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당 수십억’ 치솟은 한국 드라마 제작비…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겨레 2026. 7. 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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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콘텐츠산업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높은 제작비로 인해 전체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서 최근 콘텐츠산업계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국외 성공이 늘어나면서 제작비도 함께 올라간 것이라 이 현상을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 한국의 역대 최고 수준인 드라마 총제작비가 미국에서는 고작 '1·2회분' 제작 비용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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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BIZ
‘IP 프랜차이즈’로 수익률 극대화해야
총제작비 430억원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tvN 제공

최근 콘텐츠산업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왜 요즘 지식재산권(IP) 활용이 화두가 됐을까요? 이런 것도 유행일까요?”

모든 유행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콘텐츠산업에서 IP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은 치솟는 제작비 때문이다. 더는 기존과 같이 방영이나 상영만 해서는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다른 방식의 수익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 고민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국 문화산업이 성장하면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콘텐츠의 주요 경쟁력은 가성비였다. 1990년대 후반 드라마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아시아를 누비던 방송사 유통맨들은 일본 드라마의 10분의 1에서 20분의 1밖에 되지 않던 우리 드라마 가격을 회고한다. 수출에서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우리 제작비도 낮아 가능했던 가격이다. 품질은 높지만 가격은 싼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은 아시아 시장을 휘어잡은 주요 요인이었다.

산업 성장과 함께 제작비도 상승

그러나 산업이 성장하면서 제작비도 상승했다. 첫 번째 도화선이 된 사건은 1991년 도입된 ‘외주제작 의무편성제도’였다. 이전까지 드라마는 방송사 직원인 피디(PD)가 연출하고, 방송사 전속 탤런트들이 호봉제 출연료를 받으며 제작돼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영상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목적으로 외부 독립 제작사의 프로그램을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하도록 하면서 제작비가 오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삼성·대우·현대 등 대기업 자본의 영상산업 진출, 1991년 민영방송 SBS의 전국 네트워크화, 1995년 케이블티브이 시작 등으로 영상산업 자체가 커진 영향도 있었다. 제한된 스타 배우와 작가를 잡기 위해 오랫동안 낮은 수준에 묶여 있던 제작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겨울연가’ ‘대장금’ 같은 히트상품이 나오면서 또 한번 제작비 규모가 상승했다. 한국 드라마가 ‘수출상품’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중국 시장에 드라마를 선판매하기 위해서는 인지도가 높은 특정 한류 스타의 캐스팅이 필요해졌다. 스타 수가 제한됐던 때라 배우들의 몸값은 자연스럽게 올랐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회당 수백만원 수준이던 드라마 주연 배우의 출연료는 2007년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이 회당 2억원 넘는 금액을 받으며 전무후무한 이정표를 세웠다. 총제작비에서 주연 배우 출연료와 작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50~60%를 넘어서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된 것도 이때부터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회당 수백만원 수준이던 드라마 주연 배우의 출연료는 2007년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이 회당 2억원 넘는 금액을 받으며 급상승했다. 이때부터 총제작비에서 주연 배우 출연료와 작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50~60%를 넘어서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됐다. OCN

2010년대 후반에는 tvN, JTBC 등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드라마 제작 편수가 늘면서 제작비도 함께 올랐다. 중국 수출을 겨냥하거나, 방송 외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추가 판매를 꾀하면서 총제작비 130억원인 ‘태양의 후예’(2016년), 총제작비 430억원인 ‘미스터 션샤인’(2018년) 등이 탄생했다. 이때부터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15억~20억원 선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2018년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 효과도 더해졌다. 가혹했던 제작 현장의 노동강도는 줄었지만, 촬영 일수가 늘어나고 스태프 인건비가 정상화되면서 순제작비는 20~30% 이상 올랐다.

2020년대 제작비가 다시 크게 오르게 된 것은 글로벌 OTT 등장 때문이다. 2019년 ‘킹덤’, 2021년 ‘오징어 게임’ 등 OTT를 통해 세계적 히트작이 나오자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은 한국 콘텐츠 투자액을 늘렸다. 편당 제작비 30억원은 기본이고, 총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시리즈들도 생겨났다. 문제는 이렇게 제작비가 오르자, 이 수준을 감당할 수 없는 국내 방송사와 OTT에선 제작·방영 횟수를 줄이게 된 것이다. 높은 제작비로 인해 전체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서 최근 콘텐츠산업계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 최고 제작비 국가

한국 콘텐츠의 국외 성공이 늘어나면서 제작비도 함께 올라간 것이라 이 현상을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 다만 현 제작비가 우리 경쟁력에 걸맞은 수준인지는 가늠해보는 게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영미권 주류 시장과 비교한다면 한국 제작비는 여전히 낮다. 미국 지상파나 케이블의 평균적인 드라마 제작비는 회당 최소 500만달러(약 75억원) 선이다. 글로벌 OTT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 대작, 예컨대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시즌4는 회당 약 3천만달러가 투입됐고, HBO의 ‘하우스 오브 드래곤’도 회당 2천만달러를 웃돌았다. 한국의 역대 최고 수준인 드라마 총제작비가 미국에서는 고작 ‘1·2회분’ 제작 비용에 불과하다.

