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세가 티코 몰며 프로필 돌리던 시절… '공짜 연기학원' 30인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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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공고 하나가 실렸다.
액터스21 아카데미는 오정세에게 연기의 신세계를 열어줬다.
영화사들은 액터스21 아카데미와 함께 김대승 감독의 '번지 점프를 하다'(2001),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2001) 등 영화 8편의 주연과 조연 배우를 찾고자 했다.
오정세와 양 감독, 김영재, 정보훈 등 액터스21 아카데미 동기생들은 영화제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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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오정세<2>
2000년 초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공고 하나가 실렸다. 연기 학원 액터스21 아카데미에서 배우 지망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교육기간은 6개월. 액터스21 아카데미 설립자는 배우 명계남이었다. 그는 당시 “한국 영화는 명계남이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는 우스개가 떠돌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었다. 강사 면면도 화려했다. 명계남을 비롯해 강신일, 최용민, 오지혜가 강단에 선다고 공고는 알렸다. 대학로에서 연기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었다. 무엇보다 수강료가 파격적이었다. 무료였다. 돈에 얽매이지 않고 우수 인재를 발굴해 한국 영화의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명계남 ‘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액터스21 아카데미에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2차 전형을 거쳐 30명이 뽑혔다. 양익준과 정만식, 박병은, 김영재, 김주령, 우정국(초기 우돈기로 활약) 등이 이름을 올렸다. 오정세도 30명에 포함됐다. 당시 무명이었으나 훗날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맹활약하게 될 이들이었다. 양익준은 주연과 연출을 겸한 ‘똥파리’(2009)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받으며 독립영화 기수로 부상했다. 정만식은 ‘부당거래’(2010)와 ‘베테랑’(2015) 등에 출연하며 ‘신스틸러’로 각광 받았다. 박병은은 ‘암살’(2015)과 ‘안시성’(2018) 등으로 관객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영재는 ‘사랑니’(2005)와 ‘밀양’(2007) 등에 출연하며 중견 연기자로 자리잡았다. 김주령은 ‘혜화, 동’과 ‘도가니’(2011) 등에 출연한 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으로 세계에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우정국은 ‘부당거래’(2010)와 ‘오징어 게임’ 시즌3(2025) 등에 출연했다.

액터스21 아카데미는 서울 서초동 신논현역 근처에 있었다. 교보문고 강남점 건너편 건물이었다. 수업은 1주일에 2, 3번이었다. 한 번에 3시간 가량이었다. 수강생 30명은 치열한 전형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고무돼 있었다. 대학로에서 이름이 높은 강사들의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자부심은 동기들끼리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했다. 명계남과 강사들이 구심점이 돼 줬다.
액터스21 아카데미는 오정세에게 연기의 신세계를 열어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연기수업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 액터스21 아카데미에서 맺은 인연은 이후 오정세가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데 든든한 디딤돌 역할을 해줬다.
양익준 감독 등과 수시로 영화사 문 두드려

액터스21 아카데미는 2000년 8월 초대형 오디션 ‘도전 2000’을 주도했다. 명필름과 청년필름, 눈엔터테인먼트 등 8개 영화사가 참여한, 유례 없는 행사였다. 영화사들은 액터스21 아카데미와 함께 김대승 감독의 ‘번지 점프를 하다’(2001),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2001) 등 영화 8편의 주연과 조연 배우를 찾고자 했다. 액터스21 아카데미 수강생들은 행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오디션에도 참가했다. ‘도전 2000’에는 1,200명이 지원했고, 서류전형을 통과한 820명이 연기로 경합했다. 오정세는 ‘수취인불명’에 캐스팅됐다. 1979년 미군부대 옆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는 ‘경찰1’ 역할을 맡았다. 단역으로 얼굴을 비친 ‘아들’(1997) 이후 4년 만의 출연이었다.

액터스21 아카데미의 6개월 연기수업이 끝난 뒤에도 동기들끼리의 인연은 이어졌다. 양익준 감독과 오정세, 우정국, 정보훈은 함께 다니며 영화사에 배우 프로필 자료를 돌리고는 했다. 국내 1세대 경차 티코를 소유한 오정세가 종종 운전사 역할을 했다. 네 사람은 영화사 문을 두드리는 것이 무서워 “이번에는 네가 하라”며 가끔 실랑이를 벌이고는 했다. 영화사 출입문 밑으로 프로필을 밀어넣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액터스21 아카데미에서 공짜로 마련해준 사진이 동봉됐다. 무명시절 1,000번 넘게 오디션을 봤다는 오정세 곁에 연기학원 동기들이 있었던 거다.
동기들끼리 경쟁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1차 오디션을 통과한 후 2차 오디션에서 맞붙는 식이었다. ‘품행제로’(2002)처럼 양익준 감독과 오정세, 우정국이 동시에 오디션을 통과해 캐스팅이 되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세셈트리오’라는 감초 역할들이었다. 하지만 오정세가 연극 ‘이발사 박봉구’ 출연 일정으로 빠지고, 우정국이 다른 일로 합류할 수 없게 되면서 양 감독만 출연하게 됐다.
‘닭도리탕’영화제로 팬들과 만나

오정세와 양 감독, 김영재, 정보훈 등 액터스21 아카데미 동기생들은 영화제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2000년부터였다.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행사로 시작했다. 단역으로 출연한 장편영화든, 단편영화든 사람들에게 배우로서 자신들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영화제 이름은 ‘다도리타’였다. 닭도리탕(닭볶음탕)에서 받침을 뺀 명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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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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