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투자공식’ 깨졌나…금·국채·엔화 ‘동반 추락’ [머니+]
기대인플레·국가부채 우려로 수요 위축
AI 랠리에 위험자산 선호 지속
“안전자산도 각자도생”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했을 때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와 일본 엔화, 금 등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공식이 올해 들어 통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공습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미국 국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채권 가격 하락)했고, 달러 대비 일본 엔화 환율은 40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국제 금값 역시 지난 1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다.
4일 CNBC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전형적인 '위험 회피' 국면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란 전쟁 이후에도 인플레이션 우려와 실질금리 상승,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 국가 간 금리 격차 확대 등이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약화시키는 반면 투자자들은 여전히 인공지능(AI) 관련주를 중심으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다.
HSBC의 프레데릭 노이만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전반의 위험 선호 심리는 여전히 견조하며 글로벌 금융 여건도 매우 완화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CNBC에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증시는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인텔 등이 주목받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 AI 관련 종목으로 자금이 집중되고 있다.
자산운용사 DWS의 헤닝 포츠타다 글로벌 다자산 총괄은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유일한 요인은 주당순이익(EPS) 성장"이라며 “기업들의 EPS 전망치도 계속 상향 조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채권시장에 안전자산 매수세가 유입되지 않는 이유로 기대인플레이션과 각국 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를 꼽았다.

통상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미래에 지급받을 고정 이자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해 채권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기존 채권 가격은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CNBC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시장의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 27일 연 3.96%를 기록했지만 현재는 연 4.485% 수준까지 상승했다. 지난달에는 장중 연 4.6%를 웃돌기도 했다.
재정건전성 역시 미국 국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투자자들의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높지만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CNBC는 전했다.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 역시 기대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지난 1월 29일 장중 온스당 5626.80달러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4187.30달러까지 밀렸다. 최근에는 장중 4000달러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글로벌X ETF의 빌리 렁 투자전략가는 “최근 금은 전형적인 안전자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며 “달러 강세와 실질금리 상승이 시장 변동성보다 금 가격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엔화 역시 엔저(円低) 현상이 심화하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기준금리가 최근 1%까지 올라 1995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일본 국채금리도 사상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일본 당국의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에도 엔화 약세는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최근 달러당 162.56엔까지 오르며 1986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뒤 현재는 161.38엔 수준으로 소폭 하락했다.
렁 전략가는 “일본과 주요국 간 통화정책 차이가 커졌고 금리 격차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엔화의 안전자산 기능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재정건전성 문제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204.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CNBC는 “안전자산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며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미국 국채와 금, 엔화가 동시에 오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각각의 거시경제 펀더멘털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성준 기자 media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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