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단속 뜨면 한 해 농사 끝나요”…‘불법체류자’가 떠받치는 한국 농촌의 역설
합법 ‘외국인 계절근로자’ 는 턱없이 부족…“불법 고용 말고는 답이 없다”
(시사저널=경북 성주=이강산 기자)
"단속해가 아~들 다 데리가뿌면 우리 농사 못 짓습니더." 눈부실 정도로 강한 햇볕이 내리쬐던 6월16일 오후, 시사저널은 전국 참외 생산량의 약 80%를 담당하고 있는 경북 성주군을 찾았다. 성주 참외가 유명한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농가를 제대로 방문해본 경험이 없는 기자가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참외 농사 단지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축구장 몇 개 규모'라는 단위가 체감될 정도의 크기였다.
성주군 월향면에서 만난 참외 농장주 김명원씨(42)는 "비닐하우스 한 동의 길이가 대략 100m 정도 되는데, 길면 145m까지 된다"며 "농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의 경우 참외 비닐하우스 30동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다. 한 동에 대략 200~250평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세로 길이 100m 기준, 참외 비닐하우스의 폭은 6~7m 안팎이라 한 동당 약 200평에 달한다. 한 동에 200평이니, 김씨는 한 해에 6000평 정도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4명 요청했는데, 1명만 배정"
김씨는 "30동의 참외 농사를 위해 한 해 최소 4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그 최소한의 인력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농가에서 일하길 원하는 내국인 인력은 사실상 없는 형편. 어쩔 수 없이 최대 8개월의 비자로 국내에 입국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 유일한 합법적 수단이지만, 계절근로자가 원하는 인원수만큼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김씨를 비롯해 성주에서 만난 많은 농장주의 하소연이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E-8)은 2015년 충북 괴산군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뒤 2017년부터 전국으로 확대 시행됐다. 농어촌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최소 3년 이상 장기 체류가 필요한 외국인 고용허가제(E-9)와 달리 수확철 등 특정 시기에 많은 일손이 필요한 경우 단기간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진다.
문제는 현장에서 원하는 계절근로자 수에 비해 실제 배정되는 수가 적다는 점이다. 계절근로자는 각 시군구에서 관내 농가들을 대상으로 필요 수요를 조사한 뒤 그 수치를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으로 구성된 배정심사협의회에서 농가별 재배 면적 대비 적정 인원, 해당 지자체의 과거 외국인 무단 이탈률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최종 배정 인원을 확정한다.
그러나 성주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성주군은 법무부에 약 2300명의 계절근로자를 요청했으나 실제 배정 인원은 1600명에 그쳤다. 이에 대해 성주에서 참외 농장을 운영하는 박수열씨(40)는 "계절근로자가 필요한 수보다 적게 배정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4명을 요청했는데 실제로는 1명만 들어온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합법적 인력 원하지만 어쩔 수 없어"
농장주들은 계절근로자가 부족한 이유에 대해 애초에 필리핀·태국·라오스 등 현지 국가에서 들어오는 수 자체가 국내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법무부·농식품부 등 정부 통계를 종합하면 외국인 계절근로자 배정 인원은 2022년 1만9718명에서 2025년 9만5596명으로 5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계절근로자 배정 인원수 역대 최고를 기록한 지난해에도 실제 운영 인원은 8만617명(11월 기준)에 불과해 1만5000여 명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올해 법무부가 인력난 해소를 위해 11만7113명을 배정하면서 숨통이 다소 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농장주들은 계절근로자 배정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고도 호소하고 있다. 배정 조건은 크게 네 가지인데, △'내국인 우선 고용 원칙'에 따라 내국인 구인 절차가 선행돼야 하고 △작물별 재배 면적에 따른 농가당 고용 허용 인원 제한 △최저임금 준수 및 근무 일수 보장 △적절한 주거 환경(숙소) 마련 등이다.
