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피부과 ‘우유 주사’의 검은 거래…병원이 마약 주사방 됐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2026. 7. 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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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차명 처방·원정 투약까지…합법 의료기관 파고든 프로포폴 오남용
에토미데이트 풍선효과 확산…실시간 감시와 의료인 처벌 강화 시급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확산되고 있는 마약류가 있다. 이른바 '우유 주사'로 알려진 향정신성의약품 '프로포폴'이다. 정맥마취제인 이 약물은 의료기관에서 전신마취를 유도하거나 유지할 때 주로 사용한다. 보통 수면 내시경이나 간단한 성형수술, 피부 시술 시 환자의 진정을 돕는 데 쓰인다. 

문제는 마취에서 깨어나는 과정에 발생하는 특유의 회복감 때문에 심리적 의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프로포폴 중독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2011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해 법적 규제를 시작했다. 당국이 매년 대대적인 단속과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지만, 프로포폴 오남용 범죄는 의료기관이라는 합법적인 외피를 두른 채 더욱 조직적이고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ChatGPT 생성이미지

'비밀방'과 '족보', 합법의 탈을 쓴 주사방

6월14일 밤 10시,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8번 출구 앞 보도블록 위에서 한 30대 여성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쇼핑백에서 흰색 액체가 든 주사기를 꺼내 자신의 몸에 반복적으로 꽂으려고 시도했다. 그러고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이때 손에 쥐고 있던 쇼핑백이 뒤집어지면서 내용물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우윳빛 약물이 들어있는 약병 10여 개와 사용된 주삿바늘 등을 압수했다. 이 액체의 정체는 프로포폴이었다. 신원 확인 결과 이 여성은 인근 피부과 의원에 근무하는 직원이었다. 외부 반출이 엄격히 금지된 의료용 마약류가 내부 종사자를 통해 유출돼 길바닥에 노출된 이 사건은, 프로포폴 오남용이 특정 계층의 은밀한 일탈을 넘어 일상적인 관리 체계마저 무너뜨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일반 중독자들이 프로포폴을 공급받는 주된 통로는 서울 강남 일대의 일부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원들이다. 정부의 감시망도 이 지역에서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이를 우회해 이익을 취하려는 의료업자들의 범행 수법도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얼마 전 경찰이 적발한 강남의 한 피부과 사례는 의료기관이 어떻게 마약 유통의 거점으로 변질되는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30대 병원장과 상담실장은 성형 관련 애플리케이션의 광고와 기존에 확보해둔 고객 명단을 활용해 프로포폴 상습 투약자들을 은밀하게 끌어모았다. 이들은 병원 내부에 외부 단속을 피할 수 있는 진료 기록 전산망에 등록되지 않는 '비밀방'까지 만들었다. 병원을 찾은 중독자들은 '진료기록부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제를 진행했다. 정상적인 의료기관이라면 처방과 투약 내역을 실시간으로 기록해야 하지만, 이 병원의 장부 어디에도 이들의 이름은 남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병원 관계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단속에 걸린 상담실장과 간호사는 과거 다른 의원에서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이미 경찰 조사를 받던 피의자 신분이었다. 그런데도 수사망을 피해 강남의 또 다른 피부과로 자리를 옮긴 뒤 상습 투약자 명단, 일명 '족보'를 활용해 범행을 이어갔던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운영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은 생산부터 유통, 투약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전산으로 추적한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도 역시 사람이 조작하는 허위 기록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검찰이 적발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사례는 시스템의 허점을 극단적으로 악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5년 동안 4700여 차례에 걸쳐 중독자들에게 18만mL에 달하는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했다. 식약처의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그가 중독자들에게 제안한 수법은 '차명 처방'이었다. 즉 가족이나 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져오면 원하는 만큼 프로포폴을 더 많이 투약해 주겠다는 것이다.

2월25일 약에 취한 상태로 차량을 몰고 반포대교를 달리다 한강 둔치로 추락한 운전자 A씨가 27일 서부지방법원에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휠체어를 탄 채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후 보고의 허점 노린 '원정 쇼핑' 횡행 

중독자들은 약물을 투약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병원에 넘겼다. 이렇게 도용된 주민등록번호 처방 내역만 1200여 회가 넘었다. 그것도 모자라 브로커를 통해 불법으로 확보한 외국인 2000여 명의 명단까지 활용했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많은 양의 약물이 처방되면 식약처 시스템에 이상 징후로 포착되기 때문에, 수천 명의 외국인 명의로 투약 건수를 쪼개 분산 보고하는 방식을 취했다. 

시스템상으로는 수천 명의 환자가 각각 정상적인 처방을 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몇몇 중독자가 하루에 많게는 10회 이상 연속으로 주삿바늘을 꽂으며 약물을 강박적으로 주입받고 있었다. 이 병원에서 약물을 공급받던 중독자 중 6명은 우울증 악화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떻게 한 환자가 하루에 여러 병원을 돌며 수차례 프로포폴을 투약받는 일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의 보고 체계가 가진 실시간 연동의 한계를 지적한다. 현재 규정상 의사가 마약류를 처방하고 투약한 내역은 당일 진료가 마감된 후나 수일 이내에 사후 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다. 실시간으로 즉각 연동되는 차단벽이 없는 구조다.

