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책자금 통로된 카드결제망...공공 역할만 부각

| 서울=한스경제 이나라 기자 |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책자금이 풀릴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곳이 카드업계다. 이는 카드업계의 경우 30년이 넘는 신용결제 인프라가 구축된 덕에 빠르게 지급할 수 있고, 사용처를 제한할 수 있으며, 집행 이후 효과까지 데이터로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도 카드결제망의 경쟁력을 확인시킨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전산 구축·서버 운영·결제대금 선지급·정산 지연에 따른 이자비용까지 카드사가 떠안는 구조가 존재한다. 카드결제망의 공공역할은 커졌지만, 그 역할에 대한 비용 보상 논의는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경제적 효과 평가를 보면, 전국 기준 소비쿠폰 사용처의 추가 매출 증대 효과를 약 2조8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분석 대상은 신용카드 지급액 9조1000억원이었다. 한국은행은 6개 신용카드사의 매출액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쿠폰 사용처와 비사용처의 매출 변화를 비교했다.
정책 효과를 확인하는 데 카드 데이터가 쓰였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현금성 지원은 실제 소비가 어느 지역과 업종에서 발생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반면, 카드결제망을 활용하면 결제 시점에 가맹점 업종과 지역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집행 이후에는 매출 변화를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어 정책자금이 의도한 곳으로 흘러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역할이 카드사의 실속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책자금 집행 때마다 카드사는 신청 접수·사용처 제한·잔액 안내·결제 차감·민원 대응·정산 업무를 맡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 필요한 전산 개발·서버 증설·운영 인력 투입·자금 조달 비용은 상당 부분 카드사 부담으로 떠안게 된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해 카드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민생회복 소비쿠폰 결제대금 선지급을 위해 6개 카드사는 2조4543억원 규모의 단기차입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비용만 약 80억원으로 집계됐다.
정산 구조 자체도 카드사에 부담이다. 소비쿠폰이 사용되면 카드사는 가맹점에 결제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난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정산받는다. 정산 전까지 필요한 자금은 카드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정책자금이 카드망을 타고 빠르게 집행되는 동안 그 사이의 자금 부담과 이자비용은 카드사 몫으로 남는 것이다.
소비쿠폰 사용처가 연 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 중심으로 제한되면서 카드사의 수익성 역시 제한적이었다. 영세·중소가맹점은 우대수수료율 적용 대상이기 때문인데, 따라서 소비쿠폰 사용액이 카드 승인액으로 잡히더라도 가맹점수수료 수익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긴급재난지원금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2020년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카드사들은 지원금 신청·차감 시스템과 결제망을 구축했고, 관련 영업비용은 1053억9000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재난지원금 관련 수익은 비용을 따라가지 못해 카드사들은 약 80억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나아가 가장 큰 문제는 소비쿠폰만의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 정책자금이 반복적으로 카드결제망을 호출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최근 고유가 피해지원금도 비슷한 구조다. 신용·체크카드 충전 방식을 택하면 신한카드·삼성카드·현대카드·KB국민카드·롯데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BC카드·NH농협카드 등 9개 카드사 앱과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었다.
또한 은행 앱과 간편결제 플랫폼으로도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소비자에 대한 '락인효과'도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카드결제망이 정책자금의 기반으로 쓰이는 동안 고객 접점은 플랫폼 전반으로 분산됐기 때문이다.
카드결제망은 민간이 구축한 인프라다. 그러나 정책자금이 집행될 때마다 카드망은 사실상 공공재처럼 활용되고 있다. 지급 속도·사용처 제한·실시간 승인·잔액 관리·데이터 분석까지 카드망이 맡는 역할은 넓어지고 있는 반면, 산업적 보상은 제한적이고 수수료 규제와 비용 부담은 그대로 남아 있다.
따라서 정책이 카드망을 필요로 한다면, 카드망을 유지하는 비용과 역할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공공 역할만 커지고 실속은 남지 않는 구조라면, 카드결제망의 효율성은 산업의 경쟁력이 아니라 비용 전가의 통로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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