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 전속력으로 끝장냈어야”...보수 정치집회 변질된 美 250돌[르포]
인터뷰 7명 중 6명이 “트럼프 지지”
마가(MAGA) 모여 정치 집회화
백인 우월주의 단체 행진까지
민주당 우세 지역, 참가 거부
공화당 지지자도 “너무 정치적”

미국의 독립·건국 250주년 기념일인 4일(현지 시간) 오후 4시 워싱턴DC에 위치한 대형광장 내셔널몰. 지하철에서 올라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38도의 폭염에 들것에 실려 응급의료센터로 향하는 사람이었다. 얼굴이 창백해져 이마를 짚으며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고령자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너머로는 행사장 입장을 위해 늘어선 긴 줄이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코디힘씨는 “애국심 때문에 왔다”고 운을 뗐다. 의회의사당 투어를 마치고 나왔다는 그는 “자유가 무엇인지, 폭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며 “이번 독립 250주년은 그 수많은 원칙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한 코디힘씨는 이란전과 관련 “이란은 미국의 정치, 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꿰뚫어보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냥 이란에 뛰어들어가서 전속력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란과 협상을 하며 이란의 전략에 말려들어갈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군사작전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전통적으로 미국 독립기념일은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함께 통합, 화합의 가치를 기리는 대표적인 명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행사 전부터 ‘가장 화려한 트럼프 집회가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정치적 행사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건국 250주년 준비를 위해 10년 전 구성된 초당적 위원회인 ‘아메리카250’를 사실상 배제하고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프리덤 250’을 조직했다.
이들이 추진한 행사로는 지난달 14일 트럼프 대통령의 80세 생일을 맞이해 백악관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경기 시합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2.4km에 달하는 내셔널몰 부지의 상당 부분을 막아 보수 단체와 방위 산업체 전시를 하는 ‘위대한 미국 주 박람회(Great American State Fair)’로 꾸몄으며 5일 보수 성향의 기독교 연사들이 참여하는 궐기 대회도 기획했다.
이런 영향으로 이날 서울경제가 인터뷰한 7명 중 6명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빨간색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마가)’ 모자를 쓴 사람과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주로 눈에 띄는 등 취임식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인 모습이었다.

조엘씨는 “현 정부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꽤 잘해왔다고 생각한다”며 “정치의 한 가지 특징은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전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희생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이란이 더 많은 것을 얻어냈다는 평가가 있지만 오히려 세계 평화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시각을 보인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다는 벤씨는 “내 눈에 지금까지 완벽한 대통령은 없었다”면서도 “전반적으로 현 행정부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의 국경정책을 좋아한다”며 “이민자들이 미국에 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들어와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또 “사회주의 이념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 시장이나 자본주의 정책을 펴는 것도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제시카씨는 “현 정부가 자유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성소수자 등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하면 억압하는 것이 위선적이라 싫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을 ‘백인만의 나라’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백인 우월 단체가 워싱턴 도심에서 행진을 벌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패트리어트 프런트’(Patriot Front) 회원 약 400여 명은 4일 단체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초창기 남부 연합을 상징하는 13개의 별이 있는 미국 건국 초기 성조기(벳시 로스기) 등 다양한 깃발을 든 채 “미국을 되찾자”고 외치며 행진했다.

이렇듯 건국 기념 행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집결 행사로 변모하면서 민주당이 집권한 여러 주에서는 대표단 파견을 거부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최소 9개 주정부는 연방정부의 공식 축제에 불참하는 대신 자체행사를 따로 연다. 출연 예정이었던 많은 예술가들도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중도 하차한 바 있다. 이들은 당초 행사가 국가와 참전용사를 기리는 순수한 초당파 축제라는 설명을 들었으나 이후 정치적으로 편향된 행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미끼 상품 사기에 속았다”고 비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행사 참석자들을 조롱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며 양극단으로 분열된 미국의 정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 엑스(옛 트위터) 사용자는 행사 참석을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사진을 올리며 “화씨 100도(섭씨 37.8도)의 더위 속에서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애국자입니까, 아니면 바보들입니까?”라고 적기도 했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성인 15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의 4분의 3과 공화당 지지층의 약 절반이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너무 정치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250년 후에도 여전히 단일 국가로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38%는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극심한 정치적 분열이 미국의 미래에 대한 견해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classic@sedaily.com박윤선 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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