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뿌볼, 만지면 통증 덜 느껴진다?…‘말랑’과 ‘뽀각’의 과학

김태희 기자,장효빈 기자 2026. 7. 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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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각! 둥근 공을 만지작거리다가 꽉 누르는 순간 공을 감싼 왁스가 부서집니다.

왁뿌볼을 갖고 노는 영상이 인스타그램 릴스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면서 왁뿌볼을 판매하는 서울 동묘 완구거리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5월 29일 경기 수원 기초과학연구원(IBS) 뇌이미징연구단 연구실에서는 왁뿌볼을 만질 때 통증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확인하는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왁뿌볼을 부수는 감각에 집중한 상태에서는 처음보다 통증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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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뿌볼은 촉각과 청각,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복합 감각 장난감으로 예측 가능한 감각이 주는 만족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AI 생성이미지

뽀각! 둥근 공을 만지작거리다가 꽉 누르는 순간 공을 감싼 왁스가 부서집니다.

왁뿌볼을 갖고 노는 영상이 인스타그램 릴스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면서 왁뿌볼을 판매하는 서울 동묘 완구거리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왁뿌볼이 주는 감각은 왜 이렇게 만족스러운 걸까요. 과학으로 알아봤습니다.

5월 29일 장효빈 기자가 김동호 기초과학연구원 뇌이미징연구단 연구원과 함께 왁뿌볼을 만지면 통증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실험했다. 사진은 왁뿌볼을 부수는 장효빈 기자의 손목에 열 통각 자극기로 통증을 가하는 모습이다. 과학동아 제공

● 왁뿌볼 만지면 통증이 덜 느껴진다?

"으앗, 따가워!"

5월 29일 경기 수원 기초과학연구원(IBS) 뇌이미징연구단 연구실에서는 왁뿌볼을 만질 때 통증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확인하는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이곳은 촉각이나 통각 등의 자극을 만들어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실험실입니다. 이번 실험은 왁뿌볼이 통증 완화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왁뿌볼은 '왁스 부수기 볼'을 줄인 말로 점토에 왁스를 입힌 뒤 고무를 씌워 부수는 장난감입니다. 슬라임과 말랑이, 클리커에 이어 새로운 촉감 장난감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왁뿌볼의 가장 큰 매력은 왁스가 부서질 때 느껴지는 촉감입니다. 힘을 주어 왁스를 부순 뒤에는 부드럽게 늘어나는 점토를 마음껏 만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왁스가 부서질 때 들리는 '뽀각' 소리도 만족감을 높이는 요소로 꼽힙니다.

최근에는 왁뿌볼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힐링이 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경험담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김동호 IBS 뇌이미징연구단 연구원과 함께 간단한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실험에서는 왁뿌볼을 만질 때 느끼는 촉각이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는 다른 감각을 얼마나 억제하는지 확인했습니다.

먼저 열 통각 자극기로 손목에 열 자극을 가해 통증의 정도를 확인했습니다. 자극 온도는 47℃로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지만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왁뿌볼을 부수고 만지는 동안 동일한 열 통각 자극을 다시 가했습니다. 왁뿌볼을 부수는 감각에 집중한 상태에서는 처음보다 통증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김동호 연구원은 이러한 원인이 왁뿌볼을 만질 때 느끼는 촉각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연구원이 참여한 IBS 뇌이미징연구단 연구팀은 4월 13일 사람이 특정한 촉각 정보에 주의를 집중하면 다른 감각 정보가 억제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doi:10.1038/s41467-026-71842-w).

왁부뽈. 과학동아 제공

뇌의 대뇌겉질(대뇌피질)에는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감각피질이 있습니다. 감각피질은 깊이에 따라 표층과 중간층, 심층으로 나뉩니다.

촉각 등의 감각 정보는 피부를 통해 들어와 뇌의 시상을 거친 뒤 중간층으로 전달됩니다. 표층은 전두엽과 두정엽의 판단을 받아 감각 신호를 강조하거나 억제하고 심층은 중간층에서 처리된 정보를 바탕으로 시상에 감각 정보를 줄이거나 증폭하도록 명령합니다.

연구팀은 특정 감각에 주의를 기울일 때 감각피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참가자의 손목에는 통증 자극을, 손가락에는 촉각 자극을 가했습니다. 이어 참가자에게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촉각의 특성을 구분하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목의 통증 자극과 손가락의 촉각 자극이 동시에 감각피질로 전달됐습니다. 감각피질에서 손목의 감각을 처리하는 영역과 손가락의 감각을 처리하는 영역은 서로 구분돼 있으며 연구팀은 두 영역의 활성 양상을 비교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감각피질의 활성도를 분석한 결과 촉각에 집중한 손가락 담당 영역에서는 표층의 활동이 증가했습니다. 반면 통증을 담당하는 손목 영역에서는 촉각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보다 표층과 중간층, 심층의 활동이 모두 감소했습니다.

이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감각에 대해 전두엽과 두정엽이 감각 신호를 억제하도록 지시하고 시상이 다시 감각신경으로 통증 정보를 줄이라는 명령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즉 단순히 뇌에서 통증을 덜 인식한 것이 아니라 감각 정보 자체가 감소한 것입니다.

김동호 IBS 뇌이미징연구단 연구원은 "뇌가 감각을 처리하는 우선순위를 바꾸면서 집중한 촉각 정보를 먼저 처리하고 통증이나 불안, 스트레스처럼 기존에 주의를 차지하던 다른 감각 신호는 상대적으로 덜 처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명상할 때 호흡이나 손가락 감각에 집중하며 불안이나 걱정에서 잠시 벗어나는 원리와 비슷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왁뿌볼의 매력은 예측된 감각

특정 감각에 집중하면 다른 감각을 잊게 되는 경험은 운동이나 명상에서도 흔히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필 왁뿌볼을 선택해 이러한 경험을 하는 것일까요.

