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지방공항’ 살린 스페인의 한수…‘만년 적자’ 한국도 답 찾을까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6. 7. 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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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AENA 공공기관 설립
전국 공항 운영 기관 단일화
2015년 지분 49% 민영화
국내 48·해외 35개 공항 운영
통합 네크워크 활용해 급성장
지난달 26일(현지시각) 관광객으로 몰린 스페인 남부 말라가공항. [지홍구 기자]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400여km 떨어진 말라가는 스페인에서 6번째로 큰 도시다.

곳곳에 고대와 중세가 공존하는 역사 유적이 있고, 라 말라게타 해변 등 지중해를 바라보며 휴식과 미식을 즐길 수 있다. 20세기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한 말라가는 온화한 겨울과 더운 여름이 특징인 지중해성 기후로 유럽인이 1년 내내 사랑하는 최고의 휴양지다.

이런 말라가도 불과 20~30년 전에는 주목도가 크지 않았다. 오래된 산업 항구 도시로 항구 주변은 낙후되고, 도심은 관리되지 않아 노후 건물이 즐비하고 치안 마저 불안했다.

스페인 남부 해변인 ‘코스타 델 솔’이나 인근 도시(론다·그라나다·세비야)로 가기 위한 단순 경유지에 불과했다. 그러다 2000년대 프란시스코 데 라 토레 말라가 시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된 대대적인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말라가는 대반전에 성공했다.

피카소 마케팅에 성공하고, 구시가지를 정비해 세련된 거리를 조성했다. 어둡고 삭막했던 항구 구역은 세련된 해안 산책로, 쇼핑몰, 레스토랑이 즐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말라가 관문 역할을 하는 말라가 코스타델솔 공항(말라가공항)도 인파가 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말라가공항을 찾았다. 스페인에서 원래 위치를 유지하며 운영 중인 공항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공항이자, 1919년 스페인 최초로 정기 상업 비행이 시작된 공항이다.

말라가 지역이 활성화되기 전 적자 공항으로 알려졌지만 AENA는 “공항별로 별도의 수익 계정을 두지 않기 때문에 말라가공항이 과거에 적자를 기록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면서도 “최근 몇 년 동안 말라가공항의 눈부신 비약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말라가공항의 여객터미널은 2000년대부터 현대식으로 단장됐고, 항공 수요가 늘 때 마다 확장 공사를 진행해 현재는 활주로 2개와 신규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2680만명을 처리했다.

우리나라 제주공항과 비슷한 규모다.

58개 항공사가 국제선 233개, 국내선 33개 노선을 취항하고, 이용 여객의 83%는 국제 여객이었다. 전체 여객의 65%가 ‘관광 목적’으로 이용하는 공항답게 여객터미널에는 가벼운 옷차림에 가족·친구로 보이는 삼삼오오 여객이 많았다.

이날 하루에만 656편의 항공기를 이용해 13만1000명이 말라가 공항을 이용했다고 한다. 미슐랭 3 스타 셰프 2명이 운영하는 각각의 미식 코너도 인상적이었다.

후안 마누엘 코르도베스 말라가공항 운영기획처장은 “말라가공항은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공항이 됐고, 최근 중동 산유국인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 등의 노선이 급격히 늘고 있다”면서 “향후 5년 내 국제 활주로 확장, 게이트 확장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5년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 서귀포시 성산읍을 발표하고도 제주도민의 찬반 갈등으로 11년째 건설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상황과 대비됐다.

말라가 지역공항, 하루 13만명 이용하며 스페인 4대 공항으로
미슐랭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말라가공항의 레스토랑. [지홍구 기자]
말라가공항은 스페인 최초로 정기 상업 비행이 시작된 곳이지만 말라가 지역이 지금처럼 인기 도시로 변신하기 전까지는 활성화가 덜 된 공항이었다. 말라가공항 뿐만 아니라 중소 규모 지방·도시 공항도 마찬가지다.

이랬던 말라가공항이 스페인 4대 공항이 된 이유로 AENA(스페인공항운영그룹) 출범이 꼽힌다.

스페인 정부는 전국 공항을 직접 운영하다 1991년 전국 공항과 항공 항행을 통합 관리하기 위한 공공기관인 AENA를 설립했다. 그러다 2008년 스페인 금융 위기가 발생하고, 적자가 누적되자 2015년 AENA의 지분 49%를 민영화했다. 2010년에는 항공관제 공공기관을 별도 설립해 기능을 분리했다.

2015년 지분 49%를 민영화하고, 통합 공항 운영 기관으로 거듭난 AENA는 현재 46개 국내 공항(허브공항 2개, 관광공항 13개, 지역공항 26개, 일반항공공항 5개), 2개 헬기장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브라질 18개, 멕시코 12개, 영국 3개, 자메이카 2개 등 35개 해외공항까지 운영하는 세계 최대 공항 운영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4억7600만명의 여객을 처리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만난 안헬 산스 AENA 전략·공공정책 부문 총괄 이사는 “AENA는 스페인 46개 공항을 하나의 공항 네트워크로 관리하고 있다”면서 “인사, 재무, 커뮤니케이션, 노선 개발, 상업·혁신 부문을 전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운영 측면에서도 기준을 설정해 (각 공항을)감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매출 63억 유로(약 11조1400억원), 순이익 21억 유로(약 3조7100억원)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2015년 상장 당시 0.58유로였던 AENA 주가는 2일 종가 기준 27.14유로에 마감됐다.