농장주들은 이 중 '숙소 규제'를 가장 까다로운 조건으로 꼽았다. 월향면 참외 농장주 김씨는 취재진에 자신이 마련했으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숙소 내부를 보여주며 "갖추라는 건 다 갖추고 생각했는데 소방 시설이나 전기 배선 등에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본 숙소 내부는 일반 오피스텔의 원룸 등에 비해 쾌적한 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침대와 에어컨, 주방 시설 등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해당 숙소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김씨는 고용한 계절근로자에게 농가 인근 자택을 숙소로 내어주고 자신은 농번기에 타지의 또 다른 집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족한 인력을 불법체류자들로 채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농장주들의 하소연이다. 사설 인력사무소를 통해 내국인 인력을 구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매우 소수이고 그마저도 70대 이상 여성이 대부분이어서 젊은 남성도 버티기 어려운 여름 비닐하우스 농사에 투입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한 농장주는 불법체류자들을 관리하는 '브로커'들에게 인원을 요청하고, 브로커들은 승합차나 버스에 수십 명을 태워 인력을 공급하는 이른바 '콜뛰기' 방식이 현장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통상 최저임금을 받는 계절근로자에 비해 불법체류자 인건비는 성별과 노동 수요에 따라 13만~17만원 선으로 높게 책정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불법체류자가 많은 임금을 받는 이유에 대해 농장주들은 "숙련도와 언어 능력에서 불법체류자가 계절근로자에 비해 더 뛰어난데, 인력이 부족해 더 급한 쪽은 농장주들이기 때문에 돈을 더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참외 농사의 특성상 성주군 계절근로자는 보통 5개월 단기 비자로 입국하는데, 이에 비해 불법체류자의 경우 길게는 10년 이상 국내에 체류해 한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농업 고숙련 인력'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불법체류자 단속을 하려고 해도 소식을 들은 농장주들이 군청에 찾아가 거칠게 항의해 실제 단속이 이뤄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농장주 박씨는 단속에 대해 "농장주 대부분은 '불법체류자를 단속해 추방하면 한 해 농사 끝난다'고 한다. 목숨 걸고 단속에 항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우리도 당연히 합법적 인력을 우선적으로 고용하고 싶지만, 합법적 인력이 부족하니 법적 부담이 있더라도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게 된다"고 했다.

"美·日의 유연한 비자 제도 벤치마킹해야"
이와 관련해 성주군 역시 노력하고 있으나 해결이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성주군의회 의장을 지낸 구교강 성주군의원은 "군에서도 당연히 농민들께서 요구하는 만큼 계절근로자 인력을 공급해 드리고 싶다"면서도 "현지와의 협의와 법무부 등의 심사 등을 거쳐야 해 군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계절근로자 비자 기간을 기존 5개월에서 5개월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바라고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며 "불법체류자 등 인력을 양지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군도 농민들도 가장 좋은 방안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출입국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불법체류자가 40만 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체류자 규모가 커지면서 단속 위주의 기존 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특히 성주군처럼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어촌뿐만 아니라 중소 영세 제조 현장에서도 '불법체류자 없이는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심각한 인력난과 불법체류자 딜레마를 겪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현장의 수요에 맞춰 비자 제도를 유연하게 변경한 방식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한국이 운영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나 고용허가제는 정해진 농가에서 정해진 기간만 일할 수 있어 노동 경직성이 높고, 특히 단기 비자인 계절근로자의 경우 임금 인상과 복잡한 절차를 피할 수 있다는 이점 탓에 불법체류의 유혹에 빠지기 쉬워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2023년 발표한 '농업부문 중장기 외국인력 공급방안 연구' 보고서 등에 따르면 미국은 임시·계절적 농업 노동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H-2A 비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H-2A 비자는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농업 고용주가 임시·계절적 농업 노동을 위해 외국인 비이민 근로자를 데려올 수 있게 하는 비자로 국내 계절근로자 제도와 큰 틀에서 유사하다.
다만 해당 비자가 계절근로자 제도에 비해 인력 문제 해결에 더 큰 도움이 된 배경으로는 농가 간, 지역 간 인력 공유가 제도적으로 원활하다는 점이 꼽힌다. 통상 미국의 대형 농업 대행사나 농협 단체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 기후와 작기에 따라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수확이 끝나면 중북부 지역 농가로 인력을 이동시키는 방식을 쓴다. 외국인 근로자가 지정된 농가를 벗어나면 불법 이탈이 되는 국내 정책과 차별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역시 가족 중심의 소규모 농가가 많고 고령화가 극심해 외국인 인력 없이는 농업 유지가 불가능한 구조였는데, 일정 수준의 농업 직무 시험을 통과하면 합법적인 '정식 근로자' 신분을 부여하는 비자인 '특정기능'(Specified Skilled Worker) 비자를 2019년 신설해 합법적 인력을 늘렸다. 특정기능 1호 비자는 총 5년까지 체류할 수 있고, 특정기능 2호 비자는 갱신을 전제로 체류 기간 상한이 없으며 가족 동반도 가능하게 해 외국인 인력이 숙련된 '정주 인구'가 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국인력정책위에서 활동한 바 있는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가에서 숙소 요건 등을 충족하지 못해 계절근로자를 원하는 만큼 고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농한기에 다른 근로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의 고용허가제 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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