밭이 펼쳐졌던 고향 이야기 등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교실 안에서 다시 펼쳐졌다.

정진아 샬롬기억돌봄학교 원장은 “기억학교는 어르신을 단순히 보호하는 곳이라기보다 남아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사회 안에서 관계를 이어가도록 돕는 곳”이라며 “학교라는 이름처럼 어르신들이 계속 배우고 참여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샬롬기억돌봄학교 어르신들이 수업시간에 농요를 배우고 있다.

이모(82) 어르신은 “선생님들이 다정하고 친절해서 이곳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며 “집에만 있으면 멍하니 TV만 보는데 여기 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생활하니까 활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억돌봄학교가 만드는 변화는 어르신 개인의 일상을 지탱할 뿐 아니라 가족 돌봄 부담 완화로도 이어진다. 치매 초기 단계에서는 가족들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학교 이용과 상담을 통해 치매를 이해하고 돌봄 방법을 찾아가는 계기가 된다.

초고령사회에서는 치매 돌봄 역시 병원과 시설에만 의존하기보다 어르신이 살던 지역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령인구 비중이 높고 돌봄 인력과 의료시설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지역 기반 돌봄 체계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정진아 샬롬기억돌봄학교 원장(오른쪽 두번째)이 어르신들의 글쓰기 활동을 돕고 있다.

이날 진행된 텃밭활동은 농업 자원을 활용한 돌봄 프로그램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생계를 위한 농사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참여하는 공동체 활동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농촌에서는 텃밭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이 몸을 움직이고, 경험을 나누며,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다”며 “어르신들이 지역 안에서 계속 연결돼 살아갈 수 있는 복지·의료·돌봄의 통합 관리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한 어르신은 기억돌봄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기다려지는 하루’라고 표현했다. 이어 “이 나이에도 매일 새로운 나날이 펼쳐지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며 “몇 년째 다니고 있어도 아침이 늘 기다려지고 설렌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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