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물건 다 빼라니”… 텅 비는 홈플러스 매장, 손님도 직원도 ‘당혹’

3일 오후 4시쯤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 평소처럼 장을 보던 손님들 사이로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직원이 “이걸 어떻게 다 옮기나”라고 말하자, 다른 직원들이 내부 사무실 쪽으로 따라 들어갔다. 잠시 뒤 다시 나온 직원들은 대형 카트를 끌고 매장 곳곳에 흩어져 진열 상품을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건어물 코너에서 미역 등을 박스에 옮겨 담던 직원들은 “어느 세월에 다 빼나”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거냐”고 말했다. 대형 카트만으로 부족했는지 직원들은 손님용 카트까지 동원해 진열돼 있던 물건을 쉼 없이 실어 날랐다. 손님들은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계산대와 비워지는 매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날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한 직후, 일부 매장에서는 진열 상품을 거둬들이는 작업이 시작됐다. 14일 안에 자금 조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홈플러스는 사실상 파산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텅 비는 매대… 협력사 “제품 철수 요청”
반찬 코너는 납품이 이뤄지지 않아 도자기 제품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30분 만에 텅 비었다. 상품을 왜 빼는지 묻자 한 직원은 “협력 공급사 요청 같다”고 말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냉동식품 진열장에는 얼음만 덩그러니 남았다. 양말이 놓여 있던 생활용품 코너도 비워졌다. 자체 기획(PB) 상품도 매대를 가득 채우지 못하고 한두 줄 정도 놓인 모습이었다.
매장을 찾은 일부 손님은 “당장 문을 닫는 것이냐”고 물었다. 직원들은 “잘 모르겠다”는 답만 했다. 매장의 유인 계산대 7곳 중 1곳에서만 결제가 가능했다. 그마저도 손님이 적어 바코드를 찍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렸다.

◇“홈플러스 마지막일까 봐 다녀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도 홈플러스가 결국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 30년간 국내 유통 시장을 지켜온 대형 마트인 만큼 아쉬움을 드러내는 글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SNS에 “홈플러스 마지막일까 봐 다녀왔다”며 매장 사진을 올렸다. 그는 “‘홈플러스 가격이 착해’라는 CM송이 아직도 귀에 맴도는 듯하다”고 적었다.
집 앞 홈플러스를 10년간 이용했다는 또 다른 네티즌은 “이제 직원들 얼굴까지 외웠다”며 “그간 정이 들었는데, 이제 그분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된다”고 했다.
최근 홈플러스 매장을 다녀온 A씨도 “계산을 마치는데 직원이 ‘옷걸이도 가져가라’고 했다”며 “평소라면 그냥 듣고 지나쳤을 텐데, ‘이제 다음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즉시항고 남았지만… 14일 내 자금 조달 관건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재판장 정준영 법원장)는 이날 홈플러스의 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고 1년 4개월 만이다.
재판부가 회생 절차 폐지를 결정한 핵심 이유는 자금 조달 실패였다. 홈플러스는 회생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 자금으로 2000억원을 마련해야 했지만, 이를 확보하지 못했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자금 조달 책임을 두고 공방을 이어왔다.
홈플러스는 14일 이내에 즉시항고할 수 있다. 다만 회생 절차 폐지 결정을 뒤집으려면 자금 조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회생 폐지가 확정될 경우 홈플러스가 파산 신청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조합은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14일 안에 공적 자금 투입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긴급 조치를 통해 홈플러스 회생 방안을 마련하라”며 “14일간 긴급 투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일반노조도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은 14일 안에 2000억원을 즉시 투입하라”며 “정부는 홈플러스 사태로 생계가 걸린 10만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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