2000년 900만명대였던 말라가공항 여객이 15년 새 3배 증가하고, 지난해 58개 항공사가 276개 노선(국제선 243개, 국내선 33개)을 확대·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AENA를 중심으로 한 ‘관계 기관 협업’ ‘통합 네트워크 활용’ ‘규모의 경제’ ‘지역 관광 자원’이 있었다.

안헬 산스 이사는 “각 공항의 발전 전략은 본사에서 통합적으로 수립해 세계 수많은 항공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프라와 협상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말라가공항의 경우 말라가 시의회, 지역 관광청 등 모든 관계 당국이 뜻을 한데 모아 항공사들에게 일원화된 통합 제안을 제시한다. 중동발 직항 노선과 뉴욕행 정기 노선 유치는 이 전략이 낳은 성공적인 사례”라고 했다.

그는 “오랜 기간 항공사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구체적인 수익성과 운영 비용 절감, 신규 노선 인센티브, 현지 기관들의 전폭적인 프로모션 지원 등으로 설득한 끝에 이뤄낸 쾌거”라면서 “항공사의 내부 운영 비용까지 세밀하게 분석한 데이터를 제공해 취항의 수익성을 투명하게 증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너지 효과는 공항별 개별 보조가 아닌 네트워크 운영 자체에서 발생한다”면서 “본사의 기업 서비스 공동 활용, 공항 네트워크 내 교차 통행, 수요 통합을 통한 조달(구매) 효율성 등에서 효과가 나고 있다”고 했다.

전국 공항에서 필요한 물품 등을 본사에서 일괄 발주해 구매할 경우 ‘규모의 경제’가 발생해 강력한 가격 협상력과 운영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말라가의 코르타 델 솔(태양의 해변)이란 지역 자체가 스페인과 유럽을 넘어 세계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목적지로 부상한 점도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 15개 공항 중 10개 공항이 만성 적자
공항 기관 통합 중심에 선 인천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공사]
우리나라는 15개 공항을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가 나눠 운영하고 있다.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자리매김한 인천공항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나머지 김포공항 등 전국 14개 지방공항은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한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양 공사의 재무 현황은 격차가 크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지방공항은 ‘빅3’로 불리는 김포·제주·김해공항이 벌어 만성 적자인 나머지 지방공항을 먹여 살리는 구조다. 최근 청주공항이 흑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다른 지방공항의 적자 폭을 메울 만큼 영업이익이 크지 않다. 지난해 한국공항공사의 매출은 9768억원에 영업손실 223억원, 당기순손실 522억원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는 흑자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9683억원에 영엉이익 8667억원, 당기순이익 6943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을 통합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합 찬성 측은 인천공항과 전국 14개 지방공항, 가덕도신공항이 한 기관으로 통합되면 중복 투자를 막고, 직항 등 신규 노선 개설, 허브공항과 지방공항 연결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익성이 좋은 인천공항과 한가족이 되기 때문에 한국공항공사 혼자 감당해오던 만성 적자 지방공항과 신공항 건설 재원을 분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통합 반대 측은 무한 경쟁 시대에 5단계 확장 등 미래 성장이 시급한 인천공항 발전에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한다. 특히 앞으로 건설될 가덕도신공항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가치에 대한 불안정성까지 떠안을 경우 한국의 글로벌 항공·공항 경쟁력이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안헬 산스 AENA 전략·공공정책 부문 총괄 이사가 AENA의 공항 운영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홍구 기자]
안헬 산스 이사는 이러한 한국 정부의 공항 관련 기관 통합 검토 움직임에 대해 “여러 성공 사례의 장점을 잘 취합해 한국 상황에 맞는 통합 모델을 만들어 내는 도전도 해볼만 하다”면서 “스페인 모델에 대한 정보만으로 부족하다면 프랑스 파리나 독일 푸랑크르푸트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대표적인 허브 공항인 파리 드골공항과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모두 상장 기업이 운영하고 있으며, 40%대 지분을 민간이 소유하고 있다.

안헬 산스 이사의 조언은 공공과 민영을 혼합한 방식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검토하는 공항 관련 기관 통합 방안은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는 공공 방식이다.

이에 따라 스페인의 공항 통합 사례를 정부가 100% 벤치마킹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만약 우리 정부가 공항 관련 기관을 통합하고 일부 지분을 민영화한다면 상장 기업 지배구조 규칙에 따라 민간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므로 경영진이 회사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좌초 사례도 걸림돌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인천공항공사 지분 49%를 민간에 매각하려다 반발에 부딪쳤다. 당시 정부는 세계 공항 민영화 추세와 시설 투자 재원 확보를 근거로 내세웠지만 헐값 매각, 국부 유출 의혹과 공공성 우려로 반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다만 AENA의 공격적인 해외시장 개척, 여객 수가 적은 지방공항을 적극 지원하면서도 회사 전체의 단일 계좌 속에서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노선에서 만회하려는 전략은 의미가 크다.

특히 스페인 배후에 항공자유화가 보장되는 유럽 공동체와 휴가 문화가 넉넉하고 부유한 국가를 집중 공략하는 전략은 지방공항 연결성 확대에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AENA는 수익의 14.3%를 해외 공항 운영에서 얻고 있다.

중앙·지방정부와 공항 당국, 관광업계 등이 원팀이 돼 지방을 관광객이 찾고, 항공사가 취항하고 싶은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겠다는 ‘통일된 목표 의식’도 인상적이었다. [말라가(스페인) 지홍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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