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할리우드 거장도 묻혔다, 다낭영화제 집어삼킨 ‘K무비’ 열풍

지난달 28일 베트남 다낭 아리야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제4회 다낭아시아영화제(DANAFF IV) 개막식이 열렸다. 무대엔 할리우드 원로 제작자 빌 메카닉이 섰다. 타이타닉, 인디펜던스 데이를 만든 전 20세기폭스 회장이다. 영화제가 올해 새로 만든 ‘미국영화 특별전’을 알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정작 시선은 다른 곳에 쏠렸다. 개막식 시작 직전 한국 배우 지창욱이 도착하자 레드카펫 앞에 몰려 있던 인파가 순식간에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다른 배우들을 기다리던 현지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휴대폰을 든 손이 일제히 올라갔고, 셔터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다음날 밤 주베트남한국대사관과 다낭총영사관, 베트남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한국영화의 밤’에서도 상황은 똑같았다.부산국제영화제(BIFF) 창립자인 김동호(89) 전 위원장을 필두로 배우 박성웅, 이재용, 지창욱, 지승현, 정일우, 한동희 등이 한자리에 모이자 현지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쏟아졌고, 이들에게는 별도의 공로상이 수여됐다. 영화제의 공식 간판이었던 미국영화의 존재감이 완전히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개최된 이번 다낭영화제는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도 사활을 건 행사다. 팜티탄짜 베트남 부총리가 개막식 기조연설을 맡았다. 팜 부총리는 다낭영화제를 두고 “나라 문화브랜드를 키우는 전략 자산”이라고 했다. 올해 슬로건은 ‘아시아에서 세계로 향하는 다리’다. 영화 102편을 틀고, 세계 각국 영화인 1000여 명이 다낭을 찾았는데, 역대 가장 큰 규모다.
개막식 다음 날인 29일 밤 한국영화의 밤에서 지창욱은 ‘아시아 스크린 엑설런스 메리트’를 받았다. 아시아 영화 산업과 문화를 키운 영화인에게 주는 상이다. 지창욱은 올해 처음 다낭을 찾았다. 드라마 ‘군체’로 국내 관객 500만명을 넘긴 직후였다. 현지 취재진과 관객 관심은 온통 한국 배우들 몫이었다. 한국영화의 밤 행사를 위해 모인 리조트 직원들도 한국 배우들의 사진을 촬영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영화제 기간 다낭 시내 CGV 빈쭝플라자 등에선 한국·아시아 영화가 잇따라 걸렸다. 김동호 전 위원장이 직접 만든 다큐멘터리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도 30일 CGV에서 상영했다. 김동호 본인이 이 자리에 직접 나와 관객과 만났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문화공보부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문화국장, 보도국장, 국제교류국장을 거쳐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문화부 차관을 지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2010년까지 15년을 이끌었다. ‘문화 불모지’라 불리던 부산을 아시아 최대 영화 도시로 키운 인물로 꼽힌다. 왕가위,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술자리를 자주 가져 ‘소주 외교’라는 별명도 얻었다.


다낭영화제가 베트남 정부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커진 배경엔 조직위원장 응오프엉란도 있다. 응오프엉란은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 부인 응오프엉리의 친언니다. 과거 소련에서 영화 유학을 갔다온 영화 평론가기도 하다. 자매가 각각 베트남 영화 정책 실무 책임자와 퍼스트레이디를 맡고 있는 셈이다.
2023년 국제 기준으로 첫발을 뗀 다낭영화제는 올해로 4회를 맞았다. 베트남 정부와 다낭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본떠 동남아 대표 영화제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동북아에선 부산, 동남아에선 다낭을 대표적인 영화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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