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겐 아직 알리지 마요” 기적의 생존…베네수 잔해 9m 밑에서 8일
아내 “남편 잘못됐을까봐…영웅처럼 버텨”
강진 사망 2595명, 부상 1만2천여명으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혀 있던 베네수엘라 40대 남성이 70시간 넘는 구조대의 작업 끝에 잔해에 갇힌 지 8일 만에 구조됐다. 베네수엘라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2일(현지시각) 2595명으로 확인됐다.
에이피(AP) 통신과 현지 매체 엘나시오날 등 보도를 보면,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카티아라마르 한 쇼핑센터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에르난 알베르토 힐 플로레스(43)는 지난달 24일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혔다가 2일 구조됐다.
구조대는 지난달 28일 음향 탐지 장비와 레이더 등을 이용해 힐 플로레스의 신호를 감지한 뒤 생존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붕괴한 건물의 잔해 약 8∼9m 아래 갇혀 있었다. 코스타리카 적십자의 한 구조대원은 에이피에 “발견 당시 그는 만일에 대비해 아내에게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며 “우리는 결코 그를 두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칠레 구조대를 중심으로 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 미국, 포르투갈, 엘살바도르, 멕시코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구조대가 70시간 넘게 걸린 대규모 구조를 시작했다. 불안정한 건물 구조와 폭우, 계속되는 여진으로 구조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구조대는 애초 계획했던 굴착 작업을 중단하고 우회 통로를 새로 확보해야 했다. 인접 건물의 붕괴 위험을 살피면서 금속판을 절단하며 통로를 확보했다.

구조대는 콘크리트 틈새로 수색용 카메라를 넣어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물과 음식, 약 등을 넣어주고 호스와 주사기를 이용해 전해질 음료와 수액 등을 공급하기도 했다. 칠레의 한 베테랑 구조대원은 구조 작업 내내 그와 대화를 이어가며 안정을 취하도록 했다. 칠레 구조팀이 공유한 영상에서 구조 직전 충혈된 눈을 하고 있는 플로레스가 그림을 그리며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다른 영상에서는 두꺼운 콘크리트 틈새로 손가락을 흔드는 모습이 담겼다.
현장에 참여한 유엔 재난평가조정팀(UNDAC) 관계자는 시엔엔(CNN)에 지진 발생 7일이 지난 시점에서의 생환은 “오직 기적적인 구조”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통상 재난 발생 후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을 72시간으로 보는데, 이 기간이 지나면 물 공급 없이는 생존할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든다. 힐 플로레스의 경우 지진 당시 주변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는 동안 그가 머물던 경비 초소가 형태를 유지해 준 덕분에 잔해에 깔리지 않고, 내부에 공기층이 형성돼 생존할 수 있었다고 에이피는 설명했다.
구조 직후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현재 안정적인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아내는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픔의 나날을 보내다가 생존 소식을 듣고 한 줄기 희망을 본 것 같았다며 “그는 영웅처럼 꿋꿋하게 버텨냈다”고 말했다. 부부에게는 10살, 8살의 두 자녀가 있다.
기적 같은 생환 소식이 희망을 안겨줬지만, 대부분의 구조 현장은 이제 생존자를 찾기보다 희생자를 수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날 현재까지 지진 사망자가 2595명으로 확인됐고, 부상자는 1만2천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전날 집계된 사망자 2295명에서 300명이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의학자는 시엔엔과의 인터뷰에서 “실제 사망자 수의 3분의 1도 미치지 못한 집계”라며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의학자는 지진 피해가 컸던 항구도시 라과이라의 임시 영안실에서 하루 약 400구의 시신을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훼손이 심해 신원 확인이 어렵거나 이미 심하게 부패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냉장 트럭은 이미 가득 차 더 이상 시신을 수용할 공간이 없이 시신이 담긴 가방을 야외에 둘 수밖에 없다며 강한 햇볕 아래서 시신이 빠르게 부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UN)은 앞서 시신 수습을 위한 시신가방 1만개를 긴급 조달했다고 밝혔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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