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볼트 전철 밟지 말자"…글로벌 배터리 스타트업, 亞 유휴 공장 눈독
中·동남아 잉여 라인 활용 확대…서구 제조기반·IP 유출 우려도

[더구루=정예린 기자] 글로벌 배터리 스타트업들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자체 기가팩토리 건설을 포기하고 아시아 지역의 유휴 생산 시설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대거 선회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로 가동률 부진을 겪던 아시아 제조 인프라 활용도가 극대화되는 동시에 차세대 배터리의 양산 무대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스웨덴 알트리스와 미국 아이온 스토리지 시스템즈 등 주요 배터리 스타트업들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위치한 기존 업체의 잉여 생산 시설을 확보해 제품을 조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무리하게 거대 기가팩토리를 구축하려다 파산한 스웨덴 노스볼트 사태 이후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는 경량화 모델이 업계의 핵심 생존 전략으로 부상했다.
스웨덴의 나트륨 이온 배터리 소재 개발사인 알트리스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양산을 위해 중국 제조업체와 유휴 리튬 이온 생산 라인 임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로 가동률이 하락한 아시아 지역 2·3차 협력사들의 잉여 생산 능력을 적극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웨어러블 기기·특수 산업용 전고체 배터리를 제조하는 미국 '아이온 스토리지 시스템즈' 역시 배터리 조립을 맡길 동남아시아 지역 유휴 공장을 집중적으로 물색 중이다. 이 회사는 독자적인 세라믹 양극재 생산에만 역량을 집중하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조립 공정은 철저히 외부 파트너사에 위탁하는 방식을 택했다.
호르헤 디아즈 슈나이더 아이온 스토리지 시스템즈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거대한 기가팩토리를 직접 짓지 않을 것"이라며 "제2의 노스볼트가 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터 버그퀴스트 알트리스 CEO는 "초기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해 설비를 구축했던 협력업체들이 현재 여유 생산 능력을 확보한 상태"라며 "유럽 내 생산 과잉을 겪는 다른 공급업체 활용 방안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공장을 다수 활용하는 파운드리(위탁 생산) 모델은 인허가 장벽과 숙련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서구권의 규제를 우회하는 핵심 돌파구로 꼽힌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유니그리드 또한 한국과 중국, 일본에 위치한 6개 공장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을 도입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대런 H.S. 탄 유니그리드 CEO는 "다수의 파트너사를 관리하는 것은 물류 측면에서 까다로운 일"이라며 "단일 파트너사가 전체 공정을 다 알지 못해 보안이 유지되는 데다, 잉여 생산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스타트업에게 큰 축복"이라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휴 공장 확보 위주의 사업 구조 재편이 서구권 내 제조 기반 위축과 핵심 지식재산권(IP) 유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저가 배터리 공세를 펼치는 중국 업체들에게 서구권 공급망 장악력을 더욱 높여주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릭 루에베 그룹14 CEO는 "서구권 기업들의 아웃소싱 확대는 중국의 핵심 공급망 통제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며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중국 공급업체에 의존하는 가운데 자체 제조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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