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석학, 완고한 노인, 독보적 개인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안 바뀌는 게 옳다는 종류의 막연한 생각이 있으시고… 아파트에 대한 온갖 도덕적인 반대가 있으시죠.”
“편하면 죄인 줄 아셨죠. 하다못해 우리 엄마 목걸이, 머리카락 같은 모든 것에 도덕과 가치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둔 게 없는 것 같아요.”
“친구끼리 어울리며 술 마시고, 노래하고, 담배 피우고, 등산 가는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으시니까요. 아버님이 학자가 아니었다면 남들은 아마 '너는 또라이야' 그랬을 겁니다.”
이미 중년이 된 자식들이 노인이 된 아버지에 대해 돌이키고 있다. 온화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과거를 복기하곤 있어도, 아버지를 향한 시선이 썩 넉넉한 것 같진 않다. 위대한 석학으로 존경받았지만 한 여인의 배우자로선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남편, 비가 샐 정도로 낡은 언덕배기 주택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주장하며 자식들을 걱정시키는 완고한 아버지, 무성하게 자라난 풀과 나무를 솎아내지 않아 이웃의 민원이 들어와도 '이 땅까지 샀어야지' 읊조리며 괘념치 않는 괴팍한 이웃, 종이신문이 사장된 시대에도 아침마다 각 사의 조간신문을 펼쳐보는 지독하게도 고집스러운 지식인… 젊은 세대 눈으로 바라보면 아마 답답한 걸 넘어 강퍅하게까지 느껴질 법한 삶이다. 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이야기다.
올해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에 담긴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김 교수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내밀한 접근 덕일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강의를 처음 듣고 그 사상과 철학에 단숨에 매료돼 2004년부터 카메라를 들었다는 최정단 감독은 “2030 젊은 세대는 김 교수를 모른다”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1930년대 한국태생으로선 드물게 하버드대학교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땄고, 5공 시절 독재정권에 맞서는 성명서를 냈다가 옥살이를 했으며, 국내 문학과 예술 비평으로 한 획을 긋고 세계적 권위까지 인정받은 인문석학이라는 이력이 아무리 올곧고 수려해도, 요즘 사람들에겐 별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단 소리다. 관심사도, 삶의 방식도, 지향하는 미래도 모두 제각기가 된 세상에서 '시대의 지성'과 같은 표현이 더는 힘을 얻지 못하는 맥락과도 닿아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의 모순적이고도 돌출된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덕에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그를 잘 모르는 관객의 시선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김 교수와 아내 설순봉 번역가의 품에서 성장한 네 자녀는 모두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학자의 길을 걷고 있고, 개중에는 수학자로 이름을 떨친 김민형 교수도 포함된다. 그러나 “자식들이 전부 외국에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최 감독 말에 김 교수는 “제국주의의 희생물”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김 교수 역시 이미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음에도 말이다. 도예 취미를 지닌 손녀와 대화하는 장면은 좀 더 직접적이다. “시간, 에너지, 재료가 너무 많이 쓰이는 일”이라며 본의 아니게 습관적인 타박의 말을 내뱉고 만 김 교수는 “나눠 쓸 에너지는 충분하다”는 손녀의 대꾸 뒤에 잠시 멈칫한다. 완벽할 것 같았던 석학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모습들이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일종의 수식어로서만 호명되던 김 교수의 존재를 명료하게 외부로 끌어내고, 관객은 그 덕에 학자인 동시에 독보적인 캐릭터를 지닌 인간 김우창을 들여다보며 질문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토록 굳세고 확고한 태도를 유지해온 그가 평생토록 탐구해온 학문의 본질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때로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추구하고 싶었던 가치라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답은 이미 김 교수 스스로 내렸는지도 모른다. 과거 언젠가의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자기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다 자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외적인 것에 민감한 사람은 오히려 자기 삶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요.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외적인 인정을 바랍니다. 예술가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매우 고독하고 어렵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고, 오늘날같이 물질주의적 사회에서 그 진정한 길을 가는 것은 매우 외롭습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진리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진리다', '나에게 아름다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믿는 게 옳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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