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수집을 투자로 접근한다고요? 차라리 주식이나 금 사시라”[M 인터뷰]
예술 작품이 주는 위로와 영감의 크기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
거실에 걸어둔 그림을 보며 얻는 심리적 만족감도 계산에 넣어야
IT회사에서 경매사로 업종 변경 ‘일단 해보자’는 생각에 도전
경매시장은 정직해… 블루칩 작가의 ‘A급 수작’ 알아볼 수 있기를
작품 많이 보는 것이 최고의 공부
첫 구매라면 월급 수준서 시작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비싼 예술품들이 새 주인을 만나러 모여드는 곳. 안목과 취향, 그리고 재력을 갖춘 미술애호가들이 자기만의 ‘작품’을 탐색하는 곳. 바로 미술품 경매회사다. 경매 단상 위에서 17년째 수억, 수십억 원의 낙찰가를 결정지어 온 인물이 있으니 케이옥션 수석 경매사로 활동 중인 손이천(50) 홍보마케팅팀 이사다. 130번 경매 단상에 올라 누적낙찰총액만 5000억 원. 2017년엔 김환기 작품으로 당시 국내 경매 최고가(65억5000만 원)를 경신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자연스레 생겨나는 호기심. 수석 경매사의 집엔 어떤 그림이 걸려 있을까. 그것은 처음 살 때보다 얼마나 올랐을까….
◇“미술품 투자요? 차라리 금을 사시라고 권합니다.”= “월급쟁이가 무슨 수로 ‘큰손’이 되겠습니까. 저도 소소하게 소장하는 정도인 걸요.”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본사에서 만난 손 이사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현재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이 저렴할 때엔 그걸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눈만 더 높아져서 마음에 들면 다 ‘억’소리 나게 비싸다. 이러나저러나 역시 살 형편이 못 되는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0.1초의 승부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지만 역시 ‘제 머리’ 깎는 일이 어려운 건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이날은 상반기 마지막 경매인 6월 경매를 일주일 정도 앞둔 때였다. 경매 출품작들을 소개하는 프리뷰 전시장엔 관람객들이 북적였다. 안중근 의사 유묵(지난달 24일 경매에서 27억 원에 낙찰됐다)을 비롯해 출품작들을 함께 돌아보며 손 이사와 대화를 나눴다. ‘아트테크(미술품 투자)’에 대해, 정보기술(IT)회사에서 일하던 그가 경매봉을 들게 된 사연에 대해, 그리고 ‘1조 원’이라는 국내 미술시장의 허와 실에 대해.
매월 수백 점의 예술품을 판매하고 그것에 둘러싸여 사는 그다. 접촉하는 이들도 대부분 예술 애호가. 구입 관련 상담을 청하는 초보 컬렉터나 조언을 구하는 지인들도 많다. 그때마다 그는 단호하다. “예술 작품을 사면서 주식 동향 보듯 일희일비하는 이들에겐 냉정하게 말해요. 차라리 삼성전자 주식이나 금을 사시라고요. 미술시장은 ‘객관적 지표가 없는 아주 위험한 시장’이거든요.”
손 이사는 “예술이 주는 위로와 영감의 크기를 인정해야 미술품 수집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독점성과 정신성에 컬렉팅(수집)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장에 진입하려면 ‘안목, 취향, 돈’이라는 ‘까다로운’ 전제조건이 필수다. “내 공간에 작가의 오롯한 영혼을 들이는 일이잖아요. 매일 거실에 걸어둔 그림을 보며 얻는 심리적 만족감, 그 가치를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컬렉팅은 고통스러운 투기일 뿐이죠.”

◇전시 기획자 꿈꾸다 국내 대표 경매사가 되다= 방송과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은 이들이 손 이사를 경매사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사실 케이옥션에 홍보 담당으로 입사해 지금은 가장 많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살림꾼’ 중 하나다. 2005년 설립된 케이옥션에 2009년 합류했으니 경력을 쌓아온 17년은 회사가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고 국내 미술시장이 1조 원 규모로 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그의 사회생활 시작이 미술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그는 첫 3년을 IT 기업에서 B2B(기업 간 거래) 마케팅을 담당하며 보냈다. “대학 졸업할 당시가 한창 IT 붐이었어요. 석사까지 마치고 동기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IT 업계로 갔는데 솔직히 정말 재미가 없더라고요(웃음). 제가 배운 마케팅은 대중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활기찬 영역이었는데 B2B 시장은 성격이 전혀 달랐죠.”
손 이사는 회사를 그만두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다시 공부했다. 엄청난 애호가는 아니었지만 미대를 졸업한 어머니 덕에 그림이 멀지는 않았다. 또 어머니가 평소 집에서 그림을 자주 그렸기 때문에 미술은 자연스럽게 그의 삶 속에 있었다. 손 이사는 대학원 전공을 살리고자 갤러리현대에 전시기획자로 지원했는데 어느 날 자회사인 케이옥션에서 전화가 왔다. “경매 회사라니, 생각도 안 해봤어요. 그런데 어느새 덜컥 입사해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 또 1년 만에 당시 대표님께서 경매사 훈련을 받아보라고 권하셨고 오늘 여기까지 왔네요. 뭐든 ‘일단 해보자’하고 움직이는 성격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겁도 없이 다 도전해본 거죠.”
