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지진, 드물지만 기적은 있다

강력한 지진이 하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정부를 덮쳤다. 참사에 참사가 더해졌다. 2026년 6월24일 오후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연쇄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7월3일까지 2645명까지 늘었다.
하루에만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주검 300여 구가 수습돼기도 했다. 부상자는 1만2600여 명, 여전히 수만 명이 ‘실종’ 상태다. 지진 발생 일주일을 넘기면서 구조작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주검을 수습하고, 신원을 확인하고, 매장하는 게 남은 과제다. 그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무너진 건물 더미 속 한 줄기 목소리
“처음엔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물이나 진흙 속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야나 파티노는 6월30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지진 최대 피해 지역인 라과이라의 아파트 8층에 사는 파티노는 지진이 나기 직전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건물이 흔들렸다. 파티노는 곧장 뉘어놓은 아들한테 달려갔다. 그의 아들 후안 다비드는 태어난 지 18일밖에 안 된 갓난아기다. 그날 오후 6시4분께 진도 7.2의 강진이, 불과 39초 뒤엔 진도 7.5의 강진이 베네수엘라를 덮쳤다. 파티노가 사는 아파트는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파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를 안은 상태로 어딘가로 떨어졌다. 아기를 놓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가구 위에 떨어져 그나마 충격이 덜했던 것 같다. (…) 힘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사람 목소리나 발걸음 소리가 주변에서 들리면 있는 힘껏 비명을 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왼쪽 발은 콘크리트에 깔린 상태였다. 뺨은 돌덩이에 눌려 있었다. 아들이 살아 있는 한 나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들의 코에 손을 대서 계속 숨을 쉬고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했다.”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때 가끔 기적이 찾아온다. 무너진 건물 더미 속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치 한 줄기 달빛처럼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이윽고 멀리서 오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파티노는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오빠, 나 여깄어.” 오빠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널 거기서 구해낼 때까지 여기 계속 있을게.” 오빠는 약속을 지켰다. 파티노 모자는 지진 발생 하루 만인 6월25일 밤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파티노는 양쪽 다리를 다쳤다. 아들은 얼굴 등을 긁혔을 뿐 큰 부상은 없었다. 아기 후안 다비드는 지진 발생 직후 베네수엘라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적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유엔 구조대, 영현백 1만 개 확보
“생존자 추가 구조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베네수엘라 정부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지진으로 수많은 주검이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이미 당국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피해 지역 항구에 임시안치소를 마련하고,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희생자의 주검을 냉동선박에 안치하기로 했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합동장례식을 치른 뒤 집단 매장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7월2일 현지발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신문은 수도 카라카스에서 만난 복수의 법의학 전문가의 말을 따 “집계되지 않은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실제 사망자는 4천 명에 가까울 것”이라며 “최종 확인될 사망자 규모는 그보다 훨씬 커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현지에서 구조작업을 조율 중인 유엔 쪽은 이미 1만 개의 영현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대 피해 지역인 라과이라에선 지진 발생 직후부터 주검이 대거 발견되면서 현지 병원 주차장에 종이상자를 깔아 주검을 눕혀놓기도 했다. 수많은 실종자 가족이 주차장 들머리에 몰려 실려 들어오는 주검을 맞이했다.
다니엘리 후르타도는 닷새 동안 남편을 찾아 여기저기 병원을 헤매고 다녔다. 라과이라 항구에 마련한 임시안치소에 도착해서야 남편의 주검을 발견했다. 이미 주검이 심하게 훼손된 탓에 다른 희생자를 남편으로 착각할 뻔했다. 한꺼번에 주검이 몰리면서, 당국은 유가족이 찾아오지 않은 일부 주검을 집단 화장하기 시작했다. 후르타도는 급히 주변에 부탁해 미화 850달러를 마련했다. 남편의 주검을 민간 장례업자에게 맡겨 따로 화장하기 위해서다. 후르타도는 뉴욕타임스에 “남편의 유해라도 곁에 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는 6월29일 자료를 내어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 지원을 위해 3억달러 규모의 구호자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진 발생 직후 미군 남부사령부는 수색구조대 파견과 함께 구호물품 수송 지원을 위해 군함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재무부도 지진 피해 지원을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의 국외거래 제한 조처를 일부 완화했다. 하지만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와 국영기업의 국외자산 동결 등 경제제재를 여전히 풀지 않고 있다. 영국중앙은행(BoE)에 보관 중인 48억달러 규모의 금도, 코로나19 창궐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허용한 50억달러 규모 특별인출권(SDR)도 모조리 접근이 차단된 상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재난 대응에 나설 자금줄이 막혀 있다.

“미국이 만든 인도적 재난, 해결하라”
2026년 1월3일 미국의 기습작전으로 체포·납치·이송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는 미국 교도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후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직후인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최대 5천만배럴(약 28억달러 상당)의 원유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시장가로 매각해 얻은 자금을 양국 국민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은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제한 조처를 일부 완화했다. 미국을 통해 ‘시장가’로 판매한 원유 수출대금은 미국이 ‘관리’하고, 일부 자금을 떼어 베네수엘라 정부 쪽에 전달하는 구조다. 중국·러시아·쿠바 등 전통적 우방국에 대한 원유 수출은 여전히 막힌 채다. 미국 반전·평화단체 코드핑크는 6월25일 성명을 내어 이렇게 강조했다.
“이번 재난은 우리가 장기간 경고해온 바를 여실히 보여줬다. 의도적 제재 등 경제적 압박으로 취약해진 국가는 재난에 대비할 능력도, 대응할 능력도 상실한다. 재난 이후 재건·복구에도 나설 수 없다. 미국은 경제제재 등 베네수엘라를 겨냥한 공세적 정책이 만들어낸 인도적 재난을 해결할 책임이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즉각 해제하고, 동결된 국외자산을 풀어 지진 피해 대응과 재건·복구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하라.”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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