왁뿌볼뿐 아니라 이전에 유행했던 클리커와 슬라임, 말랑이도 모두 손끝에 기분 좋은 촉감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촉감은 실제로 만져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으며 예측 가능한 감각은 사용자에게 안정감과 쾌감을 제공합니다.

사람은 예상했던 보상을 얻으면 뇌의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면서 도파민 분비가 증가합니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은 뒤 그 맛을 기억하고 다시 찾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왁뿌볼은 여기에 한 가지 특징을 더 갖고 있습니다. 촉각뿐 아니라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복합 감각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손으로 왁스를 부술 때 느껴지는 촉감, '뽀각' 하는 소리, 부서진 뒤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 모습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김 연구원은 "딱딱한 왁뿌볼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깨질 것이라고 예측하게 됩니다. 이후 예상했던 결과가 나타나고 동시에 '뽀각' 하는 소리로 약간의 놀라움까지 느끼면 보상회로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사람들이 반복해서 왁뿌볼을 만지거나 관련 영상을 계속 보는 이유도 예측 가능한 감각을 촉각과 청각, 시각으로 동시에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왁뿌볼이 부서지는 영상에 소리를 역재생한 영상을 비교했습니다. 실제로는 왁뿌볼이 깨지기 전에 '뽀각' 소리가 먼저 들리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예상과 실제 감각이 어긋나는 현상을 '감각 예측 오류'라고 합니다.

감각 예측은 의식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 예상하지 못한 움푹 팬 바닥을 밟았을 때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2019년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연구팀은 일정한 순서로 반복적인 촉각 자극을 주면 해당 손가락을 담당하는 감각피질이 미리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doi:10.1126/sciadv.aav9053).

이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뇌가 다음 감각을 미리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왁뿌볼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뇌는 '곧 뽀각 소리를 내며 부서질 것'이라는 감각을 미리 예측하고 있으며 이러한 예측 자체가 기대감과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말랑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말랑이 장난감.  기존에 유행하던 말랑이와 슬라임, 클리커는 모두 사용자 손에 기분 좋은 촉감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이 장난감들을 만질 때 느껴지는 촉감은 만지기 전부터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예측 가능한 감각은 사용자에게 안정감과 쾌락을 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왁뿌볼, 진정한 ‘힐링’이 될 수 있을까

"이번에 인터뷰하면서 왁뿌볼의 존재를 처음 알았습니다. 왁뿌볼의 공감각적 특성을 듣고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김동호 연구원은 왁뿌볼의 특성에 주목하며 연구 주제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촉각, 청각, 시각 자극을 모두 주는 소재라는 점에서 왁뿌볼을 감각 연구에 활용해 볼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앞으로 예측할 수 있는 복합 감각이 다른 감각 정보를 방해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지 확인할 계획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통각 자극을 주면서, 왁뿌볼에서 예상 가능한 소리가 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각각 영상으로 보여줄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이 얼마나 통증을 느끼는지 비교하면 예측 감각이 다른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왁뿌볼이라는 장난감이 동시에 여러 감각을, 그리고 예측된 감각을 준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에 잘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측된 감각으로 안정감을 주는 왁뿌볼은 치료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까요. 김 연구원은 "만성 통증 환자를 위한 통증 완화 보조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환자들이 왁뿌볼을 갖고 노는 감각에 집중하도록 해 통각 정보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또 김 연구원은 "감각을 훈련하는 데도 왁뿌볼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뇌의 시상 부분이 손상된 시상 뇌졸중 환자는 들어온 감각 정보가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기 어려워합니다. 이 때문에 뇌가 모든 감각을 과하게 예측하고 통증이 들어오는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왁뿌볼 등을 이용해 시상 뇌졸중 환자에게 예측 가능한 감각 자극을 제공함으로써 감각을 구분하는 훈련을 하도록 도와주면 환자들의 과도한 통증 신호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왁뿌볼로 특정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주변 소리 등 다양한 감각을 억제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매운맛 중독처럼 왁뿌볼 중독도 사람들에게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만들지는 않을까요?"

이 질문에 김 연구원은 "두 가지 도파민 요인의 양상은 다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매운맛은 강한 자극으로 보상받은 뒤 더 매운맛을 먹으면서 쾌감을 느낍니다. 반면 왁뿌볼의 핵심은 과도한 자극이 아니라 '예측 가능함'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범위의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감각 훈련을 통해 특정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주변 소리 등 다양한 감각을 억제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김동호 IBS 뇌이미징연구단 연구원은 왁뿌볼의 감각적 특성이 추후 치료용 감각 훈련에 쓸 여지가 있다고 예측했다. AI 생성 이미지

감각과학의 시선에서 본 왁뿌볼은 기존 유행과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극강의 단맛이 특징인 두쫀쿠, 극도로 매운맛을 내는 불닭볶음면이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며 인기를 끌었다면 왁뿌볼은 예측 가능한 감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강한 자극만을 찾지 않고 일상에서 쉽게 느낄 만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경험하기 어려운 감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왁뿌볼의 유행은 숏폼 영상과 자극적인 음식 등 감각 자극이 지나친 시대에 오히려 소소한 자극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감각 자극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예측 가능한 작은 감각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왁뿌볼의 유행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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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기자,장효빈 기자 taehee@donga.com,robyne9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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