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회사는 연말평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김문경의 리더십테크] (19)

[파이낸셜뉴스] 연말 평가 면담. 한 팀장이 팀원에게 물었다. "올해 목표 달성률이 왜 이것밖에 안 돼요?" 팀원은 한참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사실 그 목표, 3월부터 안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팀장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말을 들을 기회가 1년 내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 아니 그가 그런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그를 덮쳤다.
이 팀장이 게으른 사람이었을까? 그는 매주 회의를 열었고 주간 보고도 빠짐없이 챙겼다. 다만 그가 받은 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는 인사치레였지, "여기서 막혔습니다"라는 상황 소통이 아니었다. 1년 내내 성과를 관리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결과가 굴러 나오기만 기다린 셈이다. 그리고 이 팀장의 모습은 점점 더 많은 조직의 자화상이 되어가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 회사는 갑자기 분주해진다. 달성률을 계산하고, 등급을 조정하고, 성과급 기준을 들여다본다. 평가자는 숫자에 코를 박고, 구성원은 자기 등급을 손톱 물어뜯으며 기다린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 풍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가 늘 빠져 있다. 우리는 지난 1년, 정말 성과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일했을까?
성과관리가 '성과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성과를 사후에 판정하는 절차'로 굴러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가표는 해마다 정교해지고 KPI는 더 촘촘해지는데, 정작 구성원은 자기가 왜 이 목표를 떠안았는지도 모른 채 바쁘게만 움직인다. 그렇게 모두가 연말이 되어서야 이미 식어버린 결과를 확인한다.
성과란 12월에 뚝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연초에 세운 목표, 매달 손본 우선순위, 매주 나눈 대화, 실행하다 부딪혀 받은 피드백 속에서 야금야금 자라난 것이다. 진짜 승부는 평가장 문을 열기 한참 전, 매일의 일하는 방식 속에서 이미 갈린다. 그래서 이제는 성과관리를 '평가제도'가 아니라 '성과가 자라나는 토양'으로 봐야 한다. 제도가 아무리 화려해도 목표가 공유되지 않고 피드백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행정 절차다. 반대로 평가표가 다소 엉성해도 목표가 또렷하고 리더와 구성원이 수시로 머리를 맞대는 조직은 결국 성과를 만들어낸다.
성과가 나지 않는 조직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목표는 있는데 해석은 제각각이고, 회의는 넘쳐나는데 방향은 안갯속이다. 리더가 "잘되고 있지?"라고 물으면 구성원은 반사적으로 "네, 진행 중입니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 매끈한 대답 아래에서는 우선순위가 흔들리고, 자원이 모자라고, 구성원은 '어디까지 말해도 되나' 눈치만 본다. 1년 내내 과정을 방치해 놓고 결과만 추궁하니, 연말평가가 공정할 리 없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연말 일괄 평가를 버리고 수시 대화로 갈아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도비(Adobe)는 등급제 연말평가를 폐지하고 수시 점검 면담인 '체크인(Check-in)' 제도로 바꾼 뒤, 자발적 퇴사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 국내 대기업들도 줄세우기식 상대평가를 절대평가와 수시 코칭 중심으로 바꾸는 흐름이 뚜렷하다. 거창한 평가표 대신 '무엇을 기대하는가, 지금 어디가 막혔는가, 무엇을 배웠는가'를 수시로 묻는 짧은 대화가 그 자리를 채운다. 핵심은 평가의 정교함이 아니라 대화의 빈도다.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사실 모든 것을 가른다. 성과관리가 '통제'로 흐르면 구성원은 방패를 들고, '대화'로 흐르면 패를 펼친다. 그리고 패를 빨리 펼쳐 보이는 조직이 더 빨리 배우고 더 빨리 앞서간다. 게다가 지금은 1월에 세운 목표가 6월이면 한물간 시대다. 이런 판에서 '연초 목표, 연말 평가'라는 1년짜리 호흡으로 성과를 설명하겠다는 건 욕심이다. 관건은 성과를 '결과 확인'으로 볼 것이냐 '과정의 조율'로 볼 것이냐다.
AI 시대에는 이 이야기가 한층 더 절박해진다. AI는 보고서를 순식간에 뽑아내고 반복 업무를 덜어준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자. AI가 당신 대신 성과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무엇을 핵심 목표로 삼을지, 사람과 AI의 역할을 어떻게 가를지, 결과를 무슨 잣대로 판단할지는 여전히 리더의 몫이다. 진짜 문제는 많은 기업이 AI 도입에는 그토록 열심이면서, 정작 성과를 만드는 방식은 10년 전 그대로 묶어둔다는 점이다. "AI로 더 빨리 일하라"고 다그치면서 평가 기준은 여전히 업무량 중심이고, 혁신을 외치면서 실패한 시도에는 싸늘하다. 이런 조직에서는 AI를 들여와도 혁신의 날개가 아니라 등에 얹힌 또 하나의 짐이 된다.

갤럽(Gallup)의 2025년 글로벌 일터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직원 몰입도는 2023년 23%에서 2024년 21%로 떨어지며 2년 연속 하락했다. 더 눈여겨볼 곳은 관리자다. 관리자 몰입도는 같은 기간 30%에서 27%로 떨어졌는데, 일반 구성원보다 훨씬 가파른 하락세다.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리더들이 오히려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위에서는 성과를 내놓으라 다그치고 아래에서는 공정한 평가를 달라 손을 내미는데, 거기에 AI 전환과 세대 차이, 빠른 의사결정 요구까지 죄다 팀장의 어깨에 얹힌다. 그 에너지가 바닥나면 성과관리는 형식이 되고 평가는 불신의 언어로 전락한다. 갤럽이 짚은 해법은 단순하다. 제대로 된 관리 교육을 받은 리더의 팀일수록 몰입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교육을 받아본 관리자가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리더는 '평가자'에서 '성과 대화의 설계자'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평가자는 결과에 도장을 찍지만, 설계자는 결과가 빚어지는 과정에 손을 얹는다. 평가자는 "왜 못했냐"고 따지지만, 설계자는 "어디서 막혔냐"고 묻는다. 사소해 보이는 이 한 끗 차이가 조직의 공기를 통째로 바꾼다. "왜 못했냐"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어디서 막혔냐"는 입을 열게 한다. 성과는 결국 리더가 던지는 질문의 수준만큼만 자란다.
그러니 연말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당장 다음 주 회의에서 "잘되고 있죠?"를 지우고 "지금 가장 막힌 데가 어디예요?"로 바꿔 물어보라. 단 한 줄, 질문 하나가 바뀌면 1년의 결과가 바뀐다. AI가 일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이게도 성과관리는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숫자는 지나간 결과를 보여줄 뿐, 성과를 실제로 움직이는 건 사람의 이해와 몰입, 그리고 리더와 구성원 사이에 오가는 대화다. 성과를 내는 조직은 평가표가 두툼한 조직이 아니다. 성과가 만들어지는 그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는 조직이다.
/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 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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