중독자가 오전 10시에 강남의 A의원에 가서 "피부 레이저 시술이 무서우니 수면마취를 해달라"고 해서 프로포폴을 맞은 뒤, 낮 12시에 서초구의 B의원으로 자리를 옮겨 동일한 요구를 해도 B의원의 의사는 이 환자가 두 시간 전에 다른 곳에서 약물을 투약하고 왔다는 사실을 처방 컴퓨터 화면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

여기에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번진 비급여 미용 시술 마케팅이 결합하면서 사각지대는 더 넓어진다. 성형 정보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에는 '통증 없는 수면 리프팅' '자고 일어나면 예뻐지는 패키지' 같은 문구들이 넘쳐난다. 통증을 동반하는 피부 시술에 프로포폴 마취를 세트로 묶어 판매하는 형태다.

병원 입장에서는 고액의 비급여 시술 매출을 올릴 수 있고, 중독자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시술을 받는다는 핑계로 약물을 투약할 수 있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단속반이 사후에 데이터를 분석해 이들을 적발해낼 수는 있지만, 투약이 일어나는 현장 자체를 실시간으로 통제하기에는 현재의 사후 보고 중심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정부와 사법 당국이 프로포폴에 대해 단속의 고삐를 조이자, 시장에서는 즉각적인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프로포폴의 대체재로 떠오른 것이 전신마취 유도제인 '에토미데이트'다. 이 약물은 효능과 외형이 프로포폴과 매우 유사해 유흥 업계와 중독자들 사이에서 '우유 주사 2탄'으로 불리며 빠르게 확산했다.

불법 유통업자들은 에토미데이트를 액상형 전자담배에 섞어 강남 일대 유흥업소 종사자들에게 판매하거나, 오피스텔에 간이침대를 들여놓고 무면허 '출장 주사' 형태로 영업을 하기도 했다. 한 투약자는 오피스텔에 누워 19시간 동안 에토미데이트 앰플 50개를 연속으로 투약받다 적발되기도 했다.

이 약물이 급격히 퍼진 원인은 법적 규제의 공백에 있었다. 에토미데이트는 오남용 위험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음에도 오랫동안 마약류가 아닌 일반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었다. 불법 유통하다 적발돼도 마약류관리법이 아닌 약사법 위반이 적용돼 처벌 수위가 낮았고, 무엇보다 약물을 구입해 투약한 중독자 본인은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경찰이 대규모 유통 조직을 적발하고도 투약자들에게는 고작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정부는 에토미데이트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지난 2월 마약류관리법에 따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해 관리에 나섰다. 그러나 약물의 진화 속도보다 법 제정과 개정의 속도가 한발짝 늦어지는 사이, 수많은 중독자가 규제의 빈틈 속에서 양산되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됐다.

국내 의약품 유통의 구조적 취약성은 의료용 마약류가 외부로 유출되는 또 다른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현재 의약품 유통 시장은 제약사에서 출발해 다단계 도매업체를 거쳐 병원과 약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다. 과거 도매업 진입 규제가 완화되면서 국내 의약품 도매상 수는 3500곳 이상으로 급증했다. 시장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영세 도매업체가 난립하면서 업체 간 재판매(도도매)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재고의 흐름을 투명하게 추적하는 데 공백이 발생한다.

의료계 자성과 온정주의 타파 선행돼야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병원뿐만 아니라 도매업체와 약국 등 중간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마약류 도난 및 분실 사고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약사면허를 불법으로 빌려 운영되던 한 도매업체에서는 상주 약사도 없이 일반 직원이 프로포폴과 최면진정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무단으로 반출해 유통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복잡하게 꼬인 다단계 유통망 속에서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할 마약성 의약품이 관리자의 눈을 피해 음성적인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통로가 열려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통증 없는 시술을 내세워 일반인들을 중독의 길로 유도하는 구조를 깨뜨리지 않는 한 마약과의 전쟁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의사와 의료기관에 부여된 마약류 취급 권한이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후 보고 중심의 감시 체계를 실시간 차단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인공지능 기반의 마약류 오남용 통합감시시스템(K-NASS)을 도입했다. 또 의사가 마약류를 처방하기 전에 환자의 과거 투약 이력을 시스템상에서 반드시 의무적으로 조회하도록 하는 제도를 졸피뎀에 이어 프로포폴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처방 당일 여러 병원을 돌며 약물을 수집하는 중복 처방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스템의 정비와 함께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의료계의 자성과 온정주의 타파다. 불법 유출이나 고의적인 오남용으로 적발된 의료인에 대해 면허 정지나 취소 처분이 내려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비교적 쉽게 면허를 재교부받는 현재의 온건한 처벌 기준은 범죄 억제력을 갖기 어렵다. 중대한 마약 범죄에 가담한 의료업자에 대해서는 경제적 이익을 상회하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사회적 퇴출에 준하는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무분별한 비급여 미용 시술 마케팅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도 시급하다. 통증을 조절한다는 명목하에 불필요한 수면마취를 남발하는 행태를 규제하고, 의학적 타당성이 없는 처방에 대해서는 엄격한 행정 제재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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