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치 탈모약 1만원인데… 건보 적용까지 한다고요?”

김병권 기자 2026. 7. 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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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2030 탈모인 생각은?
‘탈모 성지’ 종로 르포
지난달 29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약국 거리. 일대에 병원과 약국, 의료기기 업체가 밀집해 있다. 종로 일대는 저렴한 가격에 탈모약을 장기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이 몰려 있는 데다 약까지 다른 지역보다 싸게 살 수 있어 ‘탈모 성지’로도 불린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3시쯤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병원. 월요일 오후인데도 7평 남짓한 병원 대기실에 남성 20명이 앉아 있었다. 접수 창구 맞은편 벽에는 ‘탈모 처방비 3개월 5000원, 12개월 3만원’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탈모 환자들 사이에서 다른 병원보다 탈모약을 저렴하게 처방받을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대기하는 환자 중 절반가량은 20~30대였다. 기자도 이날 30분가량을 기다려 한 달 치 탈모약을 처방받았다. 처방전을 들고 인근 약국에 갔더니 같은 병원에서 봤던 청년 몇 명이 약을 타고 있었다. 기자가 처방받은 것과 같은 종류의 약이었다.

종로 일대는 ‘탈모인들의 성지’로 불린다. 저렴한 가격에 탈모약을 장기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이 몰려 있는 데다 약까지 다른 지역보다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종로 일대 약국들은 도매업체로부터 약을 대량 구매하는 만큼 소비자 판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온누리상품권 가맹 약국에서는 추가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탈모 환자들이 많이 찾는 병원 인근 약국은 처방약을 타러 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30대 젊은 층이 눈에 많이 띈다.

탈모 문제는 특히 2030세대가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취업과 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탈모가 치명적인 감점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다. 한 결혼 정보 업체 관계자는 “가입 여성의 경우 절반 이상이 탈모가 있는 남성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지난 2월에는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신혼여행 첫날밤에 가발 벗은 모습을 보여줬더니 아내가 이혼하자고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탈모가 ‘이혼 사유’로까지 떠오른 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종로 이외에도 강남역·분당에 있는 탈모 성지 병원 정보가 계속 공유되고 있다.

정부가 청년층 탈모 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주는 방안을 추진한 배경에는 이 같은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방침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탈모를 겪고 있는 청년들은 “건보가 올해 적자로 전환된다는데 약값이 비싸지도 않은 탈모에 재원을 투입하는 게 맞느냐” “당장은 좋아 보여도 결국 우리가 나중에 다 갚아야 할 돈”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표심 이탈 2030 겨냥 모퓰리즘’ 비판

탈모 건보 적용 논의의 역사는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발표한 공약이었다. 탈모인들의 표를 노린 ‘모(毛)퓰리즘’이란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 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탈모 건보 적용 검토를 지시했을 때만 해도 복지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건보 적용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여론 수렴을 거쳐 추진하라’는 지시가 재차 내려오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적용 대상을 우선 청년층으로 하되, 구체적인 적용 대상은 검토 중이라고 했다. 재정 투입 규모도 정해지지 않았다. 추진 방침부터 밝혔던 것이다. 이와 관련, 지방선거에서 2030세대의 표심 이탈을 확인한 정부와 여당이 청년층을 잡기 위해 탈모 지원에 속도를 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탈모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3만7009명이다. 이 중 탈모 치료를 받은 20대는 3만5803명, 30대는 5만712명으로, 20~30대가 전체의 36.5%였다. 탈모 문제로 고민하는 젊은 층이 적지 않은 것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스트레스, 흡연, 수면 부족 등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트레스 등이 주원인인 원형 탈모는 지금도 질환으로 분류돼 건보 적용을 받고 있다. 정부가 추가로 건보 적용을 검토한 대상은 흔히 ‘M자형 탈모’ ‘남성형 탈모’로 불리는 안드로겐성 탈모다. 남성 호르몬이 원인인 탈모다. 학계에서는 안드로겐성 탈모 환자를 전국 100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심평원이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2년부터 안드로겐성 탈모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연간 2만3000~2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탈모 환자의 10% 정도다. 하지만 건보 적용이 안 되다 보니 병원 측이 애초에 건보 청구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실제 안드로겐성 탈모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층 “나중에 우리가 갚을 돈”

탈모에 대한 건보 적용이 확대되면 평소 진료를 받지 않았던 탈모 환자들도 병원으로 몰려갈 수 있어 건보 재정이 급격히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건보 재정은 올해 적자로 전환되고 2035년에는 적자 규모가 39조5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의료계는 탈모에 건보를 적용할 경우 연간 최대 7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탈모 치료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시장에 공급된 탈모 치료 전문의약품은 2022년 2억9573만개에서 작년 4억4632만개로 3년 새 약 50% 증가했다. 올해는 4월까지 1억5727만개가 시장에 풀렸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간 공급 규모가 작년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의료계는 탈모 건보 적용이 이뤄질 경우 이런 흐름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모 건보 지원 방침이 정작 청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 치료 비용이 이미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까지 낮아졌다는 점을 꼽는다. 제네릭(복제약)이 널리 출시되면서 가격이 낮아졌다. 지난달 29일 휴가를 나와 종로의 한 탈모 성지 병원에서 1년 치 약을 처방받았다는 군인 이모(22)씨는 “1년 전부터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거 같아 시간을 내 병원을 찾았다”며 “1년간 먹을 약이 11만원인데, 한 달 치가 1만원도 안 되는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1년 넘게 탈모약을 먹고 있는 조모(30)씨는 “건보 재정이 떨어지면 결국 젊은 세대 주머니로 채울 텐데 1만원 안팎의 약값을 챙겨주겠다면서 탈모에 건보를 적용하겠다는 정부 생각이 이해가 안 된다”며 “탈모약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가격 모니터링을 강화해 지역별 약값 편차를 줄이는 것이 더 피부에 와닿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생명과 직접 관련이 적은 탈모에 먼저 건보 재정을 투입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달 16일 성명을 내고 “신약이 개발돼도 건보 적용이 안 돼 수많은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와 말기 암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며 “(탈모) 포퓰리즘 정책에 깊은 좌절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여론 반발에 토론회도 무산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11일 정책 간담회에서 탈모 건보 적용과 관련해 “모두의 토론회 의견 등을 반영해 추진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두의 토론회는 현 정부가 국민이 직접 정책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 공론화 절차다. 하지만 복지부는 지난달 29일 “탈모 급여 확대를 주제로 한 토론회 추진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초 4일 예정이었는데 행사 닷새 전 돌연 토론회를 취소한 것이다. 반대 여론이 확산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복지부 관계자는 “탈모에 대한 건강보험 연내 적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탈모 지원이 건보 재정에 미칠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중증 질환도 아닌 미용 차원의 탈모에 재원을 쓰는 것이 맞는지 사회적 합의와 국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환자 요구가 있더라도 탈모약의 장기간 처방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오상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탈모약은 흔히 성 기능 장애나 우울증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2~3개월에 한 번씩은 정기적인 진단이 필요하다”며 “1년씩 처방하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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