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호찌민’으로 이름 바꾼지 반세기...‘사이공’은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었다
지명 등 생활 곳곳에 남은‘사이공’, 금기어가 아닌 생활의 일부
베트남 통일 정부가 옛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을 ‘호찌민시’로 공식 개칭한 지 반세기가 된 지난 2일, 또럼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 등 수뇌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날 오전 옛 대통령궁인 통일회관(통일궁)에서 열린 기념식에 이어 야간에는 시청 외벽에 도시 발전사를 투사하는 3D 매핑 쇼와 시 전역 16개 지점의 일제 불꽃놀이가 진행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찾은 호찌민시 1군 도심 통일궁 앞 거리에는 ‘호찌민 사상·도덕·풍격을 학습하고 따르자’는 붉은 현수막이 가로등마다 내걸려 있었고, 시내 곳곳에는 호찌민 초상화와 함께 대형 기념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특별 생방송 무대 설치가 한창인 현장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직접 통일궁을 찾아 행사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앞서 베트남은 지난해에는 통일 50주년 행사를 거국적으로 치른 바 있다. 이번 개명 50주년 행사는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체제 결속을 도모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이번 호찌민시 개칭 50주년을 거국적으로 기념하는 것은 생전에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사망한 호찌민에게 도시 이름을 헌정함으로써 그의 염원을 완수하고, 현 체제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된 직후, ‘남베트남 공화국 임시혁명정부’를 거쳐 1976년 7월 2일 남북베트남 통합이 공식 선포됐다.

이 때를 기해 사이공시은 인근 자딘시를 합쳐 호찌민시로 개칭했다. 또럼 서기장은 이날 연설에서 6대 과제를 제시하며 호찌민시가 새로운 발전 시대를 주도하는 메가시티로 도약해야 한다고 했고, 쩐 르우 꽝 호찌민시 당 서기 역시 이 명칭이 미래에 대한 책임이자 약속이라며 주민들의 사상 통제를 강조했다.

당국이 이처럼 행정적으로 지워나간 ‘사이공’의 이름은 주민들의 삶 속에서는 살아남아 지금에 이른다. 통일 초기 베트남 공산 정권은 프랑스 식민지풍 문화와 자본주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사이공이라는 명칭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인위적 시도로 주민들의 삶의 일부가 된 ‘사이공’을 들어내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사이공은 도시 이름에서는 지워졌지만 지역을 상징하는 남아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 도시를 관통하는 강은 여전히 사이공강이며 기차역은 사이공역, 항만은 사이공항(Cảng Sài Gòn)이고, 국제 민간 항공 시스템에 등록된 공항 코드조차 과거의 흔적인 ‘SGN’을 유지하고 있다. 호찌민시의 랜드마크인 사이공 마리나 국제 금융 센터(Saigon Marina IFC)의 이름에도 사이공이 들어간다.

현지에서 만난 회사원 레 응 꾸언(38)씨는 “우리는 호찌민시에 살지만 조상은 사이공시에 살았다고 말한다”며 행정 지명과 실제 생활 언어가 분리된 현실을 전했다. 사이공 시절을 직접 겪은 70대 주민 A씨는 “이름이 강제로 바뀔 때 도시 전체에 깊은 슬픔이 감돌았다”고 회고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사이공’은 청산해야 할 과거의 금기어가 아니라, 베트남의 독특한 근현대사적 서사와 남부 특유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문화 콘텐츠로 용인되는 분위기다.


1975년 4월 29일 피란민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에어 아메리카 헬기를 타려고 옥상 사다리를 오르던 리트쫑 22번가의 낡은 민간 아파트는 현재 관리인이 외지인에게 10만동(약 5600원)의 입장료를 받는 동네 장터로 변모했다.
중국과 가까워 유교 영향력이 강하고 보수 정서가 짙은 북부 하노이와 달리, 호찌민시 일대는 사이공 시절부터 축적된 개방적 소비 성향이 강하다. 호찌민시에는 현재 베트남 내 주요 로컬 은행과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운영 본사 대부분이 위치해있다. 베트남에서는 “북부(하노이) 사람은 100을 벌면 10을 쓰고, 남부(사이공) 사람은 100을 벌면 110을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날 베트남 국영 매체들은 또 럼 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은 호찌민시 공산당 간부와 시민들에게 호찌민의 동상을 서물하고, 호찌민 기념공원을 찾아 동상에 헌화한 소식을 전했다. 동시에 시내 상점가에서 판매하는 맥주와 커피, 호텔 간판에서는 여전히 사이공이라는 이름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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