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 ‘스타벅스’조롱 응원, 전국 학생 민주역사 교육 시급하다

노성태 2026. 7. 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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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태(남도역사연구원장)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

최근 고교야구 청룡기 대회 현장에서 우리 교육계와 사회 전체를 큰 충격과 참담함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났다.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등학교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롱 섞인 응원을 보냈다.'5·18 탱크데이' 파문을 고스란히 흉내 낸 악의적인 조롱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해당 학교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배재고 학교 측과 총동문회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 남긴 정신적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온라인 음지에서 암세포처럼 자라나던 '일베식' 역사 왜곡과 지역 혐오의 언어가, 마침내 학교 담장 밖 신성한 운동장 위로 터져 나와 동 또래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5월의 학살 현장을 직접 목격한 지역 역사가인 필자에게도 이번 사태는 마음이 무겁다. 학생들이 교육 현장인 야구장에서 조직적인 율동과 함께 내뱉은 구호는 단순한 일탈이나 은어가 아니다.

이는 국가 권력의 잔혹한 학살 속에서 숨져간 5월 영령들을 '탱크'라는 기계적 살상 무기로 조롱하고, 그 비극적인 기억을 일상의 소비문화인 '스타벅스'와 결합하여 유희화한 잔인한 정신적 폭력이다. 우리가 교실 안에서 독립의 가치와 민주의 역사를 가르치는 동안, 아이들은 정작 스마트폰 액정 뒤의 어두운 세계에서 인간 존엄에 대한 파괴를 놀이로 학습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승리'와 '성공'만을 독촉해 왔다.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가거나, 야구를 잘해서 프로 구단에 지명받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가르쳤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기술의 탁월함이나 학업 성적만이 인간의 됨됨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증명해 주었다. 공동체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공감 능력', 타인의 고통과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헤아리는 '연대의 감수성'이 결여된 교육은 결국 괴물을 키워낼 뿐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그 시린 피눈물을 '탱크데이'라는 얄팍한 밈(Meme)으로 소비하며 희희낙락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우리 기성세대가 그동안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에 얼마나 철저히 실패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의 아픔을 조롱하며 얻는 승리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으며, 역사의 등불을 끈 채 달성한 학업 성취가 이 사회에 무슨 이로움을 줄 수 있겠는가.

공부만 잘하는 기계, 기술만 뛰어난 괴물이 아니라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아는 평범한 이웃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본령임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배재고 사건은 향후 학교 안에 만연한 일베 문화를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근조화환 놓인 배재고. 연합뉴스

먼저 교육청은 교사들이 정당한 생활지도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권위를 전폭적으로 복원하고 구체적인 법적·행정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교사들은 일베 용어를 제지하려 해도 학부모의 '정서적 아동학대' 고소나 악성 민원이 두려워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 교사들이 악성 민원의 위협 없이 단호하게 혐오를 꾸짖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도할 수 있는 강력한 보호막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빅테크 및 유통 기업들의 사회적 책무를 뼈아프게 물어야 한다. 사태의 도화선이 된 스타벅스처럼 역사의 비극을 상업적 마케팅의 소재로 전락시키는 행태에 경종을 울려야 하며, 유튜브 쇼츠나 틱톡(TikTok) 등의 알고리즘이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를 무차별적으로 노출하여 조회수를 올리는 구조에 엄중한 법적 제동을 걸어야 한다.

시민사회와 가정의 각성도 동반되어야 한다. "애들이 모르고 장난친 것 가지고 진학을 막느냐"는 식의 온정주의나 내 자식 감싸기는 아이들을 더 큰 범죄자로 키워내는 독약이다.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 자녀의 스마트폰 미디어 사용을 지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이 시민사회 주도로 확산되어야 한다.

다행히 교육 현장에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추진해 온 역사·민주주의 교육 프로그램인 '광주정신 체험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광주시 교육청은 중학교 1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5월의 역사와 인간 존엄을 배우는 '5·18 현장' 등을 직접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단순히 교과서 텍스트를 암기하는 것을 넘어, 민주묘지의 비석을 닦고 옛 전남도청의 총탄 흔적을 마주하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 이 성공적인 경험은 광주라는 지역 울타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역사 왜곡과 혐오의 칼날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시 교육청이 증명해 낸 역사 체험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독립'과 '민주'라는 시대정신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전국 모든 시·도 교육청으로 전면 확대되어야 한다.

97년 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은 "독립은 곧 민주"라 외치며 불의에 맞섰고, 1980년 5월의 광주는 주먹밥을 나누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냈다. 이 위대한 역사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우리 사회가, 이제는 혐오와 조롱의 온상이 되어가는 교실과 운동장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이제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연도와 사건 이름만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은 아이들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 교육 및 올바른 역사 교육의 강화'가 시급하다.

역사는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의 혐오와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