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민망했는데"…'여자들 물건'에 뒤늦게 눈뜬 남자들 [오세성의 탈아재]
'타죽겠는데 체면은 무슨'…양산 쓰는 남자들
선크림보다 간편…체감 온도 최대 10도 낮춰

"양산은 당연히 여성용이지. 남자가 쓰기엔 좀…."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양산이 최근 들어 남성 손에 들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역과 횡단보도, 회사 밀집 지역에서 양산을 든 남성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체면보다 폭염이 무서운 탓이다.
이런 달라진 트렌드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4일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양산' 검색량은 전월 대비 93%, '우양산'(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양산 기능을 갖춘 우산)은 123%, '양우산'(우산으로도 쓸 수 있는 양산)은 97% 늘었다. 우산·양산 카테고리 거래액도 같은 기간 102% 증가했다. 업계에선 검색한 이의 상당수가 남성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에이블리가 운영하는 남성 쇼핑 플랫폼 4910(사구일공)도 지난달 '우양산' 검색량이 전년 대비 159% 늘었고, 거래액은 407% 급증한 것으로 집계했다. '양산' 검색량도 98%, 거래액은 362% 확대했다.

선크림이 전부였던 남성들의 자외선 차단 노력이 양산과 긴팔 의류, 메시 캡 등 물리적 차단 수단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910 관계자는 "양산 검색량이 과거에 비해 급증한 건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찾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성 양산 열풍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2018년부터 이른바 '남성 양산 쓰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 환경성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직접 양산 보급 캠페인에 나섰고, 2019년에는 '아버지의 날' 선물로 양산을 권장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해 도쿄도가 남녀 각각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남성 응답자의 44%가 '올여름 양산을 사용했다'고 답했다. 20·30대는 사용률이 50%를 넘었고, 50대도 39%에 달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그간 패션 소품으로 취급되던 양산이 '생존 아이템'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도 정부를 중심으로 양산 사용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시는 2020년부터 양산 대여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남성용 양산도 함께 비치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또한 2021년 양산의 사전적 의미에서 '주로 여성들이 볕을 가리기 위해 쓰는'이라는 문구를 삭제, 더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닌 현실을 반영했다.

남성들이 양산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덜 덥고 편하기 때문이다. 양산은 선글라스나 모자보다 넓은 면적의 햇빛을 가릴 수 있고 선크림 등 자외선 차단제처럼 몇 시간마다 덧발라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효과도 좋다. 서울연구원은 양산을 사용할 때 체감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환경성도 양산이 발한량(땀을 흘리는 양)을 약 20% 줄인다고 분석했다.
최근 양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직장인 박모 씨(36)는 "예전에는 여성들이 쓰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써보니 출퇴근길이 훨씬 편해졌다"며 "요즘은 단색으로 된 접이식 제품이 많아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양산 디자인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 꽃무늬나 레이스 장식 위주였던 제품 대신 검은색과 회색, 접이식 형태의 우양산이 늘었다. 남성 구매자를 고려해 '깔끔한', '남성용' 등을 강조한 제품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간혹 우산을 양산 대용으로 쓰는 남성들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자외선 차단 목적이라면 일반 우산보다 양산을 권한다. 국내 안전품질표시 기준상 양산은 자외선을 85% 이상 차단해야 하는 반면, 일반 우산에는 이 같은 기준이 없는 탓이다.
다만 야외 활동용으로 만든 골프용 우산, 우산과 양산의 겸용 제품인 우양산은 자외선 차단율이 90% 이상으로 명시돼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외선 차단 기능을 적용한 우산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름철 폭염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면서 양산 수요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필수품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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