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딱 하나 남은 성병관리소... 보존할 유산인가, 철거할 흉물인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보존 갈등
공대위 약 2년간 천막 농성 벌여
"국가폭력의 증거" 철거 반대
이 대통령도 "보존이 바람직"이라 했지만...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 합니다.

'몽키하우스.'
경기 동두천 소요산 자락에 자리한 옛 성병관리소 별칭입니다. 철창 안에 갇혀 밖을 내다보는 여성들의 모습이 원숭이 같다고 해서 붙여졌죠. 당시 기지촌 여성이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려면 성병 정기 검진을 통과해야 했는데, 성병관리소는 전염병예방법을 근거로 성병 보균 의심자와 검진 미이행자, 검진에서 탈락한 여성들을 강제수용했습니다. 치료를 한다는 목적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페니실린이 과다 투여돼 쇼크로 사망한 사례도 다수 발생했다고 전해집니다.
'낙검자 수용소'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도 불린 이곳은 1973년 문을 열고 1990년대 초 운영을 중단할 때까지 기지촌 여성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정부의 주요한 외화벌이였던 미군의 '안전한 성매매'를 위해 국가가 자국 여성의 몸을 관리·통제했던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굴곡이 새겨진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지요.
동두천 성병관리소가 폐쇄된 지 약 30년 만에 뉴스의 중심에 섰습니다. 동두천시가 2024년 개발 사업을 위해 건물 철거를 추진하면서부터입니다. 건물 보존을 주장하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이에 맞서 건물 인근에서 천막 농성을 한 지도 600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국가폭력의 증거를 지우지 말라

현재 건물은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 벽엔 낙서가 가득한 흉물에 가깝습니다. 흔히 보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문화유산의 모습은 아니지요. 보존을 주장하는 이들도 건물의 건축적 가치보다는 국가폭력의 역사적 증거로서의 가치에 주목합니다.
공대위 측 안김정애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는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박정희 정권에서 벌어졌던 국가폭력의 상징적인 장소"라며 "문자로 '옛날에 그곳에 무엇이 있었다'고 배울 수도 있지만 그 장소에 가서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어 "성병관리소를 리모델링해서 기지촌 여성에 대한 기록관 혹은 기억관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종의 '다크투어리즘(비극적 사건, 역사적 참사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는 관광)'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올 4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 및 학술단체 일동'도 성명서를 내고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현존하는 유일한 성병관리소 건물이라는 점에서 대체불가능한 역사 유산"이라며 "이 건물마저 사라진다면, 국가권력과 군사주의, 젠더폭력과 냉전 체제가 교차하며 여성들의 삶을 파괴해 온 역사의 물적·공간적 증거는 돌이킬 수 없이 소멸된다"고 이런 의견을 지지했습니다.

혹자는 기지촌 여성의 성매매가 국가폭력과 관계없는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2년 9월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 대해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가가 주도해 기지촌 여성을 강제 격리했을 뿐 아니라,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70년 만에 인정한 것이었죠.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기지촌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공식 사죄를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웰슬리대 교수 캐서린 문도 2002년 출간한 책 '동맹 속의 섹스'에서 한국이 기지촌 여성들로 하여금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도록 하는 "비공식적 외교관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죠. 미국이 1971년 한반도에 미군을 대대적으로 감축하자 한국 정부가 '기지촌 정화 운동'을 벌이는 등 기지촌을 조직적으로 관리·운영했다는 겁니다. 성병관리소 설립도 이런 일환이었죠.
동두천시는 "관광 개발 사업 해야"... 결단만 남았다

반면 건물과 토지 소유주인 동두천시는 '소요산 확대개발사업'에 따라 해당 부지에서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소요산 권역 전체에 골프장, 카페, 전시 공간 등이 들어서고 자연하천을 복원하는 20여 개 관광지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데, 성병관리소 부지가 이 중심부에 위치해 철거가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양측 입장이 앞서 7차례의 대화 협의체에도 평행선을 달리면서, 올해부터는 성평등부 주관으로 협의체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4, 6월 두 차례 회의가 진행됐는데 동두천시는 최근 이 회의에서도 다른 부지로 건물을 떼서 옮기거나 다른 부지에 일부 기억 공간을 만드는 방식 등을 제안했습니다. 여전히 토지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공대위 측 입장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건물을 통째로 옮긴다 해도 특정 공간이 사람들의 경험, 기억, 역사, 문화와 결합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성격, '장소성(placeness)'이 훼손된다는 이유입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글로는 전달되지 않는 현장의 아우라가 있고, 장소성이 있다"며 "동두천의 역사에서 그 자리에 유희 시설이나 주차장이 들어가는 게 기존 건물과 현장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나 가치보다 더 큰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일제시대 같은 수치스러운 역사를 경험한 나라 중 선진국은 대체로 물적 잔재는 보존하되 인적 잔재를 청산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해 왔으나, 한국은 인적 잔재 청산을 못 하고 매번 물적 잔재를 청산하자고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안김정애 공동대표도 "장소가 없어지면 기억도 없어진다"며 "아우슈비츠를 뉴욕으로 옮기면 어떤 의미가 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성병관리소 철거 갈등은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때부터 관심을 가진 사안이기도 합니다. 도지사 당시 경기도여성가족재단에 관련 아카이브를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지난해 11월 열린 '경기 북부 타운홀 미팅'에서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점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다. 저는 보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며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겠다"고 답했습니다.
갈등이 오래 이어진 만큼 이제는 사회적 합의와 결단만이 남았습니다. 분명한 건 일본군 '위안부'에 비해 동맹이란 이름으로 쉬쉬해 온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안 교수는 "나라를 스스로 지킬 힘이 없으니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다 보니까, 미군의 편의를 봐줘야 되고 그 덕에 돈을 벌고 하는 그런 비참한 국가적 상황이 있었다"며 "그럼 그걸 극복했으니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후손들한테 깨끗한 역사만 물려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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