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접시 추가하고 말았다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2026. 7. 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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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타코

타코는 토르티야(tortilla) 만드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마사(masa)라고 부르는 구운 옥수수 가루를 준비하고 여기에 기름과 물, 그리고 약간의 소금을 붓고 반죽을 했다. 내가 일했던 호주 멜버른의 레스토랑은 동남아부터 멕시코까지 이른바 환태평양 언저리 음식들을 모아 메뉴로 냈다. 덩달아 타코도 메뉴에 있었고 전채(前菜) 음식을 담당했던 내 몫이었다.

반죽에 찰기가 돌면 작게 잘라내 동그랗게 빚었다. 그 작은 반죽을 전용 틀로 찍어 누르면 토르티야가 됐다. 토르티야는 만두피처럼 한 번에 50장, 100장씩 만들어 놓고 주문이 오면 철판에 구워 냈다. 텍스멕스(Tex-Mex)라고 하는 미국식 멕시코 음식에서는 대부분 밀가루 토르티야를 쓴다. 밀가루의 글루텐 덕분에 반죽이 얇게 밀리고 작업도 쉬우며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조리법 나름이겠지만 옥수수 가루만 쓰게 되면 찰기가 없어 찢어지기도 쉽고 그만큼 작업도 어렵다.

주방 보조였던 파키스탄 아줌마 파티마에게 반죽을 시켜 놓으면 절반이 못 쓰게 됐다. 그러면 약간은 미안한 얼굴로 내 옆에 찾아와 “좀 같이 하자”고 팔을 붙잡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 맥주병으로 만두피 좀 빚었지’라고 생각하며 토르티야를 찍어내면 어두웠던 파티마 얼굴이 환해졌다. 철판 위에서 토르티야가 익기 시작하면 구수한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주방장이 왜 옥수수만 고집했는지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어두운 주방에서 타코를 만들던 기억은 한국으로 돌아와 점차 희미해졌다. 손으로 만들던 음식은 어느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음식이 되어 있었다. 남이 만든 타코를 사 먹어야 하니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지만 결국 머물게 된 곳은 삼성중앙역 7번 출구 뒷골목이었다.

골목에는 간판 없는 낮은 빌라들이 빼곡했다.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니 사람들이 한 가게 앞에서 서성였다. 회사원과 긴 머리의 젊은이들, 영어로 통화하는 외국인까지 뒤섞여 배고픈 이들 특유의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가게 유리창 너머로는 이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느긋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얇은 접시에 타코를 하나씩 올려 입을 찢어져라 벌렸다. 그 모습을 바깥에서는 부러운 듯 쳐다보며 계속 시간을 확인했다.

입간판에 적힌 가게 이름은 ‘비야 게레로’였다. 멕시코에서 타코를 배웠다는 설명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그러나 손님들이 눈길을 두는 것은 그 설명이 아니라 저쪽 끝 주방에서 고기를 자르는 주인장이었다. 굵은 팔뚝으로 네모난 칼을 휘둘러 고기를 쳐내릴 때마다 사람들은 ‘저 고기가 나의 것인가’라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봤다.

서울 강남구 ‘비야 게레로’의 타코. /강은이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그가 집어 올린 고기에서는 기름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멕시코식으로 기름에서 익힌 껍데기, 살코기, 오소리감투, 혀까지 각종 돼지 부속이 도마 위에 올라왔다가 탕탕 소리와 함께 토막이 났다. 주인장은 그 고기를 쓸어 담아 토르티야 위에 올리고 다진 양파와 고수를 한 움큼 더했다. 종업원들은 타코 접시를 받아들고 날렵하게 테이블 사이를 오고 갔다. 그것만 보면 줄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대부분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접시를 비우고 나면 그제야 다시 주문을 넣었다. 나는 일부러 넉넉히 종류별로 타코를 시켰다. 초록 라임을 직접 짜 뿌리고 토르티야를 반으로 접어 타코를 입에 밀어 넣었다. 얌전하고 우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세로로 찢은 김치를 받아먹듯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입을 악어처럼 벌렸다. 기름기와 짜릿한 신맛이 구운 옥수수 냄새와 함께 입에서 뒤섞였다. 두꺼운 양념과 소스로 멋을 낸 맛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먹게 만드는 맛이었다.

빨간 초리소가 올라간 타코는 혀에 얼얼한 타격감을 남기며 날카로운 매운맛을 냈다. 옥수수 토르티야는 기름과 향신료를 묵묵히 받아냈다. 덕분에 이 집 타코가 가벼운 술안주가 아니라 어엿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었다. 노란 치즈나 끈적한 소스 없이 뜨겁게 타오르고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타코 하나를 온전히 끝낼 때까지 나는 먹기를 멈출 수 없었다. 유리창 밖 사람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약간의 동정심은 타코 접시와 함께 사라졌다. 입 양옆은 윤기로 반질거렸고 양손에는 피처럼 흐르는 초리소의 빨간 육즙을 묻혔다. 그리고 또 한 접시를 추가하고 말았다.

#비야 게레로: 까르니따 따꼬 4900원, 초리소 따꼬 4800원, 혼합 따꼬 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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