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논란’의 시한폭탄 된 어른들의 방관···김성근 감독 “가르치지 못한 죄”

안승호 기자 2026. 7. 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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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불꽃야구 감독. 서성일 선임기자

불이 났다. 불길이 어디로 번질지 풍향에만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혀를 차고 마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고교야구 배재고-광주일고전에서 일어난 혐오 야유 논란은 화재다. 이것을 또 다른 갈등의 연료로 삼는 정치인과 극단주의 세력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서도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발화 지점’을 들여다보고 있다.

2023년부터 스포츠리얼리티 최강야구와 불꽃야구에 출연한 김성근 감독은 탄식했다.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김성근 감독은 고교야구팀들을 두루 만나는 동안 걱정했던 것은 도를 넘는 야유 문화였다. 김성근 감독에 따르면 몇몇 학교 더그아웃 표정은 예전에 학생야구 하면 떠올렸던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김성근 감독은 “맞은편 더그아웃을 보면 경기 내내 춤을 추는 것 같은 날도 있었다”며 “박용택을 비롯한 팀내 고참 선수를 불러 상대팀도 야유는 하지 말게 하고, 우리도 절대 하지 말라는 얘기를 따로 했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은 배재고 야유 논란이 터진 그날 경기장에서 감독 코치는 물론 심판까지 어떤 존재 의식으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질책했다. “야구장이었다. 그런데도 가르칠 지도자도 어른도 없었다”며 한탄했다.

야구인들은 이번 사안을 언젠가 어디서든 터질 수 있던 ‘시한폭탄’으로도 봤다. 최근 고교야구 현장의 야유 문화와 더그아웃 풍경이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도 함께 배워야 하는 학생야구의 본질과 점점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일고전 혐오 야유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 더그아웃. X캡쳐

드래프트 준비로 고교야구 현장에 수시로 찾는 한 프로구단의 스카우트는 스포츠경향 야구전문 유튜브 채널 ‘최강볼펜’과 익명 인터뷰에서 “상대를 조롱하듯 야유하는 것이 어떤 놀이문화로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는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고교야구 지도자 중 상당수는 아이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바로 잡을 힘도, 바로 잡을 의지도 잃어가고 있다. 아마야구를 지도하는 선후배 동료들과 교류하는 한 프로구단의 코치는 “감독이나 코치가 훈육이든 뭐든 아예 못한다고도 들었다. 학부모도 그렇고, 의식할 게 너무 많아 점점 직접 관여하는 영역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학교 교육이 어려워지는 사회 풍조와 함께 지도자들부터 탈 없이 보내려는 행태가 고교야구 생태계 근간을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시각이다.

사실 과거 고교야구의 매력은 순수함과 열정이었다. 그 시절 동향 출신들에게는 전국대회 토너먼트에 뛰어든 광주일고가 타이거즈였고, 경북고가 라이온즈였다. 부산고는 자이언츠였고, 천안북일고는 이글스였다. 또 선린상고와 신일고는 서울의 트윈스나 베어스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야구 대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사라지면서는 드래프트 상위지명 후보가 될 특정선수에게만 시선이 쏠리면서 교교야구 자체가 진로와 진학을 위한 학원화하는 경향이 짙었다.

아직 고교야구 본질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은 야구 선진국인 일본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꿈의구장 고시엔’에는 요코하마 하야토고교 야구부가 고시엔에 도전하는 여정이 담겨있다. 출발은 야구가 아니다. 새 시즌 신입부원이 모인 자리에서 야구부 선배는 화이트보트에 야구부의 근본이라며 몇 가지 주제어를 적고 설명한다. ‘목적은 야구를 통한 인간 형성’, ‘선생님(미즈타니 감독)의 가르침으로 인간성 키우기’ 등으로 야구장에 나와 인사를 하는 법부터 가르친다. 그라운드에선 실수를 했을 때 침울해하지 말고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라는 태도를 강조한다. 경기 내내 더그아웃은 활기차고 시끄럽지만 같은 팀 선수에게 “할 수 있어”라며 응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상대를 향한 야유와 조롱은 찾아볼 수 없다. 감독이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를 붙들고 강한 어조로 훈육하는 장면도 있다.

‘꿈의구장 고시엔’ 중 하야타고교 미즈타니 감독이 쓴소리로 훈육하는 장면.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냐’는 물음에 한 야구인은 “요즘에는 무슨 얘기라도 하면 ‘꼰대’라는 소리부터 듣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배재고 더그아웃에서 한 2학년생이 선창으로 격을 잃은 야유가 이어졌을 때 감독도 코치도 또 선배까지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야구부에서의 일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드러난 단면이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을 파고들면 결국 어른이 나온다. 감독을 학원강사처럼 만든 누군가의 학부모도 예외는 아니다.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속전속결로 배재고에 내린 6개월 출장정지 처분은 질병의 원인을 진단하기도 전에 내린 응급 처방처럼 보여 아쉽다는 목소리가 또한 많다. 대한민국 학생야구와 학생스포츠의 민낯을 똑바로 들여다볼 시간이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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