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에서 다시 늘어나는 ‘과거의 병’…뭐길래?

'과거의 병'으로 여겨졌던 괴혈병이 최근 어린이들 사이에서 다시 보고되고 있다.
괴혈병은 비타민C 결핍 상태가 오래 지속돼 생기는 병이다. 대표 증상은 잇몸이 붓고 피가 나며, 피부에 작은 출혈 반점이 생기고, 다리·관절 통증, 절뚝거림이 나타나는 것이다. 비타민C 부족으로 몸의 결합조직이 약해지면서 생기는 증상들이다.
과거에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기 어려웠던 선원들에게 많이 생긴 병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요즘은 식단이 지나치게 제한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모로코 라바트 무함마드 5세 군병원 소아류마티스과 의료진은 5세 6개월 남아의 괴혈병 사례를 최근 국제 의학 학술지 《큐레우스(Cureus)》 보고했다.
의료진은 "심한 비타민C 결핍으로 생기는 괴혈병은 현대에 다시 보고되고 있다"며 "특히 과일과 채소를 거의 먹지 않고, 우유·과자·빵처럼 특정 음식만 계속 먹는 아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고 했다.
혈액암 의심할 만큼 심했던 증상… 원인은 '식습관'
아이는 2주 전부터 왼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고, 점차 걷기도 어려워했다. 잇몸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피가 났으며, 얼굴 한쪽도 부었다. 처음에는 혈액암 같은 심각한 병이 의심됐다. 의료진은 암, 류마티스 질환 등을 확인하기 위해 골수검사와 조직검사까지 진행했지만,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진단의 실마리는 식습관에서 나왔다. 부모에 따르면 아이는 2세 이후 3년 넘게 사실상 우유와 과자류만 먹어왔다. 과일, 채소, 고기, 생선, 달걀, 치즈는 거의 먹지 않았다. 검사 결과 아이의 혈중 비타민C 수치는 3µmol/L로, 정상 범위인 26~84µmol/L보다 크게 낮았다. 결국 아이는 심한 비타민C 결핍으로 인한 괴혈병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아이에게 일주일 동안 비타민C를 정맥으로 투여했고, 이후 먹는 비타민C 보충제로 치료를 이어갔다. 치료 효과는 빨랐다. 비타민C 치료를 시작한 지 48시간 만에 통증이 줄었고, 아이가 혼자 앉고 도움을 받아 걸을 수 있게 됐다. 3개월 뒤에는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드문 병"이라던 괴혈병, 왜 다시 보고되나
최근 연구들은 소아 괴혈병이 완전히 사라진 병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정형외과 분야 국제 학술지 《JAAOS 글로벌 리서치 앤 리뷰(Global Research & Reviews)》에 실린 2024년 분석에서는 미국 소아 괴혈병 발생률이 2016년 10만 명당 8.2명에서 2020년 10만 명당 26.7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괴혈병이 여전히 드물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뚜렷한 증가 흐름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영양학 분야 국제 학술지 《뉴트리언츠》에 실린 2022년 문헌고찰도 비슷한 흐름을 짚었다. 이 논문은 최근 20년 동안 보고된 소아 괴혈병 사례들을 살폈다. 그 결과, 괴혈병이 자폐스펙트럼장애, 발달 지연, 선택적 식습관, 제한적인 식단을 가진 아이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소아 괴혈병이 다시 보고되는 이유로 '숨은 영양 결핍'을 지목한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라기보다, 우유·과자·빵·면처럼 특정 음식만 오래 먹고 과일과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열량을 충분히 먹고 체중도 크게 부족해 보이지 않아도, 비타민 C 같은 미량영양소는 심하게 부족할 수 있다.
편식 심한 아이, 과일·채소 장기간 거부하면 주의
특히 자폐스펙트럼장애, 발달 지연, 언어 지연, 감각 예민함이 있는 아이들은 특정 식감이나 색, 냄새의 음식만 먹으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가 빵, 과자, 우유, 면처럼 비슷한 음식만 오래 먹고 과일과 채소를 거의 먹지 않으면 열량은 충분해 보여도 비타민C 같은 영양소가 부족해질 수 있다.
예방을 위해서는 매일 비타민C가 들어 있는 음식을 조금씩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귤, 오렌지, 딸기, 키위 같은 과일과 브로콜리, 피망, 양배추, 감자 같은 채소에 비타민C가 들어 있다. 아이가 특정 음식군을 오래 거부한다면 단순한 편식으로만 넘기기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나 영양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괴혈병은 원인을 빨리 찾으면 치료 반응이 좋은 편이다. 비타민C를 보충하면 통증과 잇몸 출혈이 며칠 안에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진단이 늦어지면 아이가 불필요한 검사를 받거나 오래 걷지 못할 수 있다. 아이가 과일·채소를 거의 먹지 않으면서 잇몸 출혈, 다리 통증, 걷기 거부, 피부 출혈 반점이 나타난다면 괴혈병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수민 기자 (suminlee@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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