문제는 기대수익이다. 한국 콘텐츠는 영미권에 비해서는 여전히 싸지만 수익성도 낮은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OTT의 관점에선 한국 콘텐츠는 아직도 아시아·중남미 시장에서만 통하는 재화라는 시각이 강하다. 오히려 한국의 회당 제작비가 20억~30억원 선으로 올라서면서, 글로벌 자본 입장에서는 “한국도 마냥 싸지 않다”는 경계심을 품기 시작했다. 전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영미권 콘텐츠보다는 싸지만 시장성으로 보면 가치를 더 높게 매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 때문에 최근 글로벌 OTT들은 일본과 타이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대안을 찾고 있다. 과거 우리보다 앞선 제작 환경을 자랑했던 일본의 현재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평균 3천만~5천만엔(약 2억7천만~4억5천만원) 선이다.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경우 회당 10억원 수준이다. 대략 한국의 절반 이하인 셈이다. 타이는 회당 수천만원에서 1억원 안팎의 극도의 가성비로 보이즈 러브(BL) 장르와 로맨스 시장 중심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품질 차이는 있겠지만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값싼 대체재가 될 대안들이다.

영미권 콘텐츠는 수십 년간 다져온 ‘신디케이션(재판매) 시스템’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미국 드라마 ‘슈츠’는 2011년 첫 방영 이후 12년이 지난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주목받았다. 넷플릭스

중국 드라마 제작비도 막대한 자본력 덕에 빠르게 상승했지만 우리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중국 드라마 시장은 한때 텐센트·아이치이 같은 빅테크 플랫폼의 주도로 총제작비 3억~5억위안(약 550억~920억원)에 달하는 대작들을 쏟아냈다. 무협·역사 사극의 경우 총제작비가 1천억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드라마는 40부작에서 80부작에 이르는 대작이 많다. 회당 제작비로 나눠보면 평균 7억~15억원 수준이다.

중국도 스타 출연료가 높아지면서 제작비가 빠르게 상승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출연료 상승으로 탈세 등 부작용이 커지자 2018년 중국 광전총국은 출연료 관련 규제를 만들었다. 배우 전체 출연료가 드라마 총제작비의 40%를 넘을 수 없고, 주연급 배우 출연료도 전체 배우 출연료의 70%를 넘지 못한다. 회당 출연료도 100만위안을 초과할 수 없도록 법제화했다. 이 규제로 중국 드라마는 주연 배우 인건비를 묶고, 대신 컴퓨터그래픽이나 세트장 미술, 촬영 일수 확보 등에 투자해 작품 완성도가 높아졌다. 2022년 중국 광전총국이 발표한 제14차 5개년 중국 드라마 발전 계획에도 이 제도가 있어 아직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영미권 콘텐츠의 수익성 비결

영미권 제작비가 우리보다 여전히 높다면 이들은 이 금액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영미권 콘텐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영어의 확장성과 압도적인 내수 구매력이다. 영어로 제작되는 콘텐츠는 제작과 동시에 전세계에 판매되는 ‘글로벌 범용 상품’이 된다. 미국 내수시장의 OTT 평균 구독료는 아시아의 세 배 수준이고 광고 단가도 세계 최고라, 플랫폼이 벌어들이는 매출 규모도 크다. 이 점 때문에 글로벌 플랫폼은 비싼 가격에도 영미권 콘텐츠를 기꺼이 구매한다. 이들과 비교할 때 한국 콘텐츠는 자막 장벽 탓에 미국 내수시장 소비층을 온전히 흡수하기 어렵고 객단가가 낮은 아시아 시장에 의존한다.

영미권 콘텐츠는 수십 년간 다져온 ‘신디케이션(재판매) 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도 첫 방영 플랫폼에서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시즌제 등을 통해 100부작 이상의 에피소드를 채운 뒤 전세계 수백 개 채널에 팔아 이익을 거둔다. 반드시 양이 많아야 잘 팔릴까 싶은데, 실제 이 정도 양이 돼야 ‘익숙함’이 생겨 판매가 쉬워진다는 것이 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신디케이션 시스템은 OTT가 성장하면서 ‘플랫폼 독점주의’에 밀려 다소 퇴색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OTT 경쟁이 심화하면서 이 방식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OTT들이 값비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받은 오래된 시리즈들을 구매하는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긴 시리즈 작품은 시청자를 플랫폼에 수개월간 묶어두는 구실을 해서 가입유지율을 높인다는 게 증명됐다. 넷플릭스가 오래된 ‘프렌즈’나 ‘슈츠’ 같은 작품을 방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디즈니의 마블 시리즈나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처럼 영상물의 흥행을 테마파크, 굿즈, 게임, 캐릭터 라이선싱 등 거대한 ‘IP 프랜차이즈’로 확장하는 것도 이들의 장기다. 즉, 제작비는 높지만 긴 시리즈로 만들거나 여러 수익원을 연결해 제작비 이상의 이익을 거두는 구조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치솟는 제작비를 억지로 낮출 수 없다면, 결국 가야 하는 방향이 이쪽임을 알려주고 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zkim@koreaexim.go.kr

* 이번호를 끝으로 김윤지 수석연구원의 ‘CULTURE & BIZ’ 연재를 마칩니다. 14년간 수고하신 김 수석연구원과 글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김윤지 연구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맡고 있다. 문화산업을 경제학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해 분석하는 글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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