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나무에 고양이가 열린다 [임보 일기]

이용한 2026. 7.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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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피해 나무 위에 올라간 아기 고양이. ⓒ이용한 제공

<!--rhwp-studio-clipboard:785a8e30-ec5b-425d-a960-e813150ae344-->고양이는 나무에서 자란다. 온갖 열매가 익어가는 여름이 오면, 한껏 자란 고양이도 저절로 익어서 떨어지곤 한다.

고양이가 나무에서 자란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여름 한철 덩치가 작은 ‘캣초딩(아깽이와 성묘의 중간)’들은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로 숨어들고, 더러는 아예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잎이 무성한 줄기를 해먹처럼 이용해 낮잠까지 잔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나무 그늘 속이라 시원하고, 천적에게 들킬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모든 나무를 이렇게 해먹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산골에 위치한 다래나무집 급식소에는 주목이 예닐곱 그루 있는데, 오랫동안 지켜본 바 고양이는 오로지 주목만을 해먹으로 이용했다. 주목나무는 가지가 빗살무늬처럼 퍼져 촘촘하고 가지런하게 자라며, 윗가지와 아랫가지 사이의 간격도 적당한(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서 낮잠을 잘 만한 정도) 편이다. 어린 고양이가 해먹으로 이용하기에는 딱 좋은 구조인 것이다. 사실 다른 나무는 가지 위에 고양이가 온몸을 맡기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나뭇가지가 촘촘하고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는 것은 혹시 모를 추락 사고(가끔 고양이끼리 장난을 치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에서도 아랫가지가 완충장치 노릇을 한다는 얘기다.

가지가 촘촘하고 가지런한 나무는 고양이들에게 최고의 쉼터가 되어준다. ⓒ이용한 제공

이러다 보니 어떤 고양이는 주목나무의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장난을 치곤 한다. 처음에는 분명 낮잠을 자러 올라갔을 텐데 서너 마리가 같은 나무를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나무 전체가 놀이터로 변한 셈이다. 마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 아니 캣트리 같다. 고양이 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잎이 빼곡하게 뒤덮인 주목은 숨바꼭질 장소로도 더할 나위 없는 나무다. 멀리서 보면 나무 속에 고양이가 있을 거라곤 쉬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주목나무 곁을 걷고 있었는데, 무언가 내 어깨를 툭 치는 거였다. 나무 속에 숨어 있던 ‘앙고’라는 턱시도 고양이가 손을 쭉 뻗어 나에게 장난을 건 거였다. 이럴 땐 짐짓 모른 척 속아주는 게 예의여서 나는 일부러 주목나무 곁을 왔다 갔다 수차례 왕복했다. 주목이 쉼터이자 놀이터 노릇을 하다 보니 나무 아래 돌계단에는 언제나 대기 손님과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수시로 멤버 교체도 하고,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는 고양이도 있었다.

어떤 고양이는 키 낮은 주목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다래나무집에서 가장 높은 자작나무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주목처럼 해먹 구실을 하는 가지가 없으니 고양이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장 내려온다. 어떤 이들은 고양이가 나무는 잘 올라가도 내려오는 건 잘 못한다며 걱정하는데, 하루에도 수차례 나무를 타는 산골 고양이들에겐 그것이 식은 죽 먹기다. 더러 어떤 고양이는 가지런히 가지치기를 한 쥐똥나무 울타리 위에 올라가 바람을 쐬며 호연지기를 키운다. 쥐똥나무 울타리에 올라앉은 고양이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목(木)아일체의 경지다. 사실 바깥에 사는 고양이들에겐 한겨울만큼이나 힘든 계절이 한여름이다. 어쩌면 이곳의 고양이들이 열심히 나무를 오르내리며 장난치는 건 한낮의 불볕더위를 잊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이열치열 놀다 지쳐 나무 해먹에서 낮잠을 자면 그 또한 꿀잠 아니겠는가.

이용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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