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덕후’도 전문직, K팝 팬들끼리 붙는 서바이벌


[뉴스엔 황지민 기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쯤되면 덕후도 직업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연예인 일정을 늘 함께하고, 그들을 향한 콘텐츠를 만들고, 생일 주간에는 생카(생일 카페)와 지하철 광고 기획까지 하는 이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제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 뒤에서 묵묵히 애정을 보내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만의 커뮤니티와 문화를 만들어내며 독립적 주체로 올라선 지 오래다.
이제는 방송계에서 이들을 무대 위 주체로 끌어올리는 시대도 왔다.
■ ‘조력자’에서 ‘주인공’으로… 안방극장 점령한 덕후들
OTT 플랫폼 웨이브가 아이돌 팬덤 서바이벌 '팬덤스테이지'를 7월 말 공개한다. 각 팬덤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덕질과 맞닿은 게임을 거쳐 단 한 팀의 우승자를 가리는 포맷이다. MC는 하이라이트 윤두준이 맡았다.
팬덤이 방송에 등장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관찰 대상이 아니라 주인공이 된 건 사실상 처음이다.
팬덤은 사실상 K팝 산업의 가장 큰 하부구조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2025년 K팝 앨범 누적 판매량(톱400 기준)은 9000만 장대로 예상됐다. 이 규모의 피지컬 시장은 팬덤 반복 구매 없이 성립할 수 없다.
기업 실적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하이브의 2025년 연결 매출은 전년 대비 17.5% 성장한 2조6499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공연 매출은 69.4% 늘어난 7639억원, MD·라이선싱 매출은 35.8% 증가한 5705억원이었다. 티켓과 굿즈, 멤버십. 성장을 견인한 항목은 모두 팬덤 지갑에서 나왔다.
팬덤은 무급 마케터이기도 하다. 신곡 바이럴, 스트리밍 총공, 해외 팬을 위한 자막 제작까지. 소속사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홍보가 팬덤 손에서 매일 이뤄진다.
■ 서브컬처의 제도권 도약 vs ‘빠순이’ 잔혹사 답습 우려
이러한 K팝 팬덤이 아티스트 그늘에서 나와 ‘방송 주체’가 됐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 있다. 그러나 SNS 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들이 걱정하는 주 이유는 ‘과연 해당 프로그램이 K팝 팬덤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K팝은 주류 문화가 됐다. 그러나 K팝을 '덕질'하는 행위는 여전히 서브컬처(Sub Culture, 하위 문화) 아래 존재한다. 팬덤 다수를 이루는 젊은 여성들의 애정과 취미를 향해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대표되는 비하의 시선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팬들이 열정적으로 임하는 취미생활을 방송에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 대한 조롱적 시선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암묵적 용인’과 ‘권리 침해’ 사이… 딜레마 속 관전 포인트
‘팬덤스테이지’가 팬덤 문화에서 ‘회색 지대’로 일컬어진 부분들을 어떻게 다룰지도 관전 포인트다.
웨이브 공식 SNS에 공개된 영상에는 팬들이 대형 카메라, 이른바 '대포'를 들고 촬영 경쟁을 벌이는 장면이 담겼다. 대포 카메라는 팬덤 문화의 회색 지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요소다.
현재 대부분 아이돌 콘서트에서는 전문 기기를 활용한 촬영이 전면 금지되고 있다. 공연장 입장에서부터 소지품 검사가 이루어지고, 공연 중 장비가 적발될 경우 퇴장 조치까지 받을 수 있다. 아이돌을 찍는 팬들, 즉 ‘홈마’들과 소속사 사이 갈등은 공연 때마다 공론화되는 단골 주제이다.
그러나 소속사 방침과 어긋나는 촬영물이 때로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 콘텐츠가 된다. 홈마들이 찍은 사진은 온라인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홍보 효과를 가져온다. 홈마 사진, 영상 하나가 거대한 팬덤 유입을 불러온다.
이들이 촬영하는 공항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이다. 홈마들은 공개되지 않은 공항 스케줄을 찾아내 아이돌을 렌즈 안에 담는다. 이로 인해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사생활 침해 위험을 겪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홈마 콘텐츠가 아티스트의 공항 패션·해외 일정 등을 홍보하는 데 큰 역할은 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팬덤스테이지’ 공식 영상에 나온 촬영 미션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제시됐는지는 모른다. 팬사인회 등 일부 오프라인 행사는 전문 장비 촬영도 허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포카메라 촬영이 ‘암묵적 용인’ 범위 안에 있는 소재라는 사실이다. 프로그램이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연출했을 지 궁금증이 쏠리고 있다.
'팬덤스테이지'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예능에 팬덤 문화가 가진 오랜 딜레마를 해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팬들이 이렇게나 진심이다'라는 신기한 구경에서 멈춘다면 아쉬운 기획이 될 수 있다. 방송 콘셉트가 주는 신선함에 비례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뉴스엔 황지민 saeh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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