사실 경매사가 되는 방법이나 경로는 정해진 게 없다. 전 세계 어느 경매회사든 처음부터 경매사 보직으로 직원을 채용하진 않는다. 내부 직원 중 자질이 보이는 이를 선발해 트레이닝을 거쳐 단상에 올린다. 손 이사에게 그런 기회가 조금 빨리 주어졌고 잘 감당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부캐’로 경매사 직함을 얻는다. 낮에는 홍보 마케팅 총괄로, 경매가 열리는 날에는 경매사로 경매봉을 두드리게 된 것. 일인다역, 일당백이다.
◇‘1조 원 미술시장’ 허와 실… 올 하반기, 그림 살까 말까?= 경매회사의 거의 모든 프로세스를 경험해 본 ‘베테랑’ 손 이사에게 미술시장을 전망해 달라고 했다. 지금 그림,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투자로 접근할 거면 금을 사라”는 그였지만 역시 그 안목에 한번 기대 보고 싶다. 그는 전망에 앞서, 국내 미술시장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수사 ‘1조 원 시장’부터 엄밀히 뜯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코로나19 직후 촉발된 유례없는 호황과 세계적인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Frieze) 서울’의 상륙은 한국 미술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올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프리즈 서울 참여 갤러리의 80%는 해외 갤러리이고 페어 전부터 전 세계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전판매 수치까지 묶여 있기에 1조 원이 온전히 국내 미술계 규모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실시간 경합과 소유권 이전이 투명하게 기록되는 경매 데이터 추이를 보라”고 했다. 한국 시장의 진짜 순수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체감할 수 있는 지표는 경매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경매 시장은 정확하고 정직해요. 2021년 제로 금리와 자산 시장 폭등이 맞물려 연간 경매 규모가 3000억 원대까지 치솟았으나 2022년부터 매년 20~30%씩 낙찰 총액이 빠지는 긴 조정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 말 속에 해답 혹은 방향성이 있다. 즉, 조정기야말로 ‘진짜 안목’을 시험하고 좋은 작품을 선점할 수 있는 적기다. 실제로 상반기 경매 흐름을 보면, 지난 5월 경매 낙찰 총액이 70억 원을 넘기고 낙찰률도 오랜만에 70%대를 회복했다. 케이옥션만 해도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21억 원에, 유영국 화백의 작품이 4억9000만 원에 팔리는 등 중간 가격대와 고가 블루칩이 시장을 받쳐주기 시작했다.
경매에 나설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귀띔. 손 이사는 “시장을 견인할 새로운 신진 작가가 아직 부족한 편”이라고 했다. “다음 상승 사이클이 오면 결국 이미 검증된 거장들이나 한국 전위미술을 이끈 걸작들이 다시 시장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시 투자란 일반 대중의 심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용기와 안목이 있어야 가능하다. 미술시장도 마찬가지다. 손 이사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가장 확실한 블루칩 작가의 ‘A급 수작’을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시장의 부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알아보는 눈, 그것이 바로 미술이 컬렉터(수집가)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배당금이 아닐까요?”

■ 초보 컬렉터를 위한 조언
같은 작가의 작품도 수백만 원부터 수천, 수억 원까지 값이 다르게 매겨지는 게 미술이라는 알쏭달쏭한 세계다. 입지나 개발호재, 성장 가능성 등 객관적 지표가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보다 훨씬 뿌옇고 위험하다. 다만 내가 매일 보는 것, 안목과 취향에도 돈을 지불한다고 받아들이면 미술품 수집도 ‘유익한’ 투자일 수 있다. 동의하면 이제 준비완료. 손이천 케이옥션 이사가 전하는 ‘초보 컬렉터를 위한 미술 투자법’이다.
손 이사는 우선 4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첫 번째 ‘발품을 팔아 나만의 취향을 찾는다’. 그는 “첫 단계는 역설적이게도 ‘사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면서 “미술관, 갤러리, 그리고 경매회사의 프리뷰(사전 전시)를 수시로 방문하라”고 했다. 특히, 경매 프리뷰는 수백만 원부터 수십억 원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진품을 무료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공부방이다. 많이 보아야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투자가 아닌 ‘향유’의 대상으로 접근하라’이다. 단기간에 수익을 내겠다는 이른바 ‘아트테크’가 가장 위험하다. 미술품은 환금성이 매우 떨어진다. 손 이사는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수익은 돈이 아니라 ‘심리적 배당금’”이라고 했다. “매일 집에서 벽에 걸린 작품을 바라보며 얻는 위로와 즐거움의 가치를 1순위로 두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예산의 상한선을 명확히 하는 것. 초보들은 경매 현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호가를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손 이사는 “반드시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이 작품에 얼마까지 쓸 것인지’ 철저하게 상한선을 정하라”고 조언했다. 첫 미술품 구매라면 자신의 한 달치 월급 수준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작품 구매를 위해 절대 빚을 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대가의 판화나 소품부터 가볍게 시작하는 것도 현명한 방식이다. 유명 작가의 예술성을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소장할 수 있는 에디션(판화) 작품이나 드로잉, 수채화 같은 소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혹은 성장 가능성 있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발굴, 그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도 묘미다. “미술품 수집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즐기는 길고 우아한 마라톤입니다. 여러분의 공간과 일상과 삶 전체를 풍요롭게 채워줄, 첫 번째 작품과의 운명적 만남을 응